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4·3추념식… “다리 아파 오빠 보는 건 올해가 마지막”

기사등록 2018/04/03 10:21:26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행불인묘지에 4·3 유족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행불인묘지에 4·3 유족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04.03. [email protected]


유족·시민 등 1만5000여명 참석 4·3평화공원서 제70주년 행사
행방불명묘역 찾은 유족들 눈물…옛 추억 떠올리며 웃음도

【제주=뉴시스】강정만 조수진 기자 = “군인과 경찰들이 조천 봉수동에 있던 우리집을 불 태웠어. 그러니 가족들이 도망쳐 나오는데 아버지랑 어머니랑 나랑 먼저 내려오고. 오빠는 나중에 내려오는데 군인들이 뒤에서 총을 쏴서 거기서 죽었지. 동네 사람이 그걸 보고 오빠를 묻어줬는데 그 사람도 군인 총에 맞아 죽어서 무덤을 못 찾고 있어.”

 제70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제주 4·3 평화공원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70년 전 억울하게 스러져간 이들을 보듬기라도 하듯 따스한 햇살로 뒤덮였다.

 이날 공식 행사 시작은 오전 10시였지만 아침 일찍부터 평화공원을 찾아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보러온 유족들이 많았다.

 매년 4·3추념식 때마다 오전 7시가 되기 전 가장 먼저 제주 4·3 평화공원 내 오빠의 행방불명비를 찾는다는 고순관(80·여)씨는 오빠의 유골을 찾지 못하는 것이 가장 한이 된다고 말했다.

 고씨와 그의 동생은 빵과 레드향을 나눠먹으며 오빠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이야기할 때 소녀처럼 웃음 지었다. 그러다가도 집이 불타고 오빠가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할 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고순관(80·여)씨가 가족들과 함께 3일 오전 4·3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 내 70년 전 세상을 떠난 오빠의 행방불명표석 앞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4.03.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고순관(80·여)씨가 가족들과 함께 3일 오전 4·3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 내 70년 전 세상을 떠난 오빠의 행방불명표석 앞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4.03.  [email protected]

 
 70년 전 서귀포 대정에서 오빠와 동생들을 잃어 지금도 그 동네에 가면 눈 뜨고 잘 못보겠다는 현양덕(82·여)씨는 “내년부터는 다리가 아파서 걷지를 못해 오빠와 동생들을 보러 오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라며 흐느꼈다.

 이날 행사장에는 유족 말고도 70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령을 기억하기 위해 일찍이 공원을 찾은 방문객과 주민들도 많았다.

 4년 전부터 4·3 추념식마다 음료 봉사를 해온 봉개동새마을부녀회 회원 18명은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부스 문을 열고 유족과 방문객들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조영옥(59) 봉개동새마을부녀회장은 “우리 회원 중에도 4·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이 몇 분 있다”라며 “오늘 유족분들께 따뜻한 차로 따뜻한 마음을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1주일 전 제주도로 이주해 4·3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배모(33)씨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추념식에 참가한다는 뉴스를 보고 혼자서라도 오게 됐다”라며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내 각명비에 4·3 유족이 찾아와 어린 딸에게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리키고 있다. 2018.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내 각명비에 4·3 유족이 찾아와 어린 딸에게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리키고 있다. 2018.04.03. [email protected]

  이날 추념식은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주제로 제주 4·3 생존희생자, 유족, 제주 도민 등 1만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열렸다.

 추념식에는 지난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석 이래 두 번째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한다.
 
 4·3의 비극을 소재로 한 ‘순이 삼촌’의 작가 현기영 선생이 ‘4·3 70주년에 평화를 기원하면서’라는 제목의 추모글을 낭독한 뒤 4·3역사가 기억되도록 헌신한 도내 인사 10명이 애국가를 선창한다.

 애국가 선창자는 장정언(최초 4·3피해조사 도의회 의장), 송승문(4·3 당시 임시수용소에서 출생), 고희순(초대 4·3희생자 유족부녀회장), 강혜명(4·3 홍보대사, 제주출신 소프라노), 김은희(유해발굴 기여) 씨 등이다.

 4·3사건 당시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총살당하고 큰 오빠가 행방불명돼 어머니가 한을 품고 돌아가신 유족 이숙영 씨가 어머님을 그리는 편지글을 낭독하고 마지막 순서로 제주4·3유족합창단 50명이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한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추념식 참석자들이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과 제주도 전역의 유적지 등을 방문해 4·3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영령의 명복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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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4·3추념식… “다리 아파 오빠 보는 건 올해가 마지막”

기사등록 2018/04/03 10:21:26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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