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너머 스크린과 리듬…무라카미 류, 영화·쿠바 음악에 새긴 '생존의 감각'

기사등록 2026/10/23 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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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해철 등 韓 문화예술인들 '무라카미 류는 도대체?' 비평집 펴내기도

[서울=뉴시스] 무라카미 류. (사진 = 서울시 제공) 2026.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무라카미 류. (사진 = 서울시 제공) 2026.10.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90년대 한국 출판계와 청년 문화를 관통했던 고유명사 중 하나는 '투 무라카미(혹은 더블 무라카미)'였다. 지난 21일 국내 정식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가호'의 스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틀스'와 재즈를 들으며 개인의 내면과 상실을 응시했다면, 무라카미 류는 와인과 날 것의 도발로 세기말의 공기를 뒤흔든 감각의 첨단이었다. 1990년대 후반 가수 신해철, 이소라 등 국내 문화예술인 23명이 모여 '무라카미 류는 도대체?'라는 헌정 비평집을 묶어낼 만큼, 그는 당대 문화적 취향의 최전선 그 자체였다.

그 무라카미 류가 지난 17일 자택에서 향년 7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하루키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방한하지 않은 것과 달리, 고인은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서울을 자주 찾았다. 생전 고추장으로 버무린 양념게장 등을 좋아해 서울 명동 뒷골목에 단골집을 두고 드나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의 골목과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며 호흡했던 태도는, 활자의 벽을 깨고 현실의 뜨거운 체온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의 예술적 행보와도 닿아 있다.

올해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은 고인의 부고에 문학계의 애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의 궤적을 소설에만 가두는 것은 이 전방위 예술가에 대한 온전한 독해가 아니다. 그는 카메라 렌즈와 제3세계의 리듬을 통해 시대의 육체를 직접 어루만진 시네아스트이자 음악 기획자였다.

고인은 1976년 데뷔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하자마자 스물일곱의 나이에 직접 메가폰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다이조부 마이 프렌드'(1983), '라플즈 호텔'(1989), '토파즈'(1992), '쿄코(KYOKO)'(1996) 등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지난 2005년 영화 '토파즈'(국내 개봉명 '도쿄 데카당스') 개봉차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를 찾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100이라고 할 때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은 몇 점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특유의 쓴웃음을 지으며 "숫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글쎄요, 70점 정도일까?"라고 답하기도 했다.

스스로는 70점이라 낮췄으나, 그가 스크린에 새긴 감각은 일본 영상 문화의 지형도를 바꿨다. 거품경제기 도쿄의 공허와 성(性)을 서늘하게 해부한 '토파즈'는 이탈리아 타오르미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반향을 일으켰고, 오랜 예술적 동지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감독을 맡아 퇴폐적인 선율을 완성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고인의 원작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뒤, 첫 실사 영화 데뷔작으로 고인의 '러브 앤 팝'(1998)을 택했다.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2000), 이상일의 '식스티 나인'(2004) 역시 그의 문학적 살점을 떼어내 완성된 수작들이다.

이러한 영화적 집념의 종착지에서 마주한 것이 바로 '쿠바 음악'이었다. 미군 기지촌이었던 사세보에서 전투기의 굉음과 반미 유혈 시위, 기지촌 방송의 록과 재즈를 들으며 자란 고인에게 음악은 생래적(生來的)인 피난처였다. 1991년 쿠바 아바나를 처음 방문한 그는 혹독한 경제 봉쇄 속에서도 폭발하는 리듬으로 삶을 긍정하는 쿠바인들의 태도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고인은 즉시 자신의 이름을 건 쿠바 음악 전문 레이블 겸 기획사 '무라카미즈(Murakami's)'를 설립했다. 에픽 소니(현 소니뮤직)와 손잡고 전설적인 팀바 밴드 'NG 라 반다'와 피아니스트 라사로 발데스 등 현지 거장들의 음반을 일본에 잇달아 소개했다. 매년 쿠바를 방문해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아티스트를 직접 일본에 초청한 '류스 쿠반 나이트(RYU'S CUBAN NIGHT)'를 오래 지속했다. 쿠바 음악을 소개하는 일 등으로 쿠바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20년간 진행한 TV도쿄 경제 토크쇼 '캄브리아 궁전'의 초기 엔딩곡으로는 라사로 발데스의 연주가 흘렀다.

1993년 펴낸 저서 '신세계의 비트: 쾌락의 쿠바 음악 가이드'(新世界のビート: 快楽のキューバ音楽ガイド)에서 그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쿠바 음악을 논하며 이렇게 적었다. "쿠바 사람들에게 음악은 오락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남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먹는 것이나 자는 것과 똑같은 '삶의 양식(糧)' 그 자체입니다. 쿠바에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어 버리는 특유의 발상이 있습니다."

그 철학적 교감의 결정체가 1996년작 영화 '쿄코'였다. '할리우드 B급 영화 대부'로 통하는 로저 코먼이 제작총지휘를 맡고 다카오카 사키가 주연한 이 미·일 합작 로드무비는, 19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고인이 영화감독 자격으로 직접 들고 찾아온 작품이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쿠바계 댄서를 마이애미로 데려가는 여정을 통해 질병의 비극을 쿠바 음악의 스텝으로 전복하며 끈질긴 생명의 약동을 그려냈다. 2005년 방한 당시 "내가 좋아하는 쿠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는다면 모를까, 당분간 연출은 쉴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쿠바의 비트는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가장 뜨거운 이유였다.

하루키가 단정한 서재에서 개인의 우수를 길어 올릴 때, 류는 소설의 국경을 넘어 아바나의 땀 냄새 나는 클럽과 영화 촬영장의 모니터 앞, 그리고 서울의 활기찬 뒷골목을 종횡무진했다. 체제의 폭력과 결핍 속에서도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 그리고 위선적인 시대를 직시하게 만들던 스크린의 프레임. 무라카미 류가 활자 바깥에 남겨둔 이 선명한 유산들은, 그가 평생에 걸쳐 증명하고자 했던 '살아있음의 진짜 감각'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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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너머 스크린과 리듬…무라카미 류, 영화·쿠바 음악에 새긴 '생존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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