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진료체계는 말 그대로 '비상대책'…"길어도 3주면 고비 올 것"

기사등록 2024/02/20 07:00:00

최종수정 2024/02/20 15:10:17

대형병원 전공의 집단사직…의료파업 본격화

정부 비상대책 수립에도…"3주 지나면 고비"

"정부·의료계 서로 양보…의료 현장 지켜야"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전공의 집단 의료 거부와 관련해 비상진료 대응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2024.02.19.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전공의 집단 의료 거부와 관련해 비상진료 대응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2024.02.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일명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들이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정부가 비상진료체계를 준비했지만 인력 등을 고려하면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빠른 시일 내에 의료 정상화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을 포함해 주요 대형병원 전공의들은 전날 사직서를 내고 이날부터 근무를 중단한다. 복지부는 당초 전날 전공의 사직 제출 통계를 취합해 공개하려 했으나 취합이 많이 지연되고 있다며 이날 발표하기로 했다.

전체 의료진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특히 필수의료 분야에서 큰 차질을 불러올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국 병의원 및 약국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대 의사 1603명 중 전공의는 740명으로 46.2%에 달한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도 40.2%, 삼성서울병원 38%,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 등 '빅5 병원' 의료진의 30~40%가 전공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도 의료계 파업은 전공의들이 포문을 열었으며 80%가 집단휴진에 참여한 바 있다. 이 여파로 정부는 의대 증원을 철회하고 코로나19가 안정화된 이후 의료계와 다시 논의하기로 한 '9·4 의정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전공의 이탈에 대비해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하기로 했다. 핵심인 인력 관련 대책을 보면 10개 국립대병원과 35개 지방의료원, 6개 적십자병원을 포함한 114개 공공병원 평일 진료 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과 공휴일 진료도 실시한다. 12개 국군병원 응급실도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또 경증·비응급 환자의 전원 또는 수술 스케줄을 조정해 응급 환자 우선 진료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제1차 대한의사협회 의대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24.02.17.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제1차 대한의사협회 의대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24.02.17. [email protected]
그러나 이 같은 비상진료체계에도 한계는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20년 전공의 집단행동 당시 상황을 참고해 전공의 비율에 따라 빠르면 1주, 길어도 3주 정도면 고비에 부딪힐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가 다 빠져 나가면 기존 교수들이나 전임의가 다 대체를 해야 하는데, 보통 40~50대인 분들 위주로 당직 체계를 돌리면 체력적으로 장기간 유지하기는 쉽지가 않다"며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곳은 한 일주일에서 10일, 전공의 의존도가 낮은 곳은 한 3주 정도 지나면 기존 의료진 피로도가 누적돼 원활하게 돌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계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고비가 오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단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들은 몇개월 버틸 것 같다. 3주 정도로는 안 끝날 것"이라며 "(정부가)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더 강경책을 써서 의사들이 돌아오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2~3주도 벅차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우리 병원도 내과 전공의 30여명이 모두 안 나오기로 해 교수들이 당직을 다시 짜고 있다"며 "24시간 수술하고 환자 보고 밤을 꼴딱 세우면 그 다음 날은 수술을 할 수가 없지 않나. 2~3주가 아니라 당장 하루하루가 고비"라고 말했다.

상황이 장기전이 되면 정부에도 마냥 유리하진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여론이 의대 증원과 정부에 우호적이지만, 집집마다 환자는 있고, 환자들이 진료를 못 받게 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여론이 돌아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의료계에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며 소통을 추진하는 동시에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정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오후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처음으로 복지부와 의협이 TV토론을 펼친다. 전날에는 집단행동 교사행위 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의협 집행부 2명에게 의사 면허 자격 정지 관련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일각에서는 의료 인력 공백을 보충할 새로운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교수)은 "공공병원을 활용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지만 분명 한계는 올 것"이라며, "정부는 처벌이나 명령 같은 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현재도 의사가 없어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PA간호사 투입 같은 것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한 발 씩 양보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가 필수의료를 지원할 수 있는 쪽으로 서로 양보를 해야 한다"며 "전공의들도 기본적으로 의료 현장을 지키면서 준법투쟁을 하는 게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정부 양보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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