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러 병사 6000건 진정…"보상금 빼앗고 '사망 임무' 투입"(종합)

기사등록 2026/01/02 08:14:48

최종수정 2026/01/02 10:20:58

NYT "러군 지휘관들 병사 착취, 학대 일상적" 보도

군 비판 금지법, 보도 제한으로 러 국민들은 몰라

부상병, 환자, 귀환 포로 즉시 전선 다시 투입

[벨라루스=AP/뉴시스] 지난 6월19일(현지 시간)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영상에서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러시아군 병사가 벨라루스의 교환 지점에서 어머니와 통화하고 있다. 포로 교환으로 풀려난 러시아군 병사들은 귀환 하루만에 전장에 재투입되는 사례가 많다. 2026.1.2.
[벨라루스=AP/뉴시스] 지난 6월19일(현지 시간)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영상에서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러시아군 병사가 벨라루스의 교환 지점에서 어머니와 통화하고 있다. 포로 교환으로 풀려난 러시아군 병사들은 귀환 하루만에 전장에 재투입되는 사례가 많다. 2026.1.2.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는 러시아 군 병사들이 지휘관들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중병 또는 심각한 부상에도 전장에 붙잡혀 있는 등 잔혹한 착취와 강압에 시달린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NYT는 6000건이 넘는 비공개 진정서를 검토한 결과 러시아의 병사 학대로 수많은 군인 가족들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 이면에 분노와 불만이 들끓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비공개 진정서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타티아나 모스칼코바 러시아 인권 옴부즈맨에게 제출된 것이며 모스칼코바 사무실의 실수로 지난 4월~9월 진정서를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NYT는 진정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뷰한 사람들 일부에 대해 러시아 당국이 수사를 개시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정부에 진정서가 제출된 병사들 수천 명이 실종됐거나 수감된 상태며 가족들은 대부분 진정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진정서 중 약 1500건 이상이 군 내부의 불법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군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는 러시아 법과 독립 언론이 말살된 탓에 러시아 대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 내용이다.

러시아군 병사들에 대한 학대가 심각하게 두드러지는 곳은 교도소나 미결 구금시설에서 모집한 병사들 부대에 특히 집중돼 있다. 러시아 정부는 대규모 징집이 전쟁 반대를 촉발할 것을 우려해 이들을 모병해왔다.

진정서에서 나타난 학대 혐의들은 다음과 같다.

-부러진 팔다리, 말기 4기 암, 간질, 심각한 시력·청력 손상, 두부 외상, 정신분열증, 뇌졸중 후유증 등 치명적인 의학적 상태에 처한 병사들을 전선에 투입한다.

-석방 포로들을 곧바로 전투에 투입한다.

-지휘관들이 수시로 병사들을 죽일 수 있다고 위협하며 이런 행위를 가리키는 ‘제로잉 아웃(zeroing out)’이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로 상습적이다. 

-지휘관들이 전사 위험이 큰 임무에서 빼주겠다며 돈을 받는 등 갈취하거나 재산을 훔친다.

-항의하거나 실패가 뻔한 임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뇌물을 내지 않는  병사들을 구타하거나 지하실에 가두거나 구덩이에 밀어 넣거나, 나무에 묶어 둔다.

-징집이나 의무 복무로 들어온 신병들에게 복무 연장 계약을 강요하면서 거부하면 전사 위험이 큰 돌격 부대에 보내겠다고 위협한다.

NYT는 진정된 사례들이 전체 러시아 군 병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진정한 가족들조차 보복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을 볼 때 옴부즈맨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는 불법 사례들이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음은 NYT가 전한 학대 사례들이다.

나흘 동안 수갑 차고  나무에 묶인 병사

병사의 어머니인 옥사나 크라스노바가 지난해 8월27일 제출한 진정서에는 아들이 보낸 영상이 첨부돼 있다.

