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공연 앞두고 서면 인터뷰
31일 롯데콘서트홀서 19인조 오케스트라와 무대
재즈와 클래식 넘나들며 그래미 7관왕
빅테크 향한 저항부터 보위와의 협업
장르 경계 허문 거장의 음악 여정…'소리의 민주주의' 빚어
"제 음악, 클래식 정교함·재즈 자발성, 동시에 담아내길"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Photo by Whit Lane) 제공) 2026.07.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01/NISI20260701_0002174392_web.jpg?rnd=20260701075924)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Photo by Whit Lane) 제공) 2026.07.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은 때로 소리의 배열을 넘어, 한 시대의 결핍을 증언하는 투명한 거울이 된다.
현대 재즈계를 대표하는 미국 작·편곡가 겸 지휘자 마리아 슈나이더(Maria Schneider)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오는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그녀의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단순한 거장의 방문을 넘어, 소란스러운 세상에 파동을 일으키는 조용하고도 단호한 윤리적 사건에 가깝다.
타인의 고통과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차라리 불가능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그것에 가닿으려 애쓰며, 슈나이더의 재즈는 바로 그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모두가 발화자가 되려 발버둥 치고 아무도 수신자가 되려 하지 않는 얄팍한 '듣기의 위기' 속에서, 그녀는 19인조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정교한 화성과 날 것의 즉흥성을 통해 타인에게 온전히 귀 기울이는 행위의 숭고함을 증명해 낸다.
클래식과 재즈라는 장르의 아득한 경계를 허물며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 '그래미 어워즈' 7관왕에 오른 그녀의 음악은 '3D 사운드스케이프'로 불린다. 소리가 허공에 흩어지는 대신, 청자의 내면에 구체적인 풍경과 서사를 직조해 내는 까닭이다. 거대 기술이 조장하는 조작된 분노에 맞서 무대 위에서 기꺼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기대는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이 세계에 건네는 서늘하고도 다정한 위로다.
통제와 해방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경계 위에서 '음악적 민주주의'의 최정점을 구현해 온 슈나이더. 그녀와 나눈 서면 인터뷰를 통해, 침묵과 여백마저 쏟아지는 음표보다 더 다급한 발화가 되는 그 깊고 너른 사운드스케이프의 단면을 미리 들여다봤다. 다음은 슈나이더와 나눈 일문일답.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마침내 한국을 처음 찾으십니다. 아시아의 낯선 관객들과 대면하는 이번 내한 공연이 선생님의 긴 음악 여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한국 팬분들께 제 음악과 저희 밴드를 선보일 수 있게 돼 정말 기쁩니다. 실제로 한국에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에, 이번 방문은 마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콘서트에 오시는 분들이 저희 뮤지션들의 뛰어난 기량에 깊은 감동을 받으시길 바라며,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30년 이상 제 음악을 함께 연주해 왔기 때문에, 정말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한 호흡으로 연주합니다."
-선생님의 음악은 '3D 사운드스케이프'라 불립니다. 소리가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넘어, 청자의 마음속에 구체적인 서사와 풍경을 직조해 내는 가장 핵심적인 미학적 장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선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표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곡 과정에 제 자신을 온전히 몰입시키고, 제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작곡은 참 어렵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음악이 제 영혼과 상상력의 가장 깊은 부분에 들러붙기 시작하는 '적절한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 그 자리에 끈기 있게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제가 느끼는 감정의 본질을 그대로 포착해내기를 원합니다. 제가 음악을 지휘할 때, 작곡하면서 상상했던 그 장소-행글라이딩의 경험이든, 정원을 거니는 순간이든-로 제 자신이 이동하는 것처럼 느낀다면, 즉 콘서트 중에 저 스스로가 그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저는 비로소 성공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제 삶의 풍경을 공유하는 동안, 이 음악이 관객분들을 그들만의 세계로 인도하여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현대 재즈계를 대표하는 미국 작·편곡가 겸 지휘자 마리아 슈나이더(Maria Schneider)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오는 3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그녀의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단순한 거장의 방문을 넘어, 소란스러운 세상에 파동을 일으키는 조용하고도 단호한 윤리적 사건에 가깝다.
