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이야기⑤]깨진 크림통의 위기가 기회로

기사등록 2013/08/10 05:30:00

최종수정 2016/12/28 07:53:26

【서울=뉴시스】정리/우은식 기자 = <투명한 크림을 개발하라>

 “메이쇼쿠 화장품이 대인기랍니다!”

 어느 날 날아든 소식에 구인회 회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인회 회장의 책상에는 ‘메이쇼쿠’ 사의 화장품이 놓여 있었다. 그는 뚜껑을 열어 보았다.

 반투명의 아름다운 색의 크림이 용기 속에 담겨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것은 불투명한 색의 럭키크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고급스러웠다.

 “큰일이다. 이거 말고도 앞으로 품질 좋은 외제 화장품이 밀려들어올 텐데…. 우리도 고급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겠어!”

 그날로 구인회 회장은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동생 태회를 불러 “반투명 크림의 제조 방법을 알아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예 태회가 있는 서울에 연구소까지 설치하여 제품 개발에 힘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태회는 이에 보답하듯 드디어 반투명 크림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보다 품질은 더 좋게, 원가는 더 낮게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구인회 회장은 점점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데 눈을 뜨면서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고급 화장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였다.

 “럭키크림의 원가를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을까?”

 구인회 회장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동생 태회에게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원가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게 향료인데…. 이 향료값만 낮출 수만 있다면 길이 있습니다.”

 “흠, 그래. 그렇다면 지금부터 향료에 대해 연구해보자.”

 구태회는 그날로 향료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먼저 왜 향료값이 비싼지 알아보았다. 그러다 한 회사가 마카오의 향료 회사에서 독점적으로 수입해 보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 일본의 향료 회사에서 향료를 구입하면 매우 싼 값에 들여올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구인회 회장이 당장 일본 측에 편지를 띄웠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자신들과 거래하기에 락희화학의 사업체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일본 측과 연락하며 편지를 보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는 법! 결국 일본 향료 회사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락희화학에 거래를 하자는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놀랍게도 향료의 가격은 국내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렇게 하여 구인회 회장은 럭키크림의 원가를 절감하는 데 성공하였다.

 <깨진 크림통의 위기가 새로운 기회로>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졌다. 크림통의 뚜껑이 자꾸 깨진다는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하였다. 옮기는 과정에서 거칠게 다루어 약한 크림통이 서로 부딪치면서 뚜껑이 깨지는 것이었다.

 약속과 신용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구인회에게 이런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인회 회장은 당장 깨지지 않는 크림통 뚜껑을 개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왜냐하면 깨지지 않는 뚜껑을 만들려면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아우 태회 역시 전공 분야가 아니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은 아우 태회에게 한번 도전해보라며, 집 뜰 한가운데 가마솥을 놓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도록 하였다.

 장남 자경까지 합세해 연구를 도왔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시의 기술로 깨지지 않는 크림통 뚜껑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법이다. 구인회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크림통 하나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그 크림통이야말로 구인회 회장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바로 그 재질, 플라스틱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구인회 회장은 당장 그 크림통을 태회의 연구소로 보내 분석하도록 하였다. 비로소 플라스틱이 무엇인지 안 구태회는 연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플라스틱에 대한 책자가 하나도 없었다. 일본에서 플라스틱 제조법이 담긴 책자를 사들여와 연구를 거듭했다.

 알고 보니 플라스틱 제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계와 원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었다. 게다가 원료와 기계만 있으면 크림통 뚜껑뿐만 아니라 빗, 머리핀 등 생활용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즉, 이것은 플라스틱 사업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문제는 단 하나, 기계와 원료의 가격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뭐라고? 2∼3억!”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엄청난 액수였다. 럭키크림으로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야 할 만큼이었다.

 “지금 전쟁(한국전쟁) 때문에 시국이 어수선한데 무리한 투자는 정말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락희화학이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는 의견을 쏟아 놓았다. 사실 지금 락희화학은 럭키크림으로 높은 수익을 내고 있었다. 애써 무리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구인회는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

 “사업이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해야 합니다. 또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생활용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애국하는 길이기도 하니 한번 도전해봅시다.”

