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설치 안 된 오래된 소규모 숙박업소
투숙객들 깊이 잠든 새벽 화재…복도도 비좁아
유일한 출입구인 정문에 휘발유 뿌려 '탈출 봉쇄'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20일 서울 종로의 한 여관에서 방화로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에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오전 3시께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3층 규모 여관 2층에서 불이 나 1시간 만에 꺼졌다. 이 불로 여관에 있던 10명 중 5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중에도 중상자가 있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사망자와 부상자의 인적사항은 아직 확인 중이다. 인근 건물에는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단 노후 건물이었다는 점이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2층 규모인 이 여관은 한눈에도 매우 오래되고 낡은 모습이다. 소화기를 제외한 특별한 소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실제 이 여관은 소규모 숙박업소로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도 아니었다.
"내가 불을 질렀다"고 112에 직접 신고한 유모(52)씨는 "여자를 불러 달라"며 여관 주인과 숙박 및 성매수 문제로 다툼을 벌인 뒤 홧김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1층에서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번져 잠든 투숙객들을 덮쳤다.
유씨는 갖고 있던 천에 휘발유를 적셔 불을 붙인 뒤 정문에 던졌는데, 정문은 이 여관의 유일한 출입구였다. 다른 통로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탈출구를 '봉쇄'한 셈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비상구가 있었을 뿐이다. 투숙객 중에 옥상으로 대피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옥상으로 도망갔다고 하더라도 불길과 매연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여관 내부도 비좁았다. 주변 주민들은 "복도가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고 증언한다. 투숙객들이 화재를 인지하고 쉽게 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방화가 새벽 시간에 벌어져 투숙객 대부분이 깊은 잠에 빠져든 시점이었던 것도 인명 피해를 크게 한 이유 중 하나다. 경찰 관계자도 "새벽에 투숙객들이 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 화재가 발생해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종합해보면 이렇다 할 소방 시설이 없는 노후한 건물에 투숙했던 손님들이 새벽에 자다 깨서 급격히 번지는 불길과 연기를 피해 좁은 내부를 거쳐 건물 출입구를 찾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씨가 휘발유를 뿌려 불길이 빠르게 커지면서 가스가 터지는 것처럼 "쾅",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는 주변 상인들의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유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범행동기와 경위 등을 수사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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