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아도 앞길 첩첩산중
【서울=뉴시스】 오애리 기자 = 영국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 결과에 영국은 물론 세계가 놀라고 있다. 합의안의 부결 가능성은 이미 예상됐으며, 일각에서는 200표 이상의 표차로 부결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실제로 무려 230표차로 부결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30표의 무게는 엄청나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정부가 의회에 상정한 안건이 230표차로 부결되기는 영국 의정 사상 최초의 일이다. 100표차로 부결 기록도 매우 드믄 상황에서 230표차라는 신기록을 세웠으니, 테리사 메이 총리는 물론이고 집권 보수당으로선 그야말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치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국 의정사상 100표차 이상 부결 기록은 95년전인 1924년에 작성됐다. 당시는 램지 맥도널드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였다. 맥도널드 정부는 한해에 의회에서 166표, 161표, 140표차로 안건이 부결 당하는 일을 겪었다. 이후 맥도널드 정부는 의회로부터 불신임을 당해 물러났다. 조기총선에선 보수당이 이전보다 150석 이상을 더 얻는데 성공해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집권했다.
하지만 맥도널드 당시 총리와 메이 현 총리가 놓여 있는 정치적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맥도널드 정부는 우선 소수 정부였다. 노동당의 의석수는 200석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집권당인 보수당과 연정파트너정당인 민주연합당(DUP) 의석이 과반을 넘는 325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려 230표차로 패배했다는 것은 맥도널드 소수 정부 때와는 비교할 수없는 더 큰 치욕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번 표결에서는 보수당 의원 317명 중 118명이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118명이 16일 오후 7시쯤 치러질 메이 내각 불신임 투표에서 모두 찬성표를 던질지는 불확실하다.
BBC 등영국 언론들은 보수당 의원들도 조기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 급진파 제러미 코빈 대표가 총리가 되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에, 보수당 등 보수정당들의 표가 집결해 메이 총리가 살아남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메이 총리는 지난해 12월 12일 보수당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한 데 이어, 한달 새 두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게 되는 셈이다.
만약 메이 총리가 불신임 투표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구해낸다 하더라도, 앞날은 첩첩산중이 될게 확실하다. 브렉시트합의안이 230표차로 부결된 상황에 책임을 지기 위해선 EU와의 협상에서 지금까지보다 강경하게 나가야 하지만, 과연 EU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메이는 또다른 불신임 투표 또는 제2국민투표의 험난한 장애물들을 넘어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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