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시한폭탄이 돼버린 연기 '폭탄'

기사등록 2026/03/20 05:57:00

영화 '폭탄'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사토 지로(佐藤二朗). 이제 당신은 이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주 가끔 어떤 영화 혹은 어떤 역할은 특정 배우를 위해 탄생한 것 같을 때가 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그랬고,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이 그랬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그랬고, '비밀의 숲'의 황시목이 그랬다. 영화 '폭탄'(3월18일 공개)과 주인공 '스즈키 다코사쿠'는 바로 이 배우, 사토 지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몰라도 된다. 보면 알게 되니까.

자이니치 3세 오승호 작가가 2022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인 '폭탄'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잡혀온 신원미상의 중년 남성 스즈키 다코사쿠가 도쿄 번화가 한가운데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예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경찰은 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스즈키가 관여돼 있다고 판단해 그를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스즈키는 또 한 번 폭발을 예고하며 이번엔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한다. 사토 지로가 연기한 인물이 바로 이 미스테리한 스즈키 다코사쿠다.

'폭탄'은 올해 일본아카데미시상식에서 12개 부문 우수상(최종후보)을 받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준수한 완성도를 가진 미스터리스릴러물이다. 사건이 하나로 모이고 얽히고 설킨 인물들 간 사연이 드러나는 후반부에 서스펜스가 급격히 약화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긴 해도 장르물을 137분 간 밀어붙이는 박력만큼은 매력이 있다. 그 박력 대부분을 담당한 취조실 시퀀스는 이 작품의 백미. 좋은 대사와 허를 찌르는 연기, 정확한 촬영과 편집이 있으면 아무리 정적인 장면이어도 충분히 시네마틱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사토 지로는 바로 그 취조실을 지배하며 관객을 쥐고 흔든다. 스즈키 다코사쿠는 속을 알 수 없지만 천진난만한 인물. 혐오스러운데도 난데 없는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대체로 천박하면서도 때로 위엄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토 지로는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인데도 말의 속도와 높낮이와 행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존중과 경멸의 밀도를 바꿔가는 건 물론이며, 조소와 능청과 분노를 오가면서 이 뒤틀린 인간형을 넉넉히 빚어낸다.

말하자면 이건 폭탄 같은 연기. 다시 말해 사토 지로는 스즈키 다코사쿠를 어디 있는지, 언제 터지는지, 왜 폭발하는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그 자체로 만들어 불안과 공포를 생산해낸다. 본능적으로 폭주하는 것인지 이성적으로 온전히 통제돼 있는 건지 짐작이 안 되는 이 연기력 때문에 제작진은 "사토 지로가 거절하면 이 기획 자체를 그만두려고 했다"고 말했고, 일본 언론은 그의 연기를 '괴물 같은 연기'라는 의미로 "괴연(怪演)"이라는 말로 평했다.

다만 '폭탄'은 사토 지로의 연기를 온전히 아우르는 너비와 깊이를 다 보여주진 못한다. 너무 많은 사건과 캐릭터를 펼쳐 놓은 탓에 모든 사정을 수습하는 데 러닝타임을 소비할 수밖에 없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인물인 스즈키 다코사쿠에 몰두해야 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만다. 특정 캐릭터를 파고 들어가다가 중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어떤 관객에겐 사토 지로의 연기가 흔히 말하는 '연기 차력쇼'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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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시한폭탄이 돼버린 연기 '폭탄'

기사등록 2026/03/20 05:57: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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