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봄, 8년 만의 소설집…'인정빌라'

기사등록 2025/12/18 10:25:05

[서울=뉴시스] '인정빌라' (사진=민음사 제공) 2025.1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인정빌라' (사진=민음사 제공) 2025.1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서울시 동작구 사당(舍堂)동. 동네  이름은 큰 사당과 옛집이 많았던 데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동작구를 대표하는 주거지로, 대단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집'이 많은 동네라는 점만큼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풍경은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지만, 예전처럼 이웃의 온기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지만, 이웃의 얼굴을 모른 채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익숙해졌다. 옆집과의 왕래는 점점 줄어들었고, 관계는 점점 얇아졌다.

수많은 건물과 시장, 골목 사이 어딘가에 한 다세대주택 빌라가 있다. 이름은 '인정빌라'. 물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가상의 건물이다.

김봄의 연작소설집 '인정빌라'(민음사)는 이 빌라에 거주하는 삶을 따라간다.  햄스터를 키우며 '생명'과 '가족'의 의미를 찾는 4인 가족,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 애인과 동거하는 지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텅 빈 집을 살아가는 박하 등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웃 간 교류가 희미해진 시대 속에서 작품은 빌라에 사는 이들의 일상과 내면을 파고든다. 다만 작가는 인물들을 판단하거나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김봄은 작가의 말에서 "이번 책 안에는 내가 5퍼센트 정도 담겨 있는데 나는 그 5퍼센트 정도의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확장시켜 나갔다"며 "인정빌라 각 호에 사는 인물들은 나인 동시에, 나의 가족이고, 이웃이면서, 타자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모두가 저마다의 색을 발산하며 비슷한 무게 추를 지니고 사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며 "대체되고 지연되면서도 하염없이 연결되는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집집마다 분위기와 성격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있다.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고단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 주목해 인물들의 겉모습과 내면을 차분히 응시한다. 그러나 인물의 현재가 안타까워 감정이입하려는 순간, 작품은 그가 알지 못했던 과거와 속내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인정빌라 302호에 사는 진국은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을 잃고, 반려견 메리와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지만, 작품은 곧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진국은 과거 교묘한 술수로 임차인의 전 재산을 갈취하는 일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인물에게 한발 다가서려 할때마다 독자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인정빌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통해 인간 삶의 복잡성과 입체성을 드러낸다. 한 사람을 단면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작품은 소년범의 일상을 담은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김봄의 신작 소설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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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봄, 8년 만의 소설집…'인정빌라'

기사등록 2025/12/18 10:25:05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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