타인의 고통과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차라리 불가능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그것에 가닿으려 애쓰며, 슈나이더의 재즈는 바로 그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모두가 발화자가 되려 발버둥 치고 아무도 수신자가 되려 하지 않는 얄팍한 '듣기의 위기' 속에서, 그녀는 19인조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정교한 화성과 날 것의 즉흥성을 통해 타인에게 온전히 귀 기울이는 행위의 숭고함을 증명해 낸다.
클래식과 재즈라는 장르의 아득한 경계를 허물며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 '그래미 어워즈' 7관왕에 오른 그녀의 음악은 '3D 사운드스케이프'로 불린다. 소리가 허공에 흩어지는 대신, 청자의 내면에 구체적인 풍경과 서사를 직조해 내는 까닭이다. 거대 기술이 조장하는 조작된 분노에 맞서 무대 위에서 기꺼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기대는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이 세계에 건네는 서늘하고도 다정한 위로다.
통제와 해방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경계 위에서 '음악적 민주주의'의 최정점을 구현해 온 슈나이더. 그녀와 나눈 서면 인터뷰를 통해, 침묵과 여백마저 쏟아지는 음표보다 더 다급한 발화가 되는 그 깊고 너른 사운드스케이프의 단면을 미리 들여다봤다. 다음은 슈나이더와 나눈 일문일답.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마침내 한국을 처음 찾으십니다. 아시아의 낯선 관객들과 대면하는 이번 내한 공연이 선생님의 긴 음악 여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한국 팬분들께 제 음악과 저희 밴드를 선보일 수 있게 돼 정말 기쁩니다. 실제로 한국에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에, 이번 방문은 마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콘서트에 오시는 분들이 저희 뮤지션들의 뛰어난 기량에 깊은 감동을 받으시길 바라며,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30년 이상 제 음악을 함께 연주해 왔기 때문에, 정말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한 호흡으로 연주합니다."
-선생님의 음악은 '3D 사운드스케이프'라 불립니다. 소리가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넘어, 청자의 마음속에 구체적인 서사와 풍경을 직조해 내는 가장 핵심적인 미학적 장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선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표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곡 과정에 제 자신을 온전히 몰입시키고, 제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작곡은 참 어렵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음악이 제 영혼과 상상력의 가장 깊은 부분에 들러붙기 시작하는 '적절한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 그 자리에 끈기 있게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제가 느끼는 감정의 본질을 그대로 포착해내기를 원합니다. 제가 음악을 지휘할 때, 작곡하면서 상상했던 그 장소-행글라이딩의 경험이든, 정원을 거니는 순간이든-로 제 자신이 이동하는 것처럼 느낀다면, 즉 콘서트 중에 저 스스로가 그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저는 비로소 성공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제 삶의 풍경을 공유하는 동안, 이 음악이 관객분들을 그들만의 세계로 인도하여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01/NISI20260701_0002174395_web.jpg?rnd=20260701080052)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작 '아메리칸 크로(American Crow)'는 현대 사회의 '듣기의 위기'를 고발합니다. 모두가 발화자가 되려 하고 아무도 수신자가 되려 하지 않는 이 얄팍한 시대에, 타인의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윤리적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저는 사람들이 알고리즘 기반의 뉴스 피드로부터 연결을 끊고, 그저 서로 대화를 시작하기만 한다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좌파와 우파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져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분노가 너무 격렬해서 가족들끼리도 더 이상 대화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재즈는 '경청'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재즈는 귀를 기울이는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가장 완벽한 음악적 양식입니다."
-거대 기술(Big Tech)이 조장하는 큐레이팅된 분노에 까마귀의 울음소리로 맞서셨습니다. 선생님께 이 까마귀의 날카로운 울음은 단절을 상징하는 소음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잃어버린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연대의 은유인가요?
"'조작된 분노(Curated rage)'는 제가 '아메리칸 크로'를 쓰면서 생각해낸 문구입니다.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은유입니다. 이 곡은 제가 '고통받는 아메리카나(distressed Americana)'라고 부르는 정서를 표현하며 시작된 후, 우리가 서로 귀를 기울이고 협력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즉흥 연주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서로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가 경청되던 시절로 안내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했던 시절 말입니다. 하지만 곡은 곧 우리가 서 있는 오늘날의 현실로 우리를 데려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하지 않으며, 오직 분노를 터뜨릴 또 다른 구실로만 상대의 말을 이용하는 작금의 현실로 말이죠."
