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속 5센티미터'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초속 5센티미터'(2월25일 공개)는 원작을 완성한다. 2007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영화가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뒀다면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의 실사영화는 원작이 열어둔 문을 일일이 확인해 닫고 걸어 잠근다. 원작은 러닝타임 63분짜리 중편, 리메이크작은 122분짜리 장편.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활용해 균질하고 명쾌하며 잘빠진 이야기를 향해 나아간다.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애니메이션이 지닌 특유의 불균질하고 불명확하며 거친 매력이 유지되길 원했던 관객에겐 이 변화가 다소 마뜩잖을 수 있다.
'초속 5센티미터'는 실사화 모범 사례다.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약 20년 간 이어지는 타카키와 아카리의 인연을 다룬다는 얼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원작에 없는 설정을 추가하고 새로운 서사를 덧붙여 기존과 다른 이야기로 변모해 간다. 애니메이션이 첫사랑을 테마로 상실과 불안의 상태에서 머물렀다면, 신작은 상실과 불안을 다루면서도 극복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다. 늘어난 러닝타임을 사건을 나열하는 데 쓰지 않고 서사의 전진을 위한 충실한 빌드업 시간으로 활용했다는 건 오쿠야마 감독의 작업이 원작을 단순히 실사로 재연하는 게 아니라 재창조하는 일이었다는 걸 확인한다.

그렇다고 '초속 5센티미터'가 생경할 거라는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애니메이션 원작은 신카이 감독 팬이 유독 사랑해마지 않는 작품으로 꼽히는데, 오쿠야마 감독은 이런 골수팬까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장면들로 영화를 충분히 채워 넣는 동시에 신카이 감독이 보여준 특유의 감수성가지 고스란히 되살린다. 벚잎과 기찻길이 어우러진 엔딩, 폭설을 동반한 기차역 에피소드 등 연출은 원작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준다.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와 타카하타 미츠키는 애니메이션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감정의 실감을 담은 연기로 원작의 감도를 강화한다.
계승한 게 있다면 발전시킨 것도 있다. 애달픈 첫사랑을 떨치지 못하는 애상이 신카이 감독이 매만진 주제였다면, 오쿠야마 감독은 이 절절한 첫사랑의 기억을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청춘의 모습으로 가다듬는다. 원작에서 가장 분량이 적었던 성인 타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가 영화로 옮겨 가면서 대폭 늘어난 건 타카키가 느끼는 바로 지금의 고독의 정체를 강조하고 재정의하기 위한 변화로 짐작된다. 관계의 변화, 시간의 흐름, 내면의 성숙을 우주의 카오스와 코스모스를 통해 은유하는 건 새롭지 않지만 이 장치는 원작에 이물감 없이 녹아들어 극 완결성을 높인다.

신카이 감독 작품이 불편하고 날카롭고 음울하며 대체로 비어 있다면, 오쿠야마 감독 신작은 상대적으로 덜 불편하고 덜 날카롭고 덜 음울하며 대체로 채워져 있다. '초속 5센티미터'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개봉해 매출액 22억엔(약 200억원)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건 아마도 이런 변화가 영향을 줬을 것이다(원작 매출액 약 1억엔 추정). 결국 취향의 문제이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든 두 작품 모두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원작에 그에 못지 않은 리메이크라는 의미일 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들을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