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협, 불법 휴진 전제로 정책 요구 부적절"
의료계, 17일 서울의대 시작으로 18일 집단 휴진
서울의대 54.7% 휴진 참여…참석율 저조 관측도
정부, 중증순환당직제로 진료 거부 피해 최소화
진료 거부 불허 요청…손실시 구상권 검토 요청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집단 휴진 철회 조건으로 제시한 3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18일 예고된 집단 휴진을 시작으로 대(對)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협은 이날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을 즉각 소급 취소하고 사법 처리 위협 중단 등 3가지 요구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의협은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18일 전면 휴진 보류 여부를 17일 전 회원 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8일 전국적으로 집단 휴진을 진행하며 이후 무기한 휴진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에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협의 대정부 요구안을 거절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이 불법적인 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부에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의대 정원과 전공의 처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여러 차례 설명했고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이 18일 집단휴진을 조건 없이 중단하고 의료계가 정부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현안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의료 제도 발전에 대해서도 정부는 의료계와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부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지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의료계가 무리한 요구를 거두고 의료 개혁에 동참해 개혁의 주체이자 브레인이 돼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협의 요구사항이 정부가 수용하기에 어려운 조건이라고 판단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은 마무리된 데다가 법을 위반한 전공의 등에 대한 행정처분도 '없던 일'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가 의료 개혁에 의료계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밝힌 만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와 관련해서는 의료계와 협상할 여지도 남아 있다.
정부가 의료계 요구사항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 의사들은 집단 휴진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고 다음 날인 18일에는 의협이 집단 휴진과 함께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서울의대 비대위에 따르면 6월 17~22일 사이 외래 휴진 또는 축소, 정규 수술·시술·검사 일정 연기에 나선 교수는 529명으로 집계됐다. 이대로라면 진료에 참여하는 전체 교수 967명 중 54.7%가 휴진에 참여하게 된다. 다만 서울의대는 중증·희귀환자 등의 진료를 집단 휴진 기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의협 또한 18일 대규모 집단 휴진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의협이 의사 회원 11만1861명을 대상으로 집단행동에 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7만800명(63.3%)이 참여했다. 투표한 7만800명 중 90.6%(6만4139명)는 투쟁을 지지했으며 73.5%(5만2015명)은 집단행동 참여 의사를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실제 집단 휴진 참석률은 저조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3만6371개 의료기관 중 휴진 신고를 한 의료기관은 1463곳으로 전체 명령 대상 의료기관의 4.02%였다. 앞서 정부는 18일 휴진을 계획 중인 의료기관의 경우 지난 13일까지 사전 신고를 하도록 했다.
집단휴진 불참을 선언하는 의사단체도 속출하고 나왔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대한아동병원협회,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마취통증의학회, 화상 등 전문 병원 등은 의협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집단 진료 거부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7일부터 중증응급질환별 전국 단위 순환당직제를 실시한다. 매일 수도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 4개 광역별로 최소 1개 이상 당직 기관을 편성해 야간 및 휴일 응급상황에서 24시간 대비하게 된다.
또 암 환자의 진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립암센터 병상을 최대한 가동하고 서울 주요 5대 병원과 핫라인을 구축한다. 집단 휴진 기간에 국민들이 정상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보도 제공한다.
아울러 정부는 각 대학병원장에게 교수 집단 진료 거부에 대한 불허를 요청했다. 일부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가 장기화돼 병원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구상권 청구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장은 경영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경영자로서 책임을 다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며 "집단 진료 거부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병원장이 개별적으로 (교수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안 생기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