-재즈의 즉흥 연주를 '모두가 취약해질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하신 바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기꺼이 드러내고 타인에게 기대는 이 위태로운 과정이,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세상에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몇 년간 저는 제 뮤지션들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는 놀라운 능력, 서로와 제 음악에 대해 보여주는 존중, 주고받는 호흡, 그리고 아무런 사리사욕 없이 즉흥 연주에 기꺼이 뛰어드는 모습을 반복해서 목격해 왔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세계를 서로를 통해 함께 발견해 나가는 모습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이러한 가치들이 우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 과정에서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우리의 선출직 지도자들과 대중들이 제 뮤지션들처럼 서로 귀를 기울이고 협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밴드의 연주를 듣는 것은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범 사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저는 재즈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음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앨범 '데이터 로즈(Data Lords)'와 '아메리칸 크로'는 사회적 서사가 매우 뚜렷합니다. 내면의 서정적인 풍경을 그리던 과거의 앨범들과 비교해, 외부 세계의 폭력성과 직면하고 이를 음악적 언어로 발화하게 되신 결정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세상이 점점 더 데이터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세상이 바뀌었고, 그것이 저를 바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진공 상태에서 글을 쓰지 않으며, 제가 경험하는 것을 씁니다. 뮤지션들은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가장 먼저 이용당하고 착취당한 이들이었으며, 그것이 저를 매우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무료 콘텐츠'에 너무나 매료된 나머지 우리는 이런 상황을 스스로 방치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결코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데이터로 대가를 지불했으며, 이제는 우리 자신의 자아와 자유로운 선택권마저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알고리즘에 의해 이끌리도록 자신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제 음악에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협업을 했습니다. 그는 제 초기 음악 중 더 어두운 곡들을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데이비드가 제 안의 어두운 음악적 색채를 다시 열어젖혀 준 결합이 맞물리면서 억눌려 있던 봇물이 터진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와 협업한 후 가장 먼저 쓴 곡이 바로 '데이터 로즈(Data Lords)'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 스스로 디지털 세계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할 때면, 자연, 시, 침묵,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쓰곤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알고리즘 기반의 뉴스 피드로부터 연결을 끊고, 그저 서로 대화를 시작하기만 한다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좌파와 우파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져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분노가 너무 격렬해서 가족들끼리도 더 이상 대화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재즈는 '경청'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재즈는 귀를 기울이는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가장 완벽한 음악적 양식입니다."
-거대 기술(Big Tech)이 조장하는 큐레이팅된 분노에 까마귀의 울음소리로 맞서셨습니다. 선생님께 이 까마귀의 날카로운 울음은 단절을 상징하는 소음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잃어버린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연대의 은유인가요?
"'조작된 분노(Curated rage)'는 제가 '아메리칸 크로'를 쓰면서 생각해낸 문구입니다.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은유입니다. 이 곡은 제가 '고통받는 아메리카나(distressed Americana)'라고 부르는 정서를 표현하며 시작된 후, 우리가 서로 귀를 기울이고 협력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즉흥 연주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서로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가 경청되던 시절로 안내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했던 시절 말입니다. 하지만 곡은 곧 우리가 서 있는 오늘날의 현실로 우리를 데려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하지 않으며, 오직 분노를 터뜨릴 또 다른 구실로만 상대의 말을 이용하는 작금의 현실로 말이죠."
