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열혈사제' 반전의 수녀님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다"
드라마 ‘밀회’(2014)에서는 20년지기 ‘혜원’(김희애)의 몰락을 기다리며 권력을 향한 야망을 드러냈다. ‘남자친구’(2018~2019)에선 ‘진혁’(박보검)의 엄마 역을 맡아 깊은 모성애를 보여줬다. 평범해 보이지만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탤런트 백지원(46)의 이야기다.
최근 막을 내린 SBS TV 금토극 ‘열혈사제’에서 구담성당 주임수녀 ‘김인경’ 역을 열연했다. 누구보다 분노조절장애 가톨릭 사제 ‘해일’(김남길)을 아끼며 따뜻한 성품을 자랑한 인물이다. 중후반부 김인경 수녀는 한때 도박판을 제패한 전설의 타짜 ‘평택 십미호’로 밝혀져 반전을 줬다.
“하하하. 반전이 있는 인물이라는 건 알았지만, 김수녀가 타짜 출신일 줄은 몰랐다. 처음에 시놉시스에는 아이돌 출신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작가님이 내 얼굴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걸까? 내 외모와 걸그룹은 안 어울리지 않느냐. 중간에 ‘타짜로 바뀔 것 같다’고 얘기해줘서 ‘내가 알고 있는 타짜가 맞나?’, ‘화투를 못 치는데 어떡하지?’ 걱정했다. 걸그룹 출신이라고 해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타짜는 뭘 연습해야 되나?’ 싶더라. 조금 의외였다.”
“시청률 19.8%가 나왔더라. 20%에 턱걸이는 못 했지만, 주인공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줘서 다행”이라며 “한 작품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처음이다. 두 인물인 것 같지만, 한 사람이라는 걸 잃지 않고 감정 표현이 전달됐으면 했다. 여전히 화투는 못 친다. 극본에 ‘대한민국에 화투 한 번 안 쳐본 사람이 어디 있냐’라고 적힌 걸 보고 ‘바로 나!’라고 했다. 화투 패 4개가 짝이라는 것만 안다”며 웃었다.
백지원은 실제로 가톨릭 신자다. 처음에는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존의 수녀 캐릭터와 다른 매력에 매료됐다.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김수녀를 연기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녀복을 입는 자체 만으로도 떨렸다면서 “일상적인 경험이 아니니까. 수녀가 되기 위해 수양한 긴 시간과 과정이 오롯이 느껴져서 수녀복을 입는 순간 마음이 경건해지고 설렜다”고 설명했다.
김 수녀는 사소한 일에도 버럭하고, 신부와 티격태격하며 재미를 줬다. 실제로 만난 백지원은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김 수녀가 가장 애정이 간다. 우여곡절이 많고, 아픈 서사를 가진 인물”이라고 짚었다.
“‘열혈사제’는 내 모든 에너지를 쏟게 해준 작품이다. 김 수녀를 만나서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그 때 그 때 꺼내 요긴하게 잘 썼다. 감정기복이 좀 심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만족한다. 스스로도 많이 트였다고 할까. 이전 작품을 했을 때와 반응도 확실히 다르다.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졌고, ‘진짜 수녀님 같았어요’라고 해줘서 다행이다. 실제로는 전혀 우아하지 않다. (웃음)”
극중에선 김남길(38)의 조력자였지만, 촬영장에서는 반대였다. 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리더로서 완벽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본인의 일이 아닐 때도 대신 목소리를 내줬다. 사실 자신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상대방을 받쳐주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것을 우선시하는게 당연한데, 김남길씨는 오히려 상대방에 더 맞춰줬다. 그래서 ‘열혈사제’의 모든 캐릭터가 빛난 게 아닐까. 어느 순간 모든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배려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런 현장은 처음이다.”
‘구담 어벤저스’로 불린 해일, 경선, 대영, 승아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사랑 받았다. 백지원이 꼽은 신스틸러는 누구일까. “누가 뭐래도 ‘장룡’(음문석)과 ‘쏭삭’(안창환) 커플”이라며 “모든 배우들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줬다. 다들 적당히 하는 법이 없었고, 충분히 제 몫을 해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었다. 시즌2 한다면? 무조건 가즈아~”라며 웃기기도 했다.
“연기 잘하는 비결? 하하하하하하하 그런 건 없다. 모든 인물을 만날 때 똑같은 에너지를 발휘하기 때문 아닐까. 어떤 인물은 ‘이 만큼만 준비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에너지를 덜 쓰지 않는다. 분량이 적든 많은 그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은 완벽하게 젖어 있으려고 한다. 사실 마흔쯤 됐을 때 연기를 접으려고 했는데, 작품을 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바로 ‘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놓고, 작품 들어오니까 신나서 하는 걸 보고 ‘연기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주인공 욕심은 전혀 없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나 잘 안다. ‘(주인공을) 못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지는 않을거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릇은 또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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