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왜 먹나' 핀잔 무색···'장비발' 소용 없어
'육아'와 '가사' 병행?···슈퍼우먼이라도 '불가능'
차고 넘치는 정보 홍수···혼란과 불안만 '가중'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날이 밝았다. 태어난 지 60여 일 된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시계는 오전 4시50분을 가리켰다. 아기는 마치 알람시계처럼 오전 4~5시 사이에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하루도 어기는 법이 없다.
부랴부랴 기저귀를 갈았다. 아기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분유를 탔다. 적당히 데운 물과 분유를 젖병에 넣고 흔든 뒤 아기 입에 물렸다.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연신 입을 오물거렸다. 배를 채운 아기를 다시 안고 등을 쓰다듬어 트림을 시켰다.
분명 갓 태어난 아기들은 먹고 자고, 먹고 잔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기자 품에 얼굴을 묻은 아기가 엄마인 줄 알고 젖을 찾아 더듬거렸다. 어설픈 육아 초보 아빠의 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쉽게 잠들지 못한 채 보채기만 했다.
안 그래도 팔이 저려 죽겠는데, 아기를 안고 거실을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잠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국민 아기띠'라고 호들갑 떨던 '장비발'도 별 소용이 없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와 다른 울음소리에 놀란 아내가 한 걸음에 달려왔다. "불안해서 아기를 맡길 수 있겠냐"는 원성과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내가 아기를 안는 자세를 고쳐줬다.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 한쪽 팔로 아기를 단단히 감쌌다. 몇 번 칭얼대나 싶더니 새근새근 잠들었다. 집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아침밥을 먹을 겨를이 없었다. 점심과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식탁 위에 늘 있던 시리얼의 필요성을 그때서야 알았다. 식탁에 앉아 우유에 담긴 시리얼을 한 술 뜨자마자 아기가 칭얼거렸다. 앉는 건 꿈도 못 꿨다. 서서 시리얼을 마시다시피 했다. 평소 아내에게 버릇처럼 말한 '밥을 먹지, 왜 시리얼을 먹느냐'는 핀잔이 무색했다.
◇육아와 가사 '두 마리 토끼', 슈퍼우먼도 못 잡아
전날 밤늦도록 한바탕 전쟁을 치르느라 어질러진 살림살이들이 눈에 띄었다. 아기가 있는 집이 그렇듯, 출산 전부터 아이 물건들이 거실을 점령했다. 바닥에는 뽀로로 유아용 매트리스가 깔렸다. 제법 덩치가 큰 아기용 침대와 바운서, 스윙, 플라스틱 이동형 서랍장, 모빌 기계까지 한자리씩 차지했다.
거실 곳곳에는 신생아 수유쿠션과 속싸개, 손싸개, 손수건, 면봉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기띠를 하고 청소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포기했다. 잠깐 허리를 숙이자 아기가 칭얼거리고, 버둥거렸다. 혹 잠이 깰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또 식은땀이 줄줄 났다. 아기를 앉은 채 쓸고, 닦아야하는 청소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아내가 인터넷으로 산 기다란 집게를 이용해 보이는 것들만 대충 치웠다.
주방 싱크대에는 젖병 다섯 개와 공갈젖꼭지 등이 담겨 있었다. 남은 젖병이 한 개밖에 없어 설거지를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젖병과 젖꼭지, 마개 등을 모두 분리해 젖병 전용 세정제로 꼼꼼하게 닦아야했다. 끝이 아니었다. 아내가 신신당부한 열탕 소독 과정이 남았다. 혹시 아기에게 끓인 물을 튈까 바짝 긴장한 채 소독을 마쳤다.
2~3시간마다 잠에서 깬 아기가 보챘다. 기저귀를 갈고, 잽싸게 분유를 타고 입에 물렸다. 트림까지 한 아기가 '응가'를 했다. 욕실에서 서툰 손놀림으로 엉덩이를 씻기자 아기가 목청껏 울음을 터뜨렸다. 득달같이 아내가 달려왔다. 또 곱지 않은 시선이 아무렇게나 꽂혔다. 어느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새 기저귀를 채울 수 있었다. 독박육아 5일간 아기는 하루 평균 3~4번 응가를 했고, 기저귀를 6~7번 갈았다.
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무한 반복되는 독박육아에 가사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체 육아와 가사를 어떻게 다하란 말인가. 애당초 슈퍼우먼이라도 불가능하다.
◇24시간 '등 센서' 발동…'아기띠'하고 볼일 봐야
5일간 때늦은 식사가 반복됐고, 느긋하게 먹을 수도 없었다. 아기의 유일한 의사소통이 울음이라고 하지만, 2~3시간마다 젖 달라, 기저귀 갈아 달라, 재워 달라고 울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식은땀이 줄줄 났다.
눕히면 이른바 '등센서'가 발동했다. 센서는 24시간 꺼지지도 않았다. 모빌과 스윙도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누워 있는 걸 워낙 싫어해 늘 안아야했다.
또 아기를 먹이고 씻겨도 정작 기자는 먹고 세수할 시간조차 없었다. 떡진머리에다 수염은 거뭇거뭇하게 올라왔다. 화장실도 아기띠를 하고 가는 마당에 세수와 샤워는 사치였다. 아기가 잠든 새벽 시간에 샤워를 겨우 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자는 건 괴로웠다. 육아 초보 아빠에게 밤마다 반복되는 잠투정은 감당하기 벅찼다. 심하게 보채는 날은 뜬 눈으로 밤을 새거나 쪽잠을 자야했다. 통잠을 잔다는 이른바 '백일의 기적'이 정말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새로 산 옷이 점점 작아지고, 때때로 방긋 웃어줄 때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리라 각오를 다졌다.
◇"안아주느냐 마느냐"···정보 차고 넘쳐 더 ‘혼란’
육아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육아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 모두 육아 정보에 대한 갈증이었다.
육아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네댓 권에 달하는 육아 서적도, 육아 카페에서 쏟아지는 정보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또 온갖 설이 난무하는 통에 정보를 걸러내는 게 일이었다.
또 실전 경험자들의 조언들이 때로는 혼란을 부추겼다. 특히 '아기가 손을 탄다'는 이유로 보채