-재즈의 즉흥 연주를 '모두가 취약해질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하신 바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기꺼이 드러내고 타인에게 기대는 이 위태로운 과정이,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세상에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몇 년간 저는 제 뮤지션들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는 놀라운 능력, 서로와 제 음악에 대해 보여주는 존중, 주고받는 호흡, 그리고 아무런 사리사욕 없이 즉흥 연주에 기꺼이 뛰어드는 모습을 반복해서 목격해 왔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세계를 서로를 통해 함께 발견해 나가는 모습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이러한 가치들이 우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 과정에서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우리의 선출직 지도자들과 대중들이 제 뮤지션들처럼 서로 귀를 기울이고 협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밴드의 연주를 듣는 것은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범 사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저는 재즈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음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앨범 '데이터 로즈(Data Lords)'와 '아메리칸 크로'는 사회적 서사가 매우 뚜렷합니다. 내면의 서정적인 풍경을 그리던 과거의 앨범들과 비교해, 외부 세계의 폭력성과 직면하고 이를 음악적 언어로 발화하게 되신 결정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세상이 점점 더 데이터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세상이 바뀌었고, 그것이 저를 바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진공 상태에서 글을 쓰지 않으며, 제가 경험하는 것을 씁니다. 뮤지션들은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가장 먼저 이용당하고 착취당한 이들이었으며, 그것이 저를 매우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무료 콘텐츠'에 너무나 매료된 나머지 우리는 이런 상황을 스스로 방치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결코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데이터로 대가를 지불했으며, 이제는 우리 자신의 자아와 자유로운 선택권마저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알고리즘에 의해 이끌리도록 자신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제 음악에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협업을 했습니다. 그는 제 초기 음악 중 더 어두운 곡들을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데이비드가 제 안의 어두운 음악적 색채를 다시 열어젖혀 준 결합이 맞물리면서 억눌려 있던 봇물이 터진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와 협업한 후 가장 먼저 쓴 곡이 바로 '데이터 로즈(Data Lords)'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 스스로 디지털 세계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할 때면, 자연, 시, 침묵,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쓰곤 했습니다."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01/NISI20260701_0002174396_web.jpg?rnd=20260701080116)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데이터 로즈'와 '아메리칸 크로'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기본적으로 저는 거대 데이터 기업(빅테크)들이 우리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이 우려해 왔습니다. 아이들도, 성인들도 모두 기기에 중독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에코 체임버(반향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 고립감과 극심한 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자가 됐습니다. 기술이 약속했던 '연결'은 대체로 거짓 약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파괴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제 앨범은 이미 수년 전에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2014년에 저는 타이틀곡인 '데이터 로즈'를 썼는데, 그 곡의 핵심 아이디어는 AI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가 직면한 매우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됐습니다. '아메리칸 크로'는 우리가 이제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된 현실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선동되고 양극화돼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의지조차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함께 모이기를 거부하는 사회입니다. 이 곡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과 재즈 즉흥 연주를 활용합니다. 서울에서도 이 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 저희가 만든 관련 영상이 있으니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장엄하고 영리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시끄럽고 장난기 가득한 '아메리칸 까마귀(American Crow)'라는 새를 통해, 협동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사회를 묘사하는 동시에 우리가 과거에 가졌으나 지금은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저는 원래 유튜브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이 영상을 올렸습니다. 유튜브가 데이터를 손쉽게 수집하기 위해 모든 이들의 음악을 공짜로 공유하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찍이 그 이면을 보았고 많은 이들보다 먼저 이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크로'가 가진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 싶었기에, 결국 굴복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하게 됐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공유할지 말지에 대해 언제나 스스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앨범 '블랙스타(Blackstar)'의 맹아를 함께 틔우셨습니다. 타인의 짙은 어둠 속으로 기꺼이 침투해 보신 경험이, 이후 선생님 고유의 오케스트라에 어두운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제가 겪어본 데이비드는 조금도 어두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며, 명석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단지 어두운 것들을 쓰는 과정을 '즐겼던'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협업할 때 제가 이 곡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묻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뱀파이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저는 그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직전까지 함께 일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저에게 어두운 음악을 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주 해방감을 주는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삶에 그런 정서가 들어오기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기도 했습니다. 빅데이터의 세계는 저에게 어두운 감정을 느낄 만한 핑계를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으니까요."
-2004년부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아티스트셰어(ArtistShare)'로 앨범을 제작하며 거대 플랫폼의 착취에 반기를 드셨습니다. 선생님께 예술가의 독립성이란 단순히 자본으로부터의 탈피를 넘어, 창작의 호흡과 침묵의 시간까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하는지요?
