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공수부대·보안사 지휘·수사관 "북한군 투입설은 거짓"

기사등록 2019/02/20 16:00:04

최종수정 2019/02/20 19:22:52

신순용 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

허장환 505보안부대 수사관 증언

"말도 안 되는 허위 주장, 작전 활용"

"광범위한 공작, 계엄군 진압 정당화"

"전두환 쓴 일기에 공작원 투입 기록"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지휘관과 505보안부대 수사관이 "북한 특수군의 광주 투입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거듭 증언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의 투쟁이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다양한 공작을 펼쳐왔고, 이 같은 허위 사실로 유혈 진압을 감추고 지우려했다는 설명이다.

505보안부대 전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 허장환(71)씨는 전두환씨를 비롯한 극히 일부가 5·18을 기획·통제·조정했고, 이 과정에 모든 정보수집과 공작활동이 광주에 집중됐다고 역설했다.

'간첩 광주 침투 시도와 일명 독침사건' 등 광범위한 공작을 군사 행동의 정당성과 왜곡 논리의 단초로 삼았다는 것이다.

허씨는 20일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 재임시절 국보위원장으로 가기 전까지 충성일지(일기, 일명 호랑이일지)를 썼다. 그의 충성일지에는 '1군단 보안부대장인 홍성률 대령을 선무공작대장으로 광주에 투입시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태감독관'이라는 명칭으로 광주에 상주했던 홍 대령은 (기획한대로)일이 잘 진행되는지 감독했다. 5·18은 공작의 귀재였던 민간인 위장 군인(선무요원)들을 포함해 열 손가락 내에 있는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통제하고 조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5·18 당시 특전사령관을 비롯, 각 지휘관들은 (12·12사태 반역 동조 세력 처단 목적으로) 보안사의 감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허씨는 이 같은 점으로 미뤄 "지만원씨를 비롯해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한군 600명 광주 투입설'은 터무니 없고 미치광이 같은 소리"라고 밝혔다.

또 "지씨가 광주에 온 북한특수군이라고 지목하며 증거로 제시한 사진은 보안사에 보고됐던 사진들"이라며 "지씨와 면담한다면, 단 10분만에 그의 괴설을 입증할 자료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씨는 국론 분열, 지역 갈등 조장뿐 아니라 전두환을 시대의 영웅으로 호칭하며 지도자를 잃어버린 태극기부대를 자신이 지휘하는 양 정치적 분열을 꾀하고 있다. 북한 개입을 역설해 민주화운동 자체를 희석시키기 위한 고도화된 술책"이라고 강조했다.

허씨는 "5·18의 시작은 80년 5월17일 보안사를 옮겨다 놓은 505보안부대이고 끝은 망월묘지다. 대구 출신으로서 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피부로 절실히 느꼈다. (진상조사위 출범 이후) 발포명령부터 정권찬탈 기획 등을 밝히는 데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왔던 신순용(71) 전 소령도 "북한군 개입설은 말도 안 되는 허위 주장"이라고 밝혔다.

신씨는 "광주에 오기 전부터 부대에서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한 폭동' '김대중 내란음모' 등의 (정신)교육을 받았고, 그에 따른 훈련이 진행됐다. 광주에 들어올 무렵부터 '북파 공작원들이 침투해서 난리를 쳤다, 북한의 계급 투쟁에 동조한 국가전복 경향이 있다'는 내용 등의 거짓 정보가 유포됐다"고 말했다.

이어 "부대 이동·승인 과정에도 이 같은 허위 사실이 가미돼 (신군부가 의도한)작전이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광주를 종북 프레임으로 엮어 폭압을 지우려고 꾸민 여론 조작"이라고 규정했다.

신씨는 각 공수부대 임무와 작전 수행 경위를 설명하며 "군 경계 체계상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할 수도 없고, 허위 주장대로 북한이 개입됐다면 당시 군 지휘관 모두가 직무유기로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다. 유언비어로 (계엄군의)과격함을 조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공수부대는 특전사령부와 교신하는 무전기를 따로 썼고, 별도의 지시를 받았다"며 "지휘 체계 이원화에 따른 오인사격으로 계엄군이 사상했고, 광주시민들은 도청 앞 집단 발포(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이후 처음으로 무장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아무런 죄 없이 총탄에 맞아 죽은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허씨는 "광주학살의 총 책임·명령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허씨는 '홍남순 변호사를 재수사해 행적을 조작하라'는 지시를 거부했다가 1981년 강제 전역을 당했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치렀다.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은신해왔다.

신씨는 "옛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민군 3명을 숨지게 한 뒤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북한군 개입설은 지난 39년간 6차례에 걸친 국가기관 조사와 법원 판결에서 근거 없는 허위 사실로 판명됐다. 1980년 남북 고위급 실무대표회담 상황이 기록된 '남북한 대화록'에서도 5·18과 북한군의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두환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15쪽에 걸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허위 주장을 폈다.

전씨는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 자리에서 '광주에서 신원 미상 시신 22구가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 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미 기밀문서 기록(80년6월17일)도 있다.

이 때문에 왜곡의 뿌리가 전씨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국무부도 '북한군 투입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전씨는 2016년 4월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정호용 전 의원, 고명승 전 3군사령관 등과 만난 자리서 '5·18 때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정보보고를 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5·18 공수부대·보안사 지휘·수사관 "북한군 투입설은 거짓"

기사등록 2019/02/20 16:00:04 최초수정 2019/02/20 19:22:52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