[월드컵 & 세계음악기행]
카보베르데 대표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
2002년 내한공연 등 韓과도 인연
영화 '위대한 유산' OST '베사메 무초'로 韓 음악팬 친숙
![[제네바=AP/뉴시스] 세자리아 에보라](https://img1.newsis.com/2011/12/18/NISI20111218_0005611510_web.jpg?rnd=20111218022503)
[제네바=AP/뉴시스] 세자리아 에보라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적은 돌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슬픔을 단단하게 견뎌낸 토양에서 조용히 싹을 틔운다. 인구 52만 명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 무승부를 기록한 순간, 세계는 그들의 스포츠에 경탄했다.
그 투혼의 저변에는 이 척박한 나라를 지탱해 온 묵직한 운율이 흐르고 있다. 전 세계를 향해 카보베르데의 노스탤지어적 그리움, '소다드(Sodade)'를 발신했던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1941~2011)의 음악이다. 축구장에서 번진 언더독의 반란은, 결국 무대 위에서 맨발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던 에보라의 유산과 같은 궤를 그린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카보베르데의 역사는 깊은 상흔을 품고 있다. 에보라가 전 세계에 알린 카보베르데 전통 음악 '모르나(Morna)'는 영어 단어 '슬퍼하다(mour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짙은 애수를 띤다. 아프리카 토속 리듬을 뼈대 삼고, 그 위에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Fado), 브라질 서정 음악 모디냐, 영국 뱃사람들의 발라드가 겹겹이 쌓였다. 식민지 종주국의 양식인 파두에 서아프리카의 흐느적거리는 퍼커션이 복합된 이 음악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아픔과 그들을 향한 노스탤지어적 그리움으로 압축된다.
에보라를 수식하는 가장 유명한 칭호는 '맨발의 디바'다.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극장 앞에서도 예외 없이 늘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카보베르데의 가난한 여성들과의 연대를 표하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이 맨발은 그저 빈곤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척박한 대지의 슬픔을 신발이라는 매개 없이 맨살로 감각하려는 윤리적 태도이자, 어떠한 허세나 장식 없이 목소리의 심연만을 오롯이 전달하겠다는 단단한 미학적 선언이었다. 생전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태어났고, 신발을 신지 않고 죽을 것"이라며 맨발의 편안함을 이야기했다.
1941년 태어나 7세에 고아가 된 후 선원들의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했던 에보라의 삶 자체도 모르나와 같았다. 생활고로 음악을 포기하기도 했던 그는 1988년 47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에서 스튜디오 앨범 '맨발의 디바(La Diva aux Pieds Nus)'를 내며 비로소 세상의 빛을 봤다. 1991년 기교를 덜어낸 본연의 사운드 '푸른 바다(Mar Azul)'와 이듬해 프랑스에서만 30만 장이 팔린 'Miss Perfumado'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투혼의 저변에는 이 척박한 나라를 지탱해 온 묵직한 운율이 흐르고 있다. 전 세계를 향해 카보베르데의 노스탤지어적 그리움, '소다드(Sodade)'를 발신했던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1941~2011)의 음악이다. 축구장에서 번진 언더독의 반란은, 결국 무대 위에서 맨발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던 에보라의 유산과 같은 궤를 그린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카보베르데의 역사는 깊은 상흔을 품고 있다. 에보라가 전 세계에 알린 카보베르데 전통 음악 '모르나(Morna)'는 영어 단어 '슬퍼하다(mour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짙은 애수를 띤다. 아프리카 토속 리듬을 뼈대 삼고, 그 위에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Fado), 브라질 서정 음악 모디냐, 영국 뱃사람들의 발라드가 겹겹이 쌓였다. 식민지 종주국의 양식인 파두에 서아프리카의 흐느적거리는 퍼커션이 복합된 이 음악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아픔과 그들을 향한 노스탤지어적 그리움으로 압축된다.
에보라를 수식하는 가장 유명한 칭호는 '맨발의 디바'다.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극장 앞에서도 예외 없이 늘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카보베르데의 가난한 여성들과의 연대를 표하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이 맨발은 그저 빈곤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척박한 대지의 슬픔을 신발이라는 매개 없이 맨살로 감각하려는 윤리적 태도이자, 어떠한 허세나 장식 없이 목소리의 심연만을 오롯이 전달하겠다는 단단한 미학적 선언이었다. 생전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태어났고, 신발을 신지 않고 죽을 것"이라며 맨발의 편안함을 이야기했다.
1941년 태어나 7세에 고아가 된 후 선원들의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했던 에보라의 삶 자체도 모르나와 같았다. 생활고로 음악을 포기하기도 했던 그는 1988년 47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에서 스튜디오 앨범 '맨발의 디바(La Diva aux Pieds Nus)'를 내며 비로소 세상의 빛을 봤다. 1991년 기교를 덜어낸 본연의 사운드 '푸른 바다(Mar Azul)'와 이듬해 프랑스에서만 30만 장이 팔린 'Miss Perfumado'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민델루=AP/뉴시스] 15일(현지 시간) 카보베르데 민델루의 단체 응원 장소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카보베르데(67위)와 스페인(2위)의 경기를 중계로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카보베르데는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2026.06.16.](https://img1.newsis.com/2026/06/16/NISI20260616_0001340550_web.jpg?rnd=20260616085614)
[민델루=AP/뉴시스] 15일(현지 시간) 카보베르데 민델루의 단체 응원 장소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카보베르데(67위)와 스페인(2위)의 경기를 중계로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카보베르데는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2026.06.16.
결국 2003년 앨범 '보스 다모르(Voz d'Amor)'로 그래미상 최우수 컨템포러리 월드 뮤직 앨범상을 거머쥐었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민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대사를 통한 대리 수상을 거부하고, 자신을 맨발로 무대에 세워준 파리 시민들 곁에서 직접 훈장을 받은 일화는 그의 우직한 성품을 대변한다.
한국 대중에게도 그의 목소리는 각인돼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위대한 유산'(1998) OST에 삽입된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통해 서늘하고도 우아한 슬픔을 국내에 알렸다. 2002년 첫 내한공연으로 한국 팬들과 교감했으나, 2008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두 번째 공연은 건강 악화로 무산됐고, 2011년 고향 민델루에서 7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는 무대 위 그를 가리켜 '우울함의 요다(a Yoda of melancholy)'라 칭하기도 했다.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기적 같은 질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맨발로 세계의 정점에 섰던 에보라의 단단한 유산이 그들의 피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카보베르데의 사람들은 오늘, '소다드'의 슬픔을 딛고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한국 대중에게도 그의 목소리는 각인돼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위대한 유산'(1998) OST에 삽입된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통해 서늘하고도 우아한 슬픔을 국내에 알렸다. 2002년 첫 내한공연으로 한국 팬들과 교감했으나, 2008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두 번째 공연은 건강 악화로 무산됐고, 2011년 고향 민델루에서 7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는 무대 위 그를 가리켜 '우울함의 요다(a Yoda of melancholy)'라 칭하기도 했다.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기적 같은 질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맨발로 세계의 정점에 섰던 에보라의 단단한 유산이 그들의 피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카보베르데의 사람들은 오늘, '소다드'의 슬픔을 딛고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