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김창열·하종현·최명영·이강소·윤형근·강민수
뉴시스·아트조선·TV CHOSUN 연합 ‘아트픽 30’전시
8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전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트픽 30'전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미술애호가들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꼬마들부터 중학생 등 청소년층 관람도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1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는 "유명 작가의 대작과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미술 평론가과 전시 기획자들도 잇따라 방문해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국 현대 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교육적인 효과는 물론, 다양한 세대에 걸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라고 했다.
'아트픽 30'전은 작품성·대중성·시장성 3박자를 갖춘 동시대 한국 대표 현대미술 작가들로 포진됐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 하종현 화백부터 한국 미술을 이끈 김창열·윤형근 화백을 비롯해 현대 국내외 미술계에서 가장 인기인 이배, 이강소, 최영욱, 김현식, 정영주, 김남표, MZ들에 핫템들의 등극한 이사라, 채민진, 다다즈, 권한나 등 국내 작가 30명의 150여 점을 전시 판매한다.
20대부터 90대까지 세대를 망라한 국내 현대미술가 30인을 한자리에 모은 '아트픽 30'은 뉴시스와 TV CHOSUN, ART CHOSUN(아트조선)이 손잡고 기획한 미디어 연합 전시다. 국내 최대 민간 통신사가 국내 최고 종합편성채널과 의기투합해 엄선한 작가들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작가들의 작업세계와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단순히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이 품고 있는 작가의 예술관과 그에 내재된 작업 세계를 대중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선보여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가들을 널리 알린다는 목표다.
지난해 한국 미술 시장은 미술품 거래 총액 사상 첫 1조 원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작가들의 현실은 '빚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MZ컬렉터 증가와, 해외 유명 갤러리들의 잇단 서울 진출로 한국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아트마켓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한 환경 변화 속에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 전망은 밝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아트페어 열기로 양적 성장을 했지만 정작 한국 미술가들의 역량은 뒷전으로 밀린 채 작품 가격과 아트테크에 매몰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해외 갤러리들의 잇단 지점 개설로 한국 작가들의 자리가 좁아지는 생태계 교란도 낳고 있다.
‘아트픽 30(Art Pick 30)’은 '이대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 태동했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 모아 보여줌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생성과 전개 그리고 미래까지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끔 기획됐다.
명작은 디테일의 차이다. '아트픽 30'전에 선정된 작품은 노동집약적이고 내공이 강한게 공통점이다. 그림은 차별화가 생명이다. '아트픽 30전'은 30인 30색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함과 깊이감을 전한다. 다채로운 소재와 다양한 기법으로 무장해 고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30인이 참여하는 전시인 만큼, 3회에 걸쳐 전시장에 작품이 설치된 순으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관람 설명서를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와 함께 연재한다. 전시는 8월9일까지 한가람미술관 2층 전관에서 열린다.
단색화 거장의 화려함...박서보의 ‘묘법’
‘묘법’은 말 그대로 ‘묘법(妙法)’과도 같은데, 불타오르는 단풍처럼, 때로는 수평선에 걸친 섬처럼 흡사 자연을 그대로 옮겨 화폭 위에 펼쳐놓은 것 같은 오묘하며 우미한 화면은 보는 이를 침잠의 심연으로 매혹하는 듯하다. 자연과의 합일이 오늘날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깨닫고 자연의 아량과 포용을 닮은 색을 구현해 현대인의 정서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치유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다.
컬러 묘법 옆에는 작가의 ‘초기 묘법’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연필 작업들도 내걸렸다. 초기 묘법 시기의 연필 작업은 당시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했다. 연필 잡는 법조차 어설픈 어린 아들이 방안지 공책에 한글 쓰기 연습을 한답시고 작은 칸 속에 글자를 집어넣고 있었는데, 삐뚤빼뚤한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애써 쓴 글자를 연필로 죽죽 그어 찌그려 버리더라는 것. 여기서 박서보는 ‘체념의 미학’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름 그 자체로 예술세계가 온전히 설명되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선도한 박서보의 197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제작된 후기 묘법, 그리고 프린트 에디션까지 감상할 수 있다.
