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OECD와 비교해 의사수·의대생 부족"
의협 "지금도 의료 접근성, 의료의 질 최고"
정부 "의사 늘려 소외지역·기피전공 문제 해결"
의협 "부작용 우려…수가 조정해 문제 풀어야"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의료계가 총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의사 정원 확대라는 민감한 정책 이슈가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지난 15년간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 의대를 신설하기로 정책 방향을 잡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향후 10년간 한시적으로 400명씩 확대해 4000여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매년 400명씩 정원을 확대해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산부인과, 일반외과 등 중증·필수 의료분야 의사(300명) ▲역학조사관, 중증 외상, 감염내과, 소아외과 등 특수·전문분야 의사(50명) ▲기초과학, 제약·바이오 등 의사과학자(50명) 등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가 심각하고 기피 전공에 의료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사 정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사 수가 모자란게 아니라 기피 지역·전공으로 인력이 재배치될 수 있는 정책적 유인이 부족한 것이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
적정 의료 인력에 대한 논쟁은 10년 이상 지속돼 왔다.
정부는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절대 의료인력 수가 너무 부족하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해도 2.3명(의사 1.89명, 한의사 0.4명)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의 68% 수준이다.
또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의학 계열 졸업자 수는 7.48명으로 OECD 평균(12.6명)에 미치지 못한다. 이 수치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OECD의 평균이 9명대로 비슷했지만 지속적으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OECD 국가들은 2000년 이후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온 반면 우리나라는 줄이거나 유지하는 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라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역·전공간 불균형이 심각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1명에 달하지만 경북(1.4명), 울산(1.5명), 충남(1.5명), 경남(1.6명), 경기(1.6명) 등은 의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감염내과, 소아외과, 중증외상, 역학조사관 등 특수·전문분야에는 인력이 제대로 충원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환자가 제 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사망하는 비율도 높아 격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특수·전문 분야도 민간에서 자연적으로 수요가 충족되기 어려워 의사 정원 확대를 얘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질이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점을 들어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6.6회로 OECD 평균(7.1회)의 2배가 넘는다. 의사 1인당 환자 진료 횟수는 연간 7080회로 OECD 평균(2181회)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의사 수가 부족해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아니라는게 의협의 생각이다.
또 의협은 우리나라가 각종 건강 지표(기대수명, 영아사망률, 암사망률)에서도 OECD 최상위권의 의료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의협 관계자는 "OECD 데이터에 따른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총평은 가격대비 성능비가 월등하게 좋다는 것"이라며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많은 이탈리아는 코로나19로 난리가 났다. 이탈리아는 거의 100% 공공의료로 운영되고 있는데 시설도 낙후돼 있고 의사들에 대한 대우도 안 좋아 실력 있는 의사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피 지역이나 전공으로) 안 가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피 지역에는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 약사, 변호사, 교사 등 다른 인력들도 부족하다"며 "결국에는 기피 전공이나 지역을 택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핵심은 의료수가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수가 조정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 기피 지역·전공으로 유도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의 1인당 소득은 도시근로자의 6배에 달한다. OECD 국가들의 의사 소득 비율이 2~3배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같은 높은 소득 수준은 의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촌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월평균 수입(1404만원)은 대도시(1310만원)에 비해 높았다. 의사들의 지방 근무 기피 현상이 단순히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국장은 "상업진료에 편중되거나 지역별 의료 불균형이 나타나는 문제는 현행 체제 내에서 보정이 불가능하다"며 "의협은 (의료 인력의) 배치 문제라고 하지만 돈을 안 주기 때문에 (기피 지역이나 전공으로)가지 않는다는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남 국장은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시장 실패를 보정하기 위한 정책으로 지역의사제나 자치의과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실패하지 않았다"며 "현재 취약 지역이나 필수 의료과목에서는 의사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 공공의료를 통해 이를 채워주는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의사 수를 늘리면 과잉진료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전직 간부는 "다른 공급자들은 수가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지만 의사들은 의료라는 지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수요를 만들 수 있다"며 "의사들은 (소득이 줄어들면)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비윤리적인 활동을 하게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