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사기에 이용된 계좌 빌려준 혐의
1·2심 원고 일부 승소…"불법행위 방조"
대법 "범죄에 사용될 거라고 예상 못해"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친구에게 빌려준 금융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범죄와 관련된 상당한 인과 관계가 없다면 책임을 지나치게 확대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1일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1일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2011년부터 고등학교 동창인 C씨에게 자신의 명의 통장과 주식 계좌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B씨는 C씨가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C씨는 이 계좌를 해외선물 거래에 이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A씨에게 1억2000만원을 투자받았다.
A씨는 C씨가 원금을 보장해주고 매월 2%의 이자 지급을 약정했다고 주장했다. C씨는 B씨를 사칭해 A씨에게 돈을 반환하겠다고도 했다.
A씨는 C씨가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않자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B씨를 상대로 "원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B씨가 C씨의 범행을 방조했다고 판단해 원금 일부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제3자로부터 금원을 교부받아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피고가 사용을 허락한 계좌가 투자에 사용되는 것 또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기죄 수사로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됐음을 인지헸음에도 거래정지신청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대법원은 B씨가 계좌를 빌려줬지만, C씨의 범죄에 사용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가 C씨에게 계좌 사용을 허락한 이후 그 이용 현황을 확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점만으로 피고가 C씨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이와 관련해 어떠한 대가를 받았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고, C씨가 계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 사기와 같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이 사건 계좌가 불법 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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