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예술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바나나를 작품이라 내걸은 놈이나 그걸 1.5억이라고 책정한 놈들이나, 뭐든간 작품을 먹어치운 놈이나...'
# '나도 어제 이거 5개 거실에 붙여놨다 7억 벌었다' # '저걸 1억주고 사는 사람은 뭐냐'
지난 9~10일 뉴시스가 보도한 "1.5억원짜리 '바나나 작품' 꿀꺽한 예술가" 기사가 낳은 댓글은 '리얼리즘의 극치'다.
그 예술가의 궁금증보다, '그 바나나가 대체 뭐길래 1.5억이나 하는가'가 더 초점. 댓글의 압권은 '저걸 돈주고 산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네!'다.
'1.5억원짜리 '바나나 꿀꺽' 사건은 지난 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벌어졌다.
이 아트페어에 참가한 페로탕 갤러리 부스 벽에 강력한 덕테이프로 붙여진 '바나나'를 한 행위 예술가(데이비드 다투나)가 입안으로 삼켜버린 것.
갤러리의 충격 속 작품을 먹어치운 그는 한 술 더 떴다. 뉴욕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배가 고파서 먹었다"며 이걸 "'헝그리 아티스트' 퍼포먼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에게 미안하지 않다. 예술로 대화하는 것"이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식된 예술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름 탓이었을까? 코미디언 같은 예술가를 끌어당겨, '아트'를 코미디(comedy)로 만들어버린 바나나 작품 제목은 '코미디언'이다.
문제의 바나나가 먹혀 버린 후 몇 분 만에 페로탕 갤러리는 곧바로 새 바나나를 붙여 놓았지만, 결국 제거(?)해야했다. 소문이 나자 관객들이 몰려들어 셀카 사진을 찍는 바람에 주변 작품의 안전 문제를 위협한 것.
원래 바나나, 그러니까 '코미디언' 작품은 떼먹히기 전에 12만달러(한화 1억5000만원)에 팔렸다.
따지고 보면 갤러리측은 아쉬울 게 없다. 팔아야 하는 아트페어에서 이미 팔았고, 화제의 사건으로 작품과 작가를 세계 만방에 알렸으니, 손안대고 코 푼격으로 일석삼조 효과를 누렸다.
그래도 전시장에서 조기 철수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세계 유명화랑 명성을 자랑하는 페로탕 갤러리의 입장은 어땠을까?
'바나나 작품'을 내건 페로탕 갤러리 캐서린 위스니에프스키(Katharine wisniewski) 디렉터는 뉴시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트페어 마지막날이었던 8일(일요일),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함께 전시장에 '코미디언'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캐서린 위스니에프스키는 "작가와 나는 아트바젤 마이애미측의 권고에 따라 결국 그날 아침 9시에 바나나 작품을 제거했다"면서, "이렇게 기억할만한 모험(?)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정말로 감사함을 전한다"고 여유를 보였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이번 일에 대해 혹여 '짜고 치는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뉘앙스에 "바나나를 먹어치운 퍼포먼스 예술가와 연계돼 있지 않다"며 먼저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 '코미디언', 바나나 작품 자체에 대한 상태를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다"면서, '벽에 붙인 바나나 한개가 왜 1억5000만원이나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대신했다.
"당신도 개념 예술(conceptual art)에서 '진품 증서(certificates of authenticity))'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것"이라면서 "바나나 '코미디언'은 진품 증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작품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서죠. 그 '진품 증서'에는 바나나 작품 설치에 대한 정확한 지시 사항이 포함되어 있어요. 개념 예술에서 진품 증서가 없다면, 그저 물질적 표현과 묘사에 불과할 뿐이잖아요. 결국은 진품 증서를 가져가는 것이 곧 작품 자체를 소장하는 것입니다"
바나나는 사라졌지만 진품증서가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바나나는 언젠가는 썩어 없어진다는 '발상'의 장치다. 페로탕측에 의하면 그 바나나는 세계 무역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고전적 유머 장치다.
세계를 들썩거린 '코미디언' 바나나는 분명 1.5억 보다 더 비싸질 것이란 전망이다. 훗날 경매에 오른다면, 수십배 높은 가격에 매겨져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게 국내 미술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유는? 작가의 유명세 때문이다. 바나나가가 먹혀버린 이벤트까지 더해 '진품 증서'는 언제든 바나나를 벽에 붙일수 있고, 그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며, 그게 바로 '현대 미술'이다. 이쯤되면 '예술 참 쉽죠 잉~' 이지만 미술시장 역사가 증명한다.
'코미디언 바나나' 작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1917년 4월 시작됐다. '어떤 예술가든 6달러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미국 뉴욕 '앙데팡당'전에 화장실 소변기가 등장했다. 검정 물감으로 'R. Mutt'라고 쓰인 소변기는 작품 제목이 '샘'이라 했다. 전시 감독들은 이게 작품이냐며 갑론을박을 벌였고, 급기야 '변기' 출품과 관련 투표까지했다. 결국은 “그것은 전혀 미술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샘'을 전시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실제로 한번도 보이지 않은채 '변기'는 그야말로 핫이슈가 됐다.