아들과 동료 병사가 음식도, 물도, 화장실도 없이 나흘 동안 나무에 수갑으로 묶여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진정서에서 이들은 “짐승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크라스노바는 아들과 전우가 우크라이나 장악 지역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라는 자살 임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고 소셜 미디어에 밝혔다.

크라스노바의 아들 고르코프는 러시아 보안기관과 연줄이 있는 친척 덕분에 풀려났다면서 현재 변호사를 고용해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대 복귀가 “스스로에게 사형 선고를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까지 팔다리가 없는데도 전선에 투입된다. 내 눈으로 직접 봤다”고 전했다.

징집병 복무 연장 강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병력 확보를 위해 갈수록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왔다.

침공 첫해 민간인을 징집했고 수감자, 채무자, 외국인 전투원들을 모병했으며 민간 용병도 고용했다. 거액의 입대 보너스, 부상 보상금, 각종 혜택을 동원했다.

그러나 진정서들은 강압적 병력 충원이 가장 핵심적 수단임이 드러난다.

징집병들을 상대로 복무 연장 계약에 서명하라고 강요하는 사례가 여럿이다.

연장 계약 서명을 거부하는 병사들은 정책적으로 가장 위험한 돌격 중대로 전출된다.

심각한 부상, 질병 걸린 사람도 재투입

또 군 복무에 부적합한 상태인 징집병들도 계속 전장에 남아 있으라는 강요에 시달린다.

진정서를 제출한 류보프는 남편이 체첸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 유족이다.

그의 아들이 전장에서 다리가 부러져 치료를 기다리던 중 다시 전선에 강제 투입됐다고 했다.

또 아들이 2023년 뇌진탕을 당했을 때 소속 대대장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뇌진탕이다. 여러 번씩 당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치료받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치료를 거부당한 병사들이 민간 치료를 받기 위해 부대를 이탈하면 탈영병으로 규정해 다시 전선에 투입한다.

병들거나 다친 병사들이 형식적인 검사만 거친 뒤 전투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진정이 많았다. 

한 병사의 누이는 군복무 적합성을 심사하는 의료위원회가 1시간에 100건을 처리했다고 진정서에 썼다.

아예 적합성 평가를 받지 못하고 전선에 재투입됐다는 진정도 많았다. 

한 병사는 의료시설에서 심각한 질환을 앓는 병사들이 전장에 재투입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간경화로 얼마나 살지 모르는 사람이나 암 환자를 어떻게 다시 보내나? 집에서 죽을 기회라도 줘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혼합형 인격 장애, 지남력 장애,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가 속아서 계약서에 서명해 전선에 투입됐다는 딸의 진정서도 있다. 강력한 항정신병 약품을 처방받는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팡이를 짚고 부대로 복귀하는 병사들의 지팡이를 빼앗거나 지팡이나 목발을 짚은 채 전투에 투입됐다는 진정도 여러 건이다.

옐레나 로슬랴코바라는 여성의 진정서에는 남편 안드레이 주바료프가 전선에서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첨부돼 있다.

포로 교환된 병사 곧장 전선 투입

지난 4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수천 명을 포로 교환했다.

러시아군 석방 포로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실전 전투 다시 투입되는 것이 일상적이다. NYT가 검토한 진정서 중 최소 95건 이상이 이를 뒷받침했다. 귀환한 지 하루 만에 전선으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

지휘관들의 학대

전과자로 구성된 연대 소속 병사들은 전사하는 것 못지않게 지휘관에게 맞거나 갈취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휘관들은 병사를 통제하기 위해 또는 단순히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혹한 처벌을 자행한다. 항의하면 새로운 학대가 뒤따른다.

손자가 당하는 학대를 여러 차례 진정한 나탈리야 루키안추크에 따르면 손자 수시치흐가 러시아 극동 캄차카의 한 기지에서 지난 한 달 대부분을 난방기에 수갑으로 묶인 채 구타당했다고 밝혔다.

