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설이 이래, 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기사등록 2013/04/21 08:21:00

최종수정 2016/12/28 07:20:12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아야미는 얼어붙었다. 그녀의 두 손이 자신도 모르게 유리문 저편, 남자의 손을 향해서 올라갔다. 그들의 손이 겹쳐졌다. 당황스러운 떨림이 아야미의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나는 감정이다, 하고 그녀 안의 무엇인가가 그녀를 대신하여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나는 오직 감정이다.’ (34쪽)

 배수아(48)는 정확히 20년 전, 포스트모던 소설의 새로운 전범을 선보인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으로 1993년 계간 ‘소설과 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등단 후 20년, 그녀는 소설과 에세이, 번역을 통해 동시대 한국, 한국어, 한국인의 경계가 어디까지이며 그것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려는 듯 한국문학의 문법과 지평을 개척해갔다.

 배씨의 신작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단편과 장편을 오가며 실험해온 비서사적·반서사적 소설 양식이 미학적으로 완성됐음을 확인시켜준다. 소설은 폐관을 앞둔 서울의 유일무이한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김아야미’를 내세워 기억과 꿈, 그리고 그리고 비밀스러운 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난해 하반기 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한 작품을 엮은 것이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등장인물과 전통적인 기승전결 등 소설 형식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 다른 배수아 소설이 그러하듯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역시 주요 스토리라인을 요약하려는 시도를 부질없게 만든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몇 개의 인물과 설정과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변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제목조차 갖지 않고 숫자로만 표시된 4개의 장에 걸쳐서 이야기는 그물처럼 온 사방에 연결됐다. 독자가 아름답고 낯선 문장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덤벼들면 풀 수 있는 과제처럼, 그러나 그 모든 시도들이 소설을 읽다보면 무의미해진다.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작가가 설정한 도착 지점에 당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작가가 건설한 몽환의 세계 안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한다. 장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무언가 뚜렷한 상황과 전개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내 인물들과 시공간은 의미와 존재 모두가 사라진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소리의 그림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 ‘보이지 않는 사람들’같은 매혹적인 환상이다.

 소설가 김사과(29)는 “꿈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 꿈에 참여하는 것이다. 꿈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라며 “포기하고 눈을 감아라. 그러면 아주 희귀하며 기이한 꿈에 잠겨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흔치 않은 즐거움을 줄 것이다. 한국어 산문 문학이 주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읽었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무슨 소설이 이래, 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기사등록 2013/04/21 08:21:00 최초수정 2016/12/28 07:20:12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