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우데자네이루=AP/뉴시스】브라질 '좌파의 상징'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 룰라 다 시우바 여사가 3일(현지시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은 이날 성명에서 마리자 여사가 지난 2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이날 오후 6시57분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마리사 여사는 지난달 24일부터 뇌졸중으로 상파울루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었다. 룰라 전 대통령과 마리자 여사가 지난 2003년 1월25일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이타마라티 궁에서 열린 한 기념식에서 참석한 모습. 2017.02.04
【상파울루=AP/뉴시스】이수지 기자 = 브라질 '좌파의 상징'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 룰라 다 시우바 여사가 3일(현지시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뇌졸중으로 상파울루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이날 성명에서 마리자 여사가 지난 2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이날 오후 6시57분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내 사망 소식을 확인하면서 "아내는 브라질의 영원한 영부인"이라는 글과 함께 국내외 여행과 공식 행사에서 아내와 함께 한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에 “아내와 처음 만났던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시 교외공업단지에 있는 금속노동조합에서 오는 4일 경야(經夜, 초상 때 근친지기가 관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가 있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마리자 여사의 별세로 분열이 심한 브라질 사회가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병원을 방문해 애도와 위로를 전했고 홀라 전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페르난도 카르도소 전 대통령도 병원을 찾았다.
테메르 대통령은 이날 3일 간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각계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리자 여사를 추앙하는 글을 올렸다.
마리자 여사는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에서 자랐으며 십대 초반부터 첫 남편의 자녀를 임신했던 만 21세까지 초콜릿 공장에서 상품포장 일을 했었다. 그는 첫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 장학사로 일했다. 그는 1973년 첫 아내와 사별한 룰라 전 대통령과 만나 다음 해에 결혼해 자녀 4명을 췄다.
당시 노조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룰라 전 대통령은 1975년,야당 국회의원에 선출돼 정계에 진출했다. 1980년 노동자당 창립 당시 마리자 여사는 첫 정당 깃발을 직접 만들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노동자당 창당자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마리자 여사도 여성의 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낙선했던 1982년, 1986년, 1994년, 1998년 대선 중에도 마리자 여사는 자주 남편 옆에서 선거운동을 도왔고 마침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email protected]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뇌졸중으로 상파울루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이날 성명에서 마리자 여사가 지난 2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이날 오후 6시57분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내 사망 소식을 확인하면서 "아내는 브라질의 영원한 영부인"이라는 글과 함께 국내외 여행과 공식 행사에서 아내와 함께 한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에 “아내와 처음 만났던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시 교외공업단지에 있는 금속노동조합에서 오는 4일 경야(經夜, 초상 때 근친지기가 관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가 있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마리자 여사의 별세로 분열이 심한 브라질 사회가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병원을 방문해 애도와 위로를 전했고 홀라 전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페르난도 카르도소 전 대통령도 병원을 찾았다.
테메르 대통령은 이날 3일 간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각계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리자 여사를 추앙하는 글을 올렸다.
마리자 여사는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에서 자랐으며 십대 초반부터 첫 남편의 자녀를 임신했던 만 21세까지 초콜릿 공장에서 상품포장 일을 했었다. 그는 첫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 장학사로 일했다. 그는 1973년 첫 아내와 사별한 룰라 전 대통령과 만나 다음 해에 결혼해 자녀 4명을 췄다.
당시 노조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룰라 전 대통령은 1975년,야당 국회의원에 선출돼 정계에 진출했다. 1980년 노동자당 창립 당시 마리자 여사는 첫 정당 깃발을 직접 만들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노동자당 창당자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마리자 여사도 여성의 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낙선했던 1982년, 1986년, 1994년, 1998년 대선 중에도 마리자 여사는 자주 남편 옆에서 선거운동을 도왔고 마침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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