"안타깝게도 현재의 관행적인 시스템은 '스트리밍'입니다. 물론 전 세계 거의 모든 음악을 한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양이 많아진다고 해서 항상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프로젝트 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는 뮤지션들에게 스트리밍은 재정적인 재앙입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프로젝트 자금을 직접 대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런 투자를 한다면, 최소한 투자한 돈의 대부분을 회수하거나 적어도 일부라도 건질 수 있는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포티파이의 경우, 상위 약 10%의 음악이 전체 스트리밍 횟수의 99%를 차지합니다. 이는 곧 그 10%의 음악이 스포티파이가 지급하는 정산금의 99%를 나누어 갖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90%의 음악이 단 1%의 재정적 파이를 나눠 가지며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려 90%의 음악이 말입니다! 여기에는 재즈, 클래식, 월드 뮤직의 거의 대부분과 수많은 팝 음악까지 포함됩니다. 이 뮤지션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음반 제작비를 직접 지불하고 있지만, 녹음 비용을 회수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습니다. 악몽 같은 일입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을까요. 고맙게도 저는 이 상황에서 제 자신을 크게 격리시켰지만, 지금의 젊은 뮤지션들이 다른 대안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이 걱정됩니다. 저는 주로 저만의 아티스트셰어 웹사이트를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지만, 저는 유튜브와 스포티파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이미 대다수의 팬층을 확보해 둔 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음악을 찾기 위해 스포티파이를 넘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제 녹음물의 소유권을 직접 가지고 있고 팬들에게 직판하기 때문에, 앨범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녹음 비용을 고려해 스스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제작비를 회수하고 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에게 지불하기 위해서이죠. 이것이 올바른 비즈니스이며 상식입니다. 스포티파이가 90%의 뮤지션들에게 제시하는 시나리오를 자처해서 선택할 비즈니스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뮤지션들이 원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 3대 레이블이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포티파이와 계약을 맺은 결과입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음악 '산업'이 평범한 일선 뮤지션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혔습니다."
-'스푸트니크(Sputnik)'나 '홈(Home)' 같은 곡들은 미네소타 소도시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과 광활한 우주의 공간감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개인의 미시적인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거대한 교향악적 보편성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지 그 작곡의 논리가 궁금합니다.
"제가 작곡할 때 딱히 어떤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논리적인 면도 존재하긴 하겠죠. 저는 제 음악의 모든 순간이-비록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있을지라도-어떻게든 필연적인 흐름처럼 느껴지도록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곡을 쓰려고 앉았을 때, 종종 저는 그저 특정한 '소리'만을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어떤 기억이나 감각에 들러붙게 되면, 그 감각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살아 숨 쉬게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죠. 만약 그 감각이 우주처럼 거대하다면 음악도 웅장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음악은 더 친밀하고 아늑한 곳으로 향하겠지요. 음악은 감정을 따릅니다. 감정이 음악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저에게도 미스터리입니다. 만약 제가 그 방법을 완벽하게 다 알고 있었다면,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번 작곡을 하려고 하얀 빈 종이를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그 특유의 공포감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거대 데이터 기업(빅테크)들이 우리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이 우려해 왔습니다. 아이들도, 성인들도 모두 기기에 중독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에코 체임버(반향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 고립감과 극심한 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자가 됐습니다. 기술이 약속했던 '연결'은 대체로 거짓 약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파괴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제 앨범은 이미 수년 전에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2014년에 저는 타이틀곡인 '데이터 로즈'를 썼는데, 그 곡의 핵심 아이디어는 AI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가 직면한 매우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됐습니다. '아메리칸 크로'는 우리가 이제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된 현실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선동되고 양극화돼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의지조차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함께 모이기를 거부하는 사회입니다. 이 곡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과 재즈 즉흥 연주를 활용합니다. 서울에서도 이 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 저희가 만든 관련 영상이 있으니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장엄하고 영리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시끄럽고 장난기 가득한 '아메리칸 까마귀(American Crow)'라는 새를 통해, 협동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사회를 묘사하는 동시에 우리가 과거에 가졌으나 지금은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저는 원래 유튜브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이 영상을 올렸습니다. 유튜브가 데이터를 손쉽게 수집하기 위해 모든 이들의 음악을 공짜로 공유하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찍이 그 이면을 보았고 많은 이들보다 먼저 이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크로'가 가진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 싶었기에, 결국 굴복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하게 됐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공유할지 말지에 대해 언제나 스스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앨범 '블랙스타(Blackstar)'의 맹아를 함께 틔우셨습니다. 타인의 짙은 어둠 속으로 기꺼이 침투해 보신 경험이, 이후 선생님 고유의 오케스트라에 어두운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제가 겪어본 데이비드는 조금도 어두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며, 명석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단지 어두운 것들을 쓰는 과정을 '즐겼던'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협업할 때 제가 이 곡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묻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뱀파이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저는 그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직전까지 함께 일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저에게 어두운 음악을 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주 해방감을 주는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삶에 그런 정서가 들어오기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기도 했습니다. 빅데이터의 세계는 저에게 어두운 감정을 느낄 만한 핑계를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으니까요."
