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M HAUS '김창옥: 위로의 흔적' 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강사님은 누구한테 위로받으세요?”
25년간 말로 사람을 위로해온 소통전문가 김창옥에게 어느 날 질문이 거꾸로 돌아왔다.
한 번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나오다가, 기차를 타러 가다가 몇 달 동안 낯선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이 화두처럼 남았다.
“제가 위로를 못 받은 것 같더라고요. 더 심각한 건 위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된 거예요.”
마음이 목말랐던 걸까.
그가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옻칠이었다.

옻칠 작업 김창옥 '위로의 흔적' *재판매 및 DB 금지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했다.
열 번, 백 번, 천 번. 몸을 쓰는 동안 생각이 줄었다.
말로 살아온 사람에게 옻칠은 ‘언어 이전의 언어’가 됐다.
“쓸데없는 생각이 사라지고 필요한 최소한의 생각만 남는 것. 그게 나한테 위로였어요.”
하지만 옻칠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창옥은 나전을 좋아했다. 한국 옻칠의 정수로 꼽히는 전복 껍데기의 빛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빛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전복 껍데기에는 빛이 나는데 저에게는 빛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빛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나전을 배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무례한 일인 줄 알았다.
스승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온 말은 뜻밖에 간단했다.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
그 말의 뜻을 제주에서 알게 됐다.
옻은 얇고 평평하게 펴 바른다. 그런데 습도 높은 제주에서는 옻이 오그라들었다. 쭈글쭈글 주름이 졌다.
처음에는 실패인 줄 알았다.
“아, 내가 제주도를 잘못 선택했구나.”
떠나야 하나 싶었다.
어느 날 쓰고 남은 옻을 정리할 힘조차 없어 그대로 두고 작업실을 나왔다.
다시 돌아와 보니 굳어버린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예뻤다.
매끈한 옻에는 없던 표정이었다.

김창옥 '위로의 흔적'전시. '울다'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그때 사람을 생각했다.
“누가 울고 싶었겠어요.”
다 웃고 싶고 건강하고 싶다. 결혼생활도 잘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크기를 바란다.
누구도 울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운다. 자신의 실수와 모자람 때문에,
때로는 너무 가혹한 환경 때문에
자존심이 쪼그라들고 열정이 사라진다.
삶에 미련조차 없어지는 날도 온다.
사람도 그렇게 쪼그라든다.
그런데 옻은 울고 난 뒤 달라졌다.
터지고 주름진 표면에서 매끈할 때는 없던 표정이 생겼다.
김창옥은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원없이 울게 하자.”
이번에는 옻의 울음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양을 부었다. 밑을 고정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오그라들게 했다.
원없이 울게 했다.
작품 제목도 '울다'로 달았다.
검은 옻 위로 수없이 패인 주름이 번진다.
매끈함을 포기하자 비로소 자기 얼굴이 드러났다.
스승의 말이 그제야 작품이 됐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주비엔날레 돌문화공원에 선보인 김창옥의 옻칠 작업. 김창옥은 이번 비엔날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2026.09.18. hyun@newso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19/NISI20260919_0002244178_web.jpg?rnd=20260919170802)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주비엔날레 돌문화공원에 선보인 김창옥의 옻칠 작업. 김창옥은 이번 비엔날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2026.09.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위로는 어쩌면 펴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울지 말라고 다독이는 일도 아닐지 모른다.
울어야 한다면 원없이 울게 하는 것.
구겨진 채로도 자기 모습이 되는 것.
매끈하지 않아도 삶이다.
울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온전한 존재다.
그래, 원없이 울어라.
울음은 삶이 망가졌다는 증거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또 하나의 표정이다.

MCM HAUS '김창옥: 위로의 흔적'전. 10월 6일까지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