 구인회 회장의 진심 어린 말에 나중에는 그렇게 반대하던 사람들도 기꺼이 의견을 받아들였다. 평소 구인회 회장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플라스틱 사업에 투자해야 했던 총 금액이 5억 원으로, 이는 락희화학으로 번 돈 3억 원에다 추가로 2억 원까지 빌려 투자해야 할 만큼 엄청난 돈이 드는 일이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락희화학마저 문을 닫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구인회의 뜻에 따라주었다.

 <최초의 플라스틱 생활용품>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  

 세상에! 이게 그 플라스틱 제품을 마술처럼 찍어낸다는 기계군요!”

 1952년 8월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사출성형기(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기계)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 기계를 들여오는 주인공은 놀랍게도 당시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기업이었던 락희화학의 사장 구인회였다.

 구인회 회장은 부산항에 들어오는 사출성형기를 보면서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사출성형기는 락희화학의 미래가 걸린 기계였다.

 조심스럽게 공장까지 옮긴 기계는 이제 조립 과정을 거쳐 작동하는 순간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구인회, 구태회, 구자경 등 모든 락희화학의 임원진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기계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어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알고 보니 전압에 문제가 있었다. 전압을 조정하고 스위치를 올리니 드디어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야호!”

 여기저기서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원하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기까지 실수의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했다. 사흘 밤을 꼬박 새야 할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고된 시간이 이어졌다.

 드디어 원하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전압이 문제였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전압 기술이 뒤떨어져 있을 때라 지금처럼 일정한 전압을 공급하지 못했다. 전기 기술자들이 전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생각을 다 짜내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플라스틱 빗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빗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척 귀한 물건이었다. 빗이라고 하면 대나무로 만든 빗 정도가 전부인 시절이었다.

 빗 외에도 비눗갑, 칫솔, 담뱃갑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었다. 구인회 회장은 회사의 이름을 ‘동양전기화학공업사’라 붙이고 본격적인 플라스틱 제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플라스틱 제품들>

 “저 좀 살려주십시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구인회는 깜짝 놀랐다.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조금 전 공장에 직접 와서 플라스틱 빗을 사간 사람이었다.

 “경찰이 저더러 홍콩제 밀수품을 가지고 다닌다면서 붙잡고 있습니다.”

 경찰은 손님이 구인회 회장의 공장에서 사간 플라스틱 빗을 홍콩제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구인회 회장은 놀라 굳었던 표정을 확 펴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만큼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플라스틱 빗의 품질이 좋다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까지 플라스틱 빗을 보고 좋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상공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 앞에 플라스틱 빗을 하나 자랑스럽게 내놓으며 말했다.

 “각하, 이것은 외제 빗이 아니라 우리 기술로 만든 빗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플라스틱 빗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특유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했다.

 “매우 훌륭해요. 나한테도 이 빗 하나 줄 수 있나요?”

 이 일화는 사람들 사이에 잉크처럼 번졌다. 품질이 좋은 제품은 잘 팔리기 마련! 이렇게 세상에 선보인 플라스틱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가격을 외제와 비슷하게 매겼는데도 인기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칫솔의 경우 군대에까지 보급돼 판매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오히려 락희화학의 화장품 판매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였다. 경쟁 업체들이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허허, 플라스틱 사업 시작하기를 잘했지. 화장품 하나만 쳐다보고 있었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구인회 회장의 선택은 적중했다. 당시 구인회 회장은 기업이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대다수 임원들의생각처럼 미래에 투자하지 않고 럭키크림만 보고 있었다면 회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훌라후프 선풍을 일으키다>

 “이게 뭐야?”

 구인회 회장은 동생 구평회가 미국에서 가지고 들어온 이상한 물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리처럼 생긴 것으로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형님, 훌라후프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서구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구평회는 직접 훌라후프를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게 생각보다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제야 구인회의 눈이 번쩍 뜨였다.“이거,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거지?”

 “그럼요.”

 그렇게 하여 락희화학은 우리나라 최초로 훌라후프를 만들어 내놓았다. 국민 건강을 위해 운동용으로도 좋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데에도 좋다는 광고와 함께.

 국민들의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어디를 가든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훌라후프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운동 기구가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이 훌라후프를 돌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는 아직 서구적인 문화가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을 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락희화학이 큰돈을 번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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