-2004년부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아티스트셰어(ArtistShare)'로 앨범을 제작하며 거대 플랫폼의 착취에 반기를 드셨습니다. 선생님께 예술가의 독립성이란 단순히 자본으로부터의 탈피를 넘어, 창작의 호흡과 침묵의 시간까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하는지요?
"안타깝게도 현재의 관행적인 시스템은 '스트리밍'입니다. 물론 전 세계 거의 모든 음악을 한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양이 많아진다고 해서 항상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프로젝트 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는 뮤지션들에게 스트리밍은 재정적인 재앙입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프로젝트 자금을 직접 대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런 투자를 한다면, 최소한 투자한 돈의 대부분을 회수하거나 적어도 일부라도 건질 수 있는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포티파이의 경우, 상위 약 10%의 음악이 전체 스트리밍 횟수의 99%를 차지합니다. 이는 곧 그 10%의 음악이 스포티파이가 지급하는 정산금의 99%를 나누어 갖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90%의 음악이 단 1%의 재정적 파이를 나눠 가지며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려 90%의 음악이 말입니다! 여기에는 재즈, 클래식, 월드 뮤직의 거의 대부분과 수많은 팝 음악까지 포함됩니다. 이 뮤지션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음반 제작비를 직접 지불하고 있지만, 녹음 비용을 회수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습니다. 악몽 같은 일입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을까요. 고맙게도 저는 이 상황에서 제 자신을 크게 격리시켰지만, 지금의 젊은 뮤지션들이 다른 대안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이 걱정됩니다. 저는 주로 저만의 아티스트셰어 웹사이트를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지만, 저는 유튜브와 스포티파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이미 대다수의 팬층을 확보해 둔 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음악을 찾기 위해 스포티파이를 넘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제 녹음물의 소유권을 직접 가지고 있고 팬들에게 직판하기 때문에, 앨범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녹음 비용을 고려해 스스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제작비를 회수하고 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에게 지불하기 위해서이죠. 이것이 올바른 비즈니스이며 상식입니다. 스포티파이가 90%의 뮤지션들에게 제시하는 시나리오를 자처해서 선택할 비즈니스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뮤지션들이 원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 3대 레이블이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포티파이와 계약을 맺은 결과입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음악 '산업'이 평범한 일선 뮤지션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혔습니다."
-'스푸트니크(Sputnik)'나 '홈(Home)' 같은 곡들은 미네소타 소도시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과 광활한 우주의 공간감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개인의 미시적인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거대한 교향악적 보편성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지 그 작곡의 논리가 궁금합니다.
"제가 작곡할 때 딱히 어떤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논리적인 면도 존재하긴 하겠죠. 저는 제 음악의 모든 순간이-비록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있을지라도-어떻게든 필연적인 흐름처럼 느껴지도록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곡을 쓰려고 앉았을 때, 종종 저는 그저 특정한 '소리'만을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어떤 기억이나 감각에 들러붙게 되면, 그 감각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살아 숨 쉬게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죠. 만약 그 감각이 우주처럼 거대하다면 음악도 웅장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면 음악은 더 친밀하고 아늑한 곳으로 향하겠지요. 음악은 감정을 따릅니다. 감정이 음악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저에게도 미스터리입니다. 만약 제가 그 방법을 완벽하게 다 알고 있었다면,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번 작곡을 하려고 하얀 빈 종이를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그 특유의 공포감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by Katharina Poblotzki) 제공) 2026.07.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01/NISI20260701_0002174394_web.jpg?rnd=20260701080006)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by Katharina Poblotzki) 제공) 2026.07.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단원들이 솔로 연주를 할 때 '화성적인 구속복'을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한 자유를 주기도 하십니다. 통제와 해방이라는 이 이율배반적인 경계 위에서, 선생님께서 궁극적으로 앙상블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시는 자유의 형태는 무엇입니까? 선생님의 오케스트라는 멤버들이 서로 대화하고 양보하며 소리를 쌓아 올리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는 구성원 각자가 타인을 감각하고 배려해야만 성립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축도로 보입니다. 밴드를 이끄는 지휘자로서 이 '음악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그러한 조율의 많은 부분은 리허설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콘서트에서 다양한 방향성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이뤄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솔로 연주자들과 리듬 섹션은 곡의 방향성과 감정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들이 언제나 적혀 있는 악보의 맥락 안에서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콘서트 중에 제가 그 모든 것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지만, 리듬 섹션으로부터 특정 느낌을 끌어내려고 유도하거나 앙상블이 균형감과 표현력을 갖추도록 노력합니다. 무대 위 밴드에 앉아 있는 뮤지션들은 개별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전면에 서 있는 저처럼 전체적인 그림을 다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의 균형과 역동적인 윤곽을 형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신호를 보냅니다."
