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 카르텔' 지적에 수능 5개월 남기고 변화
"사교육 줄이는 정책이 사교육 늘리는 역설"
[서울=뉴시스]임철휘 박광온 기자 = 교육부가 '사교육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한 것을 두고,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혼란이 극에 달한 분위기다. 킬러문항의 기준이 모호한 것은 물론, 당국이 킬러문항 배제 후 수능 변별력을 어떻게 확보할 거냐는 질문에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서다.
27일 학원가 등에 따르면, 주요 입시학원을 위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 '무엇이 달라지느냐' '불수능이냐 물수능이냐' 등과 같은 학부모들의 상담과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 정도 수준의 큰 입시 변화가 수능을 반년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발표됐다는 점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이 킬러문항과 연계해 사교육 시장을 향해 '이권 카르텔'이라고 지적하고, 교육부 등 관계부처가 조사에 돌입한 것을 놓고 '정치적 고려에 아이들만 피해를 보는 셈'이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고3·고1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51)씨는 "어찌됐든 학원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허울뿐인 정책에 아이들만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의 고등학생 임모(18)양은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준킬러문항'을 맞추겠다고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생길 것이다"며 "없앨 수 없는 걸 없애려고 하다 보니 수험생들만 혼란스럽고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교육 업계 등에서는 이번 정책으로도 '사교육 경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킬러문항만 '준킬러문항' 등 용어로 그대로 대체돼 새로운 사교육 마케팅으로 등장하는 식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 학원가에선 9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새 정책에 따라가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선생도 학생도 혼란한 이런 상황에서는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며 "선생님들은 교육부 발표를 주시하면서 프로그램들을 개발·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험생들이 모이는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정책이 사교육을 오히려 부추겼다. 사교육은 수험생의 불안을 먹고 사니까"와 같은 게시글들이 올라와 수험생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정책을 발표하면 불안감이 조성되고 그 불안감 때문에 오히려 사교육이 더 증폭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지금까지 반복돼 왔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초고난도 문항을 '핀셋 제거한다'와 같은 말로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하면 안 된다"며 "대신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정하겠다' 정도로 메시지를 관리해서 학생들이 5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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