그냥 물방울이 아니다...김창열의 ‘물방울’
조부로부터 배운 천자문과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문명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천자문을 깨치던 배움의 원점으로 돌아가 정신적 수행을 실현하고자 한 작가적 의지가 읽힌다. 그중에서도 천자문과 물방울이 서로 종횡하는 300호 대작 ‘Recurrence’(1993)는 놓치지 말아야 할 이번 전시의 백미다.
뒤에서 밀어붙인 단색의 몸부림...하종현의 '배압법'
그는 전위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한 196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물성 탐구 기간을 거치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군량미를 담아 보내던 마대자루를 비롯해 밀가루, 신문, 철조망 등 비전통적 매체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업방식을 시도했다. ‘접합’ 시리즈는 마대자루를 활용한 이때의 경험에서 기인해 작가 고유의 기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포 고유의 색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검게 칠한 작품 ‘Conjunction 14-145’(2014), 자연적인 성향의 색채가 정겨운 ‘Conjunction 99-102’(1999)를 감상할 수 있다.
단순하고 담백한 가치 탐구...최명영의 ‘평면조건’
송곳으로 종이에 천공(穿孔)을 내거나 손가락 끝에 물감을 발라 지문 찍기를 거듭하는 식의 끊임없는 반복은 최명영의 작업 세계를 완성하는 중추적 요소 중 하나다.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은 수행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물감과 질료의 정신화를 이뤄내는 것으로, 개성을 제거한 단일 색채와 질감만으로 회화, 즉 평면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규명해냈다.
회화란 무엇인가… 이강소 '바람이 분다'
이강소는 실험미술의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던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설치,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회화, 조각 등 매체를 구분하지 않고 특정 사조나 형식적 방법론에 안주하지 않은 작가로 꼽힌다. 작가는 ‘아트픽 30’에 세련된 회색조의 대작 회화와 현대적인 초록 빛깔의 회화를 내줬다.
담대한 절제미...윤형근의 ‘검은 기둥’
이번 전시에는 윤형근의 1990년대작 회화가 대거 출품됐다. 작가의 화업에서 언급할 만한 변곡점이 몇 개 있지만, 그중에서도 1991년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의 만남은 빼놓을 수 없다. 윤형근은 저드와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단순화된 형을 추구하게 된다. 이를테면 검은 칼럼은 보다 엄정하고 단호해지며 또렷한 사각의 형태를 띠게 되며, 색채 또한 더욱 명백해진 검은빛을 내뿜게 된다. 한결 엄격하며 형상이 간결해진 것인데,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갈수록 이전 작업에서 보이던 엷은 번짐 따위는 서서히 종적을 감춘다. 저드 특유의 미니멀리즘에 미학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둘은 동료이자 친구로서도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를 계기로 윤형근은 단순함과 질박함을 합일하며 동시에 동서양을 넘나드는 국제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하게 된 시기로도 평가받는다.
강민수의 달항아리...열 개의 얼굴이 있다
오랜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는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며 20년 넘게 담박한 달항아리를 선보여 왔다. 특히 그의 달항아리가 뿜어내는 설백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특성이 있다. 번쩍이는 백색이 아닌, 차분하고 은은한 온백색으로도 보이는 달항아리는 소나무 장작으로만 때 굽는 전통가마에서 태어난다. 옛 달항아리에서 나타나는 그 색감을 낼 수 있어 과정은 지난하지만 오직 전통가마를 고집한다. 하나의 달항아리임에도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색이 달리 느껴지기도 해, 흡사 열 개의 다른 달항아리로 다가오는 듯하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멋과 아름다움이 침윤하는 강민수의 달항아리가 윤형근의 회화와 ‘찰떡’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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