-런던 바비칸 공연 등에서 보여주신 앙상블의 다이내믹은 거대한 파도 같은 굉음부터 실내악 수준의 정적까지 아우릅니다. 선생님의 작곡에서 '침묵' 혹은 '여백'은 단순히 소리의 부재인가요, 아니면 쏟아지는 음표들보다 더 다급한 발화인가요?
"그것은 제 초기 음악에는 그리 많지 않았던 요소였습니다. 사실 저는 클라렌스 펜(Clarence Penn)이라는 훌륭한 드러머와 함께 작업하면서 이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끔 그가 연주를 뚝 멈추곤 했는데, 그때 밴드가 여백을 찾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제 음악 안에서 이전에는 고려하지 못했던 공간(여백)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느낌이 정말 좋았고, 이는 제 작곡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많은 여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제 뮤지션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단지 제가 저만의 진공 상태에서 써 내려간 음악을 기계적으로 연주해 온 것이 아닙니다. 제 음악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써 내려간 결과물입니다. 만약 제가 지난 세월 동안 다른 뮤지션들과 작업했더라면, 제 음악은 분명 지금과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미 어워즈 재즈와 클래식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신 드문 이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장르의 앙상한 경계표가 무의미해진 현대 음악 신에서, 정교하게 통제된 클래식적 화성과 날 것의 재즈적 즉흥성은 선생님 안에서 어떻게 화해하고 융합하나요?
"클래식 음악은 오랜 발전의 역사와 화성적인 찬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경이롭고 광활한 세계죠. 하지만 제가 재즈 뮤지션들을 위해 곡을 쓰는 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제 음악이 매 공연마다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하기 때문입니다. 매번 지속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약 매 연주마다 음악이 기본적으로 똑같았다면, 저는 제 음악을 수없이 반복해서 지휘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 '즉흥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작곡가로서 까다로운 부분은, 이러한 즉흥 연주 섹션들이 마치 정교하게 작곡된 흐름처럼 느껴지도록 구조를 짜는 일입니다. 곡을 쓸 때 이 부분을 세심히 신경 써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에고만을 내세우지 않고 음악과 서로를 위해 연주할 줄 아는 섬세한 뮤지션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저희 밴드는 연주할 때마다 제 음악을 늘 살아 숨 쉬고 신선하게 만들어 줍니다. 제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정교함과 재즈의 자발성을 동시에 담아내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는 음악을 통해 기어이 그 불가능에 다가가려 애씁니다. 선생님께서 빚어내시는 복잡하고 치밀한 악기들의 배합은, 이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오독 없이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언어일까요? 이번 한국 공연을 찾는 관객들은 선생님의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 안에서 각자의 서사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공연장을 나설 때, 귀에 남는 잔향의 여운을 넘어 타인을 향한 시선과 마음의 온도가 조금은 달라져 있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저는 그저 관객분들이 마음 깊이 감동을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저희 밴드의 음악을 들을 때 영혼이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제 음악의 상당 부분은 삶의 활력, 기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어두운 곡들의 경우에도 그것이 아름답고 심지어 즐겁게 느껴지기를 바라며, 관객이 감동을 받는다면 그 경험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힘을 얻어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공연장 객석 조명을 아주 살짝만 켜둔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관객들의 얼굴을 보는 것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밴드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일 때 훨씬 더 연주를 잘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됩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의 미소를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순간입니다. 그것은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공연 전체의 경험을 아름다운 선순환의 고리로 만들어 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그러한 조율의 많은 부분은 리허설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콘서트에서 다양한 방향성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이뤄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솔로 연주자들과 리듬 섹션은 곡의 방향성과 감정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들이 언제나 적혀 있는 악보의 맥락 안에서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콘서트 중에 제가 그 모든 것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지만, 리듬 섹션으로부터 특정 느낌을 끌어내려고 유도하거나 앙상블이 균형감과 표현력을 갖추도록 노력합니다. 무대 위 밴드에 앉아 있는 뮤지션들은 개별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전면에 서 있는 저처럼 전체적인 그림을 다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의 균형과 역동적인 윤곽을 형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신호를 보냅니다."
