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30분께 강릉 산불 발생…8시간 동안 일대 태워
"불 꺼보려 물 뿌리는데 소방관들이 빨리 나오라 외쳐"
천막 속에서 웅크려 눈물…연신 휴대전화 속 집 사진만
[강릉=뉴시스] 위용성 박광온 기자 = "20년 가까이 지켜온 내 펜션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더라."
펜션을 운영하던 60대 최모씨는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탈출 당시 상황을 설명하다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시커먼연기가 막 올라오고 불이 계속 옮겨붙으니까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었다"며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물을 뿌리고 있는데, 소방관들이 빨리 나오라기에 옷 하나만 걸치고 나왔다"고 했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 일대를 태운 산불로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대피소에 모여든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거센 불길을 피해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이곳은 100여개의 재난구호천막으로 가득찼다. 131가구 662명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천막 안에 엎드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30분께 난곡동 산24-4번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강릉지역 산림과 주택·펜션 등 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산불은 당국이 오후 4시30분께 주불 완진을 선언하기까지 약 8시간 동안 일대를 태웠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잿더미로 변했다. 주택과 펜션, 호텔, 상가, 교회 등 건물 72채 가량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불이 옮겨 붙어 집이 타들어 가는데 너무 무섭고 슬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다는 생각 뿐이다." 두 자녀와 함께 천막에 앉아있던 최영주(44)씨는 황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가 "집에 불이 나서 장난감도, 옷도 없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오히려 "괜찮아"라며 엄마를 안아주기도 했다.
한 주민은 천막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천막마다 침구류 등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와 마주치자 급히 눈물을 닦고 손을 내밀었다. 천막 앞에 놓여진 그의 신발은 온통 흙투성이라 당시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인과 함께 몸을 피한 서종규(78)씨는 휴대폰 사진첩을 연신 넘겨대며 타버리기 전 멀쩡했던 자신의 집 사진을 찾았다. 서씨는 "이 집에서 가족들과 수십년을 지냈다"며 "화재로 잃어버린 건 단순히 집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귀중한 추억"이라고 했다.
한편 소방당국은 강풍으로 부러진 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선이 끊어졌고, 여기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이날 소방인력 2787명 소방차 등 장비 403대를 투입해 불을 껐다. 당국은 일부 지역에서 재발화 신고가 들어오는 데다 바람이 완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어 야간 잔불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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