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PTA는 영화의 왕이 될 수 있을까

기사등록 2026/03/09 05:58:00

오는 15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망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2024년 3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대관식을 치렀다. 그의 12번째 장편 '덩케르크'는 그 해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았다. '덩케르크' 전까지 그는 미국아카데미는 물론 골든글로브·영국아카데미에서도 작품·감독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테넷'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 나이트' 시리즈 등을 만들어 세계 최고 연출가로 인정 받았으나 유독 트로피와 거리가 멀었다. 오죽했으면 '아카데미가 그의 재능을 질투한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98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선 또 한 번 왕좌에 오르는 감독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1996년 데뷔 후 늘 천재·거장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을 수 차례 내놨음에도 놀런 감독처럼 미국아카데미·골든글로브·영국아카데미 어디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아본 적 없는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55) 감독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오스카를 품에 안을 확률이 어느 때보다 높다.

앤더슨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대중에도 널리 알려진 연출가는 아니지만 영화에 관해 조금 안다는 관객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전까지 장편영화 총 9편을 만든 그는 현재 미국 작가주의 영화 상징으로 꼽힌다. 장르를 넘나들고 화법을 바꿔가며 미국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통찰을 보여준 영화예술가라는 게 그에 관한 일관된 평가다.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팬텀 스레드' 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다만 칸·베네치아·베를린영화제 수상 경력은 있지만 유독 아카데미 등 소위 영미권 메이저 시상식에선 무관이었다.
[서울=뉴시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앤더슨 감독의 10번째 장편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한 때 무장혁명단체 조직원이었던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과 그의 딸 윌라 퍼거슨(체이스 인피니티)의 이야기를 그린다. 16년 전 퍼거슨이 몸담았던 혁명 조직을 소탕했던 스티븐 J 록조(션 펜)가 다시 나타나 윌라를 납치하자 밥은 딸을 되찾기 위해 과거 혁명 동지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토머스 핀천 작가가 1990년에 내놓은 소설 '바인랜드'가 원작이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이 작품은 앤더슨 감독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또 하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재밌는 영화로 평가 받는다. 미국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 평점은 100점 만점에 95점. 지난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 '아노라'는 91점이었고, '오펜하이머'는 90점이었다. 이전 3년 간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 평점을 봐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81점, '코다' 72점, '노매드랜드' 87점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대한 평가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매출액은 약 2억 달러(약 2930억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전 앤더슨 감독 영화 최고 매출액은 2007년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기록한 7640만 달러였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시네마라는 평가와 함께 앞서 열린 온갖 시상식을 휩쓸었다. 골근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영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미국감독조합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연출상, 미국제작자조합시상식에서 제작상,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했다.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시상식에서 받아낼 수 있는 사실상 모든 트로피를 수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결과를 냈다.

물론 경쟁작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 1월 발표된 아카데미 최종 후보 명단을 보면 '씨너스:죄인들'은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후보 지명 숫자로 보면 13개 부문 후보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앞섰다.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프랑켄슈타인' '센티멘탈 밸류' '마티 슈프림'도 있다. 골든글로브를 트로피를 나눠가졌고 오스카 8개 부문 후보인 '햄넷'도 있다. 다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앞서 워낙 압도적인 수상 결과를 냈기 때문에 수상 확률 역시 가장 높다고 봐야 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처럼 정량적으로 수상 확률이 높으면서 동시에 정성적으로도 수상 가능성이 크다. 아카데미 회원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오스카는 당대 미국 사회·정치 상황에 크게 영향 받는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최근 미국 사회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며 소수·비주류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런 경향은 주류 백인 남성의 행사로 치부되던 아카데미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문라이트' '셰이프 오브 워터' '노예 12년' 또는 '노매드랜드'나 '기생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아노라'가 작품상을 받은 건 이들 영화가 그 자체로 이견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영화라는 점도 있으면서도 동시에 소위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창작물이거나 비주류에 관한 얘기였다는 것도 영향을 줬다.
[서울=뉴시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시각에서 보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수상 가능성은 더 올라간다. 최근 할리우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정치 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마크 러팔로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트럼프를 "강간범"이라고 했고, 로버트 드 니로는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이 있었던 지난달 25일 "트럼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치를 전방위적으로 그러면서도 예리하게 비판한 풍자극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향한 아카데미의 지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앤더슨 감독이 오스카를 받을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긍정적인 신호다. 아카데미는 이처럼 '이젠 받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런 수상작(자)에 표를 던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레버넌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나 놀런 감독이 '덩케르크'로 오스카를 휩쓸었을 때도 그랬다. LA타임즈는 최근 앤더슨 감독에 대해 "overdue"라는 표현을 쓰며 "아카데미가 그의 시간이 될 거다"고 했다. 버라이어티·배니티페어 등도 LA타임즈처럼 "overdue"라는 말로 앤더슨 감독이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앤더슨 감독은 앞서 작품상 후보에 4차례, 감독상 후보에도 4차례 지명됐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15일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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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6/03/09 05:58: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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