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환쟁이라 불릴지라도"…'겸재 정선'

기사등록 2026/02/04 16:40:45

[서울=뉴시스] 겸재 정선 (사진=창비 제공) 2026.02.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겸재 정선 (사진=창비 제공) 2026.02.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그는 당대의 문화적 성숙에 힘입어 이를 자신의 숙명적 과업으로 여기고, 신분을 떨쳐버린 채 남들이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 않고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화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과 의지로 이와 같은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322면)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畫聖)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을 이렇게 평했다.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의 세계적 예술성을 바탕으로 우리 산천을 그려내 조선 진경산수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예술가이자, 우리 미술사에서 가장 먼저 다뤄야 할 화인(畫人)이다.

우리 미술사를 빛낸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작업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온 유 관장은 2018년 『추사 김정희』에 이어 '화인열전' 시리즈를 전면 개정했다.

올해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을 맞아 유 관장은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 가운데 '겸재 정선'(창비)을 통해 겸재 정선의 작품과 함께 그의 일대기를 다뤘다.

저자는 겸재의 예술 여정을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진경산수를 개척해가는 모색기(60세 이전), 둘째는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하는 확립기(60대), 셋째는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원숙기(70대 이후)다.

겸재는 20대는 물론 30대 전반까지도 특별한 이력이나 화력을 보이지 않았다. 제작 시기가 알려진 첫 작품은 36세 때인 1711년(신묘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1712년(임진년) 다시 금강산을 유람한 뒤에는 '해악전신첩'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저자는 이 과정을 두고 "겸재가 섣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 점에서 겸재는 대기만성형의 대가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저자는 화가의 전기는 단지 인물사로서의 미술사에 그쳐서는 안 되며, 당대성과 보편적 가치를 함께 다루는 인간학으로서의 미술사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 책에서 겸재 정선의 삶과 작품을 바라본 시각이자, 앞으로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가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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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환쟁이라 불릴지라도"…'겸재 정선'

기사등록 2026/02/04 16:40:45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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