-런던 바비칸 공연 등에서 보여주신 앙상블의 다이내믹은 거대한 파도 같은 굉음부터 실내악 수준의 정적까지 아우릅니다. 선생님의 작곡에서 '침묵' 혹은 '여백'은 단순히 소리의 부재인가요, 아니면 쏟아지는 음표들보다 더 다급한 발화인가요?
"그것은 제 초기 음악에는 그리 많지 않았던 요소였습니다. 사실 저는 클라렌스 펜(Clarence Penn)이라는 훌륭한 드러머와 함께 작업하면서 이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끔 그가 연주를 뚝 멈추곤 했는데, 그때 밴드가 여백을 찾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제 음악 안에서 이전에는 고려하지 못했던 공간(여백)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느낌이 정말 좋았고, 이는 제 작곡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많은 여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제 뮤지션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단지 제가 저만의 진공 상태에서 써 내려간 음악을 기계적으로 연주해 온 것이 아닙니다. 제 음악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써 내려간 결과물입니다. 만약 제가 지난 세월 동안 다른 뮤지션들과 작업했더라면, 제 음악은 분명 지금과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미 어워즈 재즈와 클래식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신 드문 이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장르의 앙상한 경계표가 무의미해진 현대 음악 신에서, 정교하게 통제된 클래식적 화성과 날 것의 재즈적 즉흥성은 선생님 안에서 어떻게 화해하고 융합하나요?
"클래식 음악은 오랜 발전의 역사와 화성적인 찬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경이롭고 광활한 세계죠. 하지만 제가 재즈 뮤지션들을 위해 곡을 쓰는 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제 음악이 매 공연마다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하기 때문입니다. 매번 지속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약 매 연주마다 음악이 기본적으로 똑같았다면, 저는 제 음악을 수없이 반복해서 지휘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 '즉흥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작곡가로서 까다로운 부분은, 이러한 즉흥 연주 섹션들이 마치 정교하게 작곡된 흐름처럼 느껴지도록 구조를 짜는 일입니다. 곡을 쓸 때 이 부분을 세심히 신경 써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에고만을 내세우지 않고 음악과 서로를 위해 연주할 줄 아는 섬세한 뮤지션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저희 밴드는 연주할 때마다 제 음악을 늘 살아 숨 쉬고 신선하게 만들어 줍니다. 제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정교함과 재즈의 자발성을 동시에 담아내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분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는 음악을 통해 기어이 그 불가능에 다가가려 애씁니다. 선생님께서 빚어내시는 복잡하고 치밀한 악기들의 배합은, 이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오독 없이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언어일까요? 이번 한국 공연을 찾는 관객들은 선생님의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 안에서 각자의 서사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공연장을 나설 때, 귀에 남는 잔향의 여운을 넘어 타인을 향한 시선과 마음의 온도가 조금은 달라져 있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저는 그저 관객분들이 마음 깊이 감동을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저희 밴드의 음악을 들을 때 영혼이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제 음악의 상당 부분은 삶의 활력, 기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어두운 곡들의 경우에도 그것이 아름답고 심지어 즐겁게 느껴지기를 바라며, 관객이 감동을 받는다면 그 경험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힘을 얻어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공연장 객석 조명을 아주 살짝만 켜둔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관객들의 얼굴을 보는 것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밴드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일 때 훨씬 더 연주를 잘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됩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의 미소를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순간입니다. 그것은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공연 전체의 경험을 아름다운 선순환의 고리로 만들어 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