손자는 교통사고를 내고 4년 반 형기를 보내던 중 형기가 1년 남은 상태에서 감형을 위해 1년짜리 군 계약에 서명했다.

손자가 전투 중 무릎에 파편이 박히고 오른팔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지휘관들이 손자의 다리를 걷어차고 얼굴을 때리고 발가벗긴 채 차가운 방에 24시간 동안 가두고 죽음으로 보내질 것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루키안추크는 손자가 1년 계약을 마친 뒤 복무 연장계약을 거부하자 상황이 더 악화됐다면서 손자가 부대를 떠나자 탈영병으로 취급해 강제로 끌어간 뒤 구타 등 학대가 다시 이어졌다고 했다.

정부가 전선 불법 용인

진정서들은 러시아 정부가 전선의 무법 상태를 용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 진정서에는 병사들이 처벌로 나무에 묶였다는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

나무에 수갑으로 묶인 채 스스로를 촬영했던 병사 고르코프는, 자신이 빠져나온 뒤에도 이런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진을 같은 부대, 제12274부대 동료들이 보내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나무에 묶고 돈을 갈취하는 쓰레기 같은 지휘관들이 있다. 그들은 돌격 임무에 직접 나가지 않으면서 갈취한 병사들이 생환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처벌받지 않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증언했다.

진정서에 첨부된 한 영상에 병사 2명이 눈에 멍이 들고, 코가 부러지고, 이가 빠지고, 엉덩이에 채찍 자국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지휘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런 학대를 받았다고 말한다.

지휘관들의 갈취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는 진정서도 있다.

지휘관들이 휴가, 전출, 전사 위험이 높은 돌격 임무 제외 등을 내세우며 뇌물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부상 보상금으로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막대한 정부 자금이 지휘관들이 갈취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지휘관들이 부상 보상금의 일부를 요구하거나, 허위 부상을 신고해 돈을 타내도록 강요했다고 고발한 진정서도 있다.

‘제로잉 아웃’

사이드 무르타잘리예프라는 병사가 동영상으로 지휘관의 불법을 고발한 내용도 있다.

그는 지휘관이 돌격 임무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병사들에게 1만5000 달러를 거두었으나 자신을 돌격 임무에 투입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영상에서 “하루 이틀 안에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이 영상을 공개해도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 레일라 나흐슈노바에 따르면 지휘관이 뇌물 수수를 은폐하기 위해 아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문자를 아들이 보냈다고 진정했다.

바로 ‘제로잉 아웃’ 관행이다.

이는 적에게 죽도록 설계된 치명적인 명령이나 전장에서 동료 병사에 의해 살해되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다.

‘제로잉 아웃’은 고위험 임무에 투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휘관들이 보복이나 처벌을 목적으로 병사를 죽게 만들거나 무기나 보호 장비도 없이 전장에 투입하는 일을 가리킨다.

NYT는 최소 44건의 진정서에 이 용어가 등장한다면서 지휘관이 병사를 죽이겠다고 직접 위협했다는 진정서만 100건이 넘는다고 전했다.

공포에 질린 가족들이 남편이나 형제, 아들이 곧 제로잉 아웃될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는 진정을 했으며 제로잉 아웃으로 사망한 가족의 시신을 찾아달라고 진정한 내용들이다.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주둔한 제 36994 부대의 병사 가족 여성들 10명이 공동으로 제출한 진정서에는 이 부대 지휘관들이 병사 300명 이상을 살해했다는 내용이 올라 있다.

여성들은 지휘관들이 시신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진정서에는 “살해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처형된 병사들의 시신이 버려진 장소에 매장되거나 대전차 지뢰로 폭파되어 사실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일부 작은 신체 조각만 가족들에게 전달됐고 대부분은 들판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제36994부대의 병력 상당수는 미결 구금이나 교도소에서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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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러 병사 6000건 진정…"보상금 빼앗고 '사망 임무' 투입"(종합)

기사등록 2026/01/02 08:14:48 최초수정 2026/01/02 10: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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