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넘는 집중호우…마을 고립·주민들 대피
"태풍도 아닌 장맛비가 이렇게나…생전 처음"
[해남=뉴시스]김혜인 기자 = "논인지 저수지인지 구분이 안 돼요. 태풍도 아니고, 뭔 일인지 모르겄소. 장맛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것은 내 생전 처음이요."
500㎜가 넘는 물폭탄이 전남 해남 곳곳을 할퀴었다.
저수지와 방파제가 붕괴하면서 농경지 침수로 이어지는가 하면, 물에 잠긴 농경지는 황토물로 덮혀 '논인지 저수지인지'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마을 진입도로가 물에 잠긴 일부 마을은 고립됐다. 주민 40여명도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6일 오후 해남군 마산면 월곡마을에서 만난 김모(82)씨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40년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 30여가구 중 10여가구가 침수됐다. 동네가 흙탕물로 변한 것은 이날 오전 4시께 마을과 10여m 떨어진 하천이 범람하면서부터다.불어난 강물은 둑을 넘어 민가와 농경지로 밀려 들어왔다.
주민들은 배수기와 양동이를 동원해 마을로 밀려오는 물을 퍼냈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이나 다름없었다.
김씨의 가게도 침수됐고, 입구엔 1m 높이의 흙탕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물에 젖어 판매가 어려운 라면·과자와 가재 도구 만이 수마의 규모를 짐작케했다.
김씨는 가게에 들어 찬 물을 쓰레받기로 퍼내면서 "이곳에 40년 살면서 태풍도 아닌 장맛비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이다"며 "젖은 제품을 못 팔게 돼 수백만원 피해를 입었다"고 토로했다.
주택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 10여명은 마을회관에서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일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에 잠긴 논을 바라봤다.한창 자라야 할 벼가 속절 없이 폭우에 모두 잠겼다.
마을 이장 김모(71)씨는 "주민 모두 농민이다. 논이 물바다가 돼 벼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벼가 장기간 잠기게 되면 이삭·뿌리가 썩어 출수 지연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마산면 월산마을에서 30여분 떨어진 황산면 기정마을의 논에서도 벌건 흙탕물이 넘실댔다.
인근 주민 이모(48·여)씨는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그나마 물이 빠진 상태"라며 "새벽엔 주변 도로가 물에 모두 잠겨 논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전했다.
봉사활동에 나선 적십자회는 이날 오전 잠시 비가 잦아들자 민가의 젖은 가재도구와 이불·장판을 꺼내는 등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한편, 전날부터 이날 오후 1시까지 해남 현산에는 521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오전 4시20분께는 해남군 삼산면 일대 하천이 폭우로 넘쳐 60대여성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