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지났어도 부역자 낙인 그대로…"[정전 70년②]

기사등록 2023/07/27 06:00:00

최종수정 2023/07/27 06:28:05

전쟁 피해자 유가족들 피해 회복 아직

"죄 없지만 평생 말 조심하며 살아와"

'진실화해위 진실규명→민사' 거쳐야

"대부분 나이 90…죽을 때 기다리나"

[파주=뉴시스] 고승민 기자 =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 소망리본이 달려 있다. 2023.07.26. kkssmm99@newsis.com
[파주=뉴시스] 고승민 기자 =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 소망리본이 달려 있다. 2023.07.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래현 전재훈 기자 =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삼촌이 행방불명됐어요. 나중에 두 분을 포함한 12명의 시체 무덤이 발견됐는데,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렸답니다. 죽창을 들고 협박하는 빨치산들 협박에 못 이겨 가입한 건데,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가 재판도 하지 않고 집단 학살한 겁니다. 12명의 고인은 직접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굴비처럼 엮인 채 생매장당했습니다. 남은 가족들도 빨갱이로 굴비처럼 엮여서 연좌제로 고통받았습니다."

신중재(73)씨는 한국전쟁이 멈춘 지 70년 된 27일, 그간 연좌제로 고통받았던 날들을 회상했다. 평생 교사로 살아온 신씨는 자신의 인사 기록부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던 것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장학사가 불시에 학교로 찾아오더니, 신씨가 여름방학 때 북한을 다녀오지 않았는지 뒷조사까지 했다는 얘기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는 "지은 죄는 없지만 평생 말 한마디도 조심하며 살아왔다. 정전 70년이라도 부역자 낙인은 그대로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보도연맹이란 사상범 전향을 명목으로 1949년 결성한 관변 단체다. 당초 좌익 경력자가 주요 가입 대상이었으나,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는 물론 일반 국민도 상당수 가입돼 있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들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예비검속돼 집단 학살당한 사실을 규명했다. 한국전쟁 시기 초기 후퇴 과정에서 정부 및 경찰은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 즉결처분 등 민간인 집단 학살에 나섰다고 알려졌다.

신씨는 진실화해위에 아버지와 삼촌의 피해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한 상황이다.
[오산=뉴시스] 김종택 기자 =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과 유엔군 참전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기도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내 스미스평화관을 찾은 한 시민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사진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3.07.26. jtk@newsis.com
[오산=뉴시스] 김종택 기자 =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과 유엔군 참전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기도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내 스미스평화관을 찾은 한 시민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사진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3.07.26. [email protected]

정연조(74)씨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 희생당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좌제 등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끌려가서 희생된 후 어머니도 집을 나가셔서 가정이 파탄 났다"며 "고통은 나에게 이어졌다. 연좌제가 적용돼 공무원 시험을 칠 때 신원 조회에서 걸려 부적격 판단을 받았고,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로자로 가려고 했지만 재차 신원 조회 문제로 좌절됐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한국전쟁의 2차 피해를 입으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문을 기다리는 사람은 1만2063명에 달한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이들은 1855명에 불과하다. 위원회 활동 기한은 내년 5월26일인데, 한국전쟁과 관련해 접수된 사건의 3분의 2가 조사 중에 있다.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을 받아도, 실질적인 배·보상을 받기 위해선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연좌제 영향으로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민법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을 3년 안에 행사해야 하는 것도 큰 장애물이다.

신씨는 "피해자 대부분이 아직 진실규명 결정문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잡아다 죽여놨는데, 피해자들과 유가족이 직접 진실규명을 신청하고 소를 제기해야 한다. 고령의 피해자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국가는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기가 막힌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진실규명과 민사 소송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참전용사 전사자 묘비 앞을 한 어르신이 지나가고 있다. 2023.07.25.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참전용사 전사자 묘비 앞을 한 어르신이 지나가고 있다. 2023.07.25. [email protected]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 '배·보상 특별법'이다. 진실규명 결정 등 피해를 인정받으면 일정 기준에 따라 배·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별도로 소송하는 수고를 덜자는 것이다.

김복영(74)씨도 특별법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국군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한다.

그는 2012년 7월부터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가족들의 피해 배·보상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등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지금 (진실규명을) 신청한 유족들만이라도 명예회복이 되게끔 해줘야 하는데, 대부분 나이가 90세가 다 돼간다. 죽으면 그만둔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래서는 국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국회에는 한국전쟁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내용을 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3건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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