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노동절' 미국서 유입…박정희 정부서 '근로자의 날'로
수동적 표현 '근로' vs 삶 주체로서 '노동'…노동계 투쟁 이어져
李 정부 들어서며 본격화된 '노동절' 복원…"인간 존엄성 강조"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3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자 기뻐하고 있다. 2026.03.31. kgb@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31/NISI20260331_0021229311_web.jpg?rnd=20260331163802)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3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자 기뻐하고 있다. 2026.03.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정영 기자 = 5월 1일, 우리에게 '근로자의 날'로 알려졌던 기념일이 63년 만에 제 이름을 찾았다.
올해부터 '노동절'이 새로 탄생된 데 이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날의 명칭 속에 담긴 시대적 함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세계 노동자 연대 기념하는 '메이데이' 탄생…1923년 한국 유입
1886년 5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 모인 8만명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맞서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단행했다.
투쟁 과정에서 경찰의 공권력으로 인해 노동자 8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를 '헤이마켓 사건'이라 부른다.
1889년 사회주의 운동을 배경으로 창립된 '제2인터내셔널'은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만국 노동자 단결의 날'로 선포했다. 이것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념되고 있는 '메이데이(May Day)'의 기원이다.
한반도에 노동절이 소개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이다. 당시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서울 종로구의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모여 첫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을 주장하며 길거리에 나섰다. 식민 지배하에서도 이뤄진 이날 행사는 민족 해방 운동과 노동 권리 쟁취가 결합된 상징적인 기점으로 작동했다.
정치적 격변기에서 바뀐 명칭…'노동'에서 '근로'로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으원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공무원 5.1 노동절 휴무 쟁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6.03.18. suncho21@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3/18/NISI20260318_0021213185_web.jpg?rnd=20260318144645)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으원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공무원 5.1 노동절 휴무 쟁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6.03.18. [email protected]
1945년 해방 이후 노동절은 격변의 시기를 맞는다. 특히 1946년 5월 1일 노동절 행사는 좌익과 우익의 노동단체로 나눠져 열리는 등 좌우 대립으로 인해 노동절의 의미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본격적인 변화는 6·25 전쟁 직후인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1958년 이승만 정부는 '메이데이'가 지닌 사회주의적 색채를 배제하고자, 노동절을 우익 노동단체인 대한노동조합총연맹(대한노총)의 결성일인 3월 10일로 변경하게 된다.
명칭이 바뀐 것은 박정희 정부 시기였다.
1963년 4월 시행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급휴일로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노동'이라는 가치보다 경제적 효율을 우선시해 국가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일한다는 '근면(勤勉)'의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또한 북한에서 자주 사용하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난 것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재개된 시기는 1987년이었다. 대학생 박종철 씨의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노동자 이석규 씨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노동계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다시 한번 일어났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 노동악법 개정, 노동3권 보장 등을 외치며 잃어버린 '5월 1일'과 '노동'이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다.
그 결과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해 기념일을 3월 10일에서 다시 5월 1일로 환원했다.
하지만 명칭은 계속 '근로자의 날'로 유지됐다.
그동안 노동계는 "근로라는 단어가 '부지런히 일함'을 뜻하는 수동적 표현인 반면 노동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의미하는 주체적인 용어"라며 명칭 변경을 주장해 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관계자는 "근로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일하는 피동적인 모습인 반면, 노동이라는 것은 자기 삶의 주체로서 생산의 주역으로 나서는 역동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했다.
범위의 차이도 꾸준히 지적됐다.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종속적 고용 관계에 있는 이들로 한정되나, '노동자'는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등 일하는 형태가 다양해진 현대 사회의 모든 노동 인구를 포괄하기에 적합하다는 해석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는 것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李 정부 때 살아난 '노동절'…"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국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해져 지난해 10월 26일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공무원,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포함한 전 국민이 노동절에 쉴 수 있게 됐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명칭은 정부가 노동의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재정립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결과다.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었던 '근로자의 날'이라는 단어를 폐기하고 노동자를 사회의 주체적인 권리자로 인정하는 '노동절'로 공식화한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정 근로자에 한정하지 않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노동을 기린다는 의미와 함께 인간 자체에 대한 주체성과 존엄성을 강조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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