'본래의 자리에 있으면 매우 유용한 물건이겠지만,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그것은 예술작품이라 할수 없다'며 치워진 변기가 부활한건 컬렉터 덕분이다. 당시 뉴욕 미술계를 주름잡던 컬렉터 아렌스 버그 부부가 사들였다. 하지만 그 변기를 잃어버리면서 개념미술의 원조가 탄생한다. 그 때 소변기를 출품한 마르셀 뒤샹은 새로 변기를 구입해 서명하고 아렌스 버그에 다시 제공했는데, 이때 변기는 '오브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지킨 것'이라고 해석됐다.'코미디언 바나나'가 '바나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의 컨셉'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페로탕갤러리측의 말은 결국 마르셀 뒤샹의 샘, 그러니까 '변기'가 파생시킨 바나나다.
일반적인 상점에서 산 기능적인 물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술의 맥락에 들어온 뒤샹표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발명이었다.
소변기 '샘'의 위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영국미술가 500명이 ‘지난 20세기 100년간 후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20세기 작품’ 1위로 뽑은 작품이다. '위대한 천재 예술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눌렀다.
'이게 작품이냐'며 쓰레기 취급됐던 소변기는 몸값도 올렸다. 1917년 굴욕시기를 거쳐 82년이 지난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한화 약 200억)에 낙찰됐다. 뒤샹의 작품 중 최고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이 소변기는 1917년 제작된 바로 그것도 아니고 1964년에 새로 만든 8번째 에디션(복제품)이었다.
'바나나'를 벽에 붙인 작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59)이다. 세계적인 유명화랑 페로탕갤러리 소속으로 그의 이름만으로 미술계에서는 명성을 입증한다. 지난 9월 '18K 황금 변기' 작품을 공개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 작품은 도난 당해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지만 황금으로 도금된 변기는약 480만 파운드(약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생가 블레넘궁에서 전시 중에 도난당한 '황금 변기'는 인간의 탐닉과 지나친 부를 풍자하는 작품으로 20만원짜리 밥을 먹든, 2000원짜리 밥을 먹든 배설이 되는 건 같다는 의미다.
20세기 미술을 발칵 뒤집어놓은 뒤샹의 후예답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아이디어 하나로 예술하는 '풍자의 대가'다. 위트와 역설적 유머, 종교 · 정치 · 사회활동 · 미술계에 이르기까지 기존 권위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유명세를 구축했다. 1992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단체전 작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경찰서에 도둑맞은 작품에 대한 신고서를 쓴 후 그 신고서를 다시 갖고 와 액자에 넣어 전시하기도 했고, 암스테르담의 한 갤러리에서 진행중이던 전시물을 통째로 옮겨 다시 설치를 했는데, 절도행위로 취급받자 그는 자리만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인 아돌프 히틀러를 미니어처 상으로 만들어 히틀러의 로마 가톨릭교를 풍자적으로 조롱했고, 7m 길이의 축구게임기계를 재현해 이탈리아인들의 축구에 대한 국가적인 집착과 그 부패상을 간접적을 비판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로 영리하지는 못했다'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술전공자도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한 곳에 오래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뉴요커' 의 전속 미술평론가 캘빈 톰킨스는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책을 통해 마이루치오 카텔란을 '판의 규칙을 깨뜨려버리는 말썽꾼'이라고 표현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히틀러, 관 속에 누운 케네디, 운석 조각을 맞고 쓰러진 교황 등 카텔란은 ‘이게 예술인가?’ 싶은 의구심을 일으키는 작품들, 충격적이고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내보이지만 대개의 관객들은 그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일단 웃고 나서 그 뒤에 숨은 사회적 의미들을 곱씹게 하는 묘한 작품들이다"
“전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는 식으로는 아니에요. 그건 이상하잖아요. 저는 태생부터 멍청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렇더라도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배우고 있죠. 제가 일반적인 미술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형의 관람객을 아우르는 가능성에 혹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제가 작품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바로 대장이에요. 아니면 여주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네요. 작품은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상당한 고뇌를 안겨줍니다. 제가 만든 것이 무엇이든, 그건 제가 아닌 제 안의 무언가에서 나온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것의 주인은 아니죠.”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 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중 p.230)
'대체 그 바나나가 무엇이길래 1.5억짜리인가', '예술이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세상 모든 기성 체계를 풍자하는 그의 재능에 설득당한 것이다. 여전히 아리송한 '개념예술'의 승리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작가도 갤러리도 아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처럼 '저걸 돈주고 산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네!'다. 결국 작가와 화랑이 부르는게 값인 작품가격(k-artprice.newsis.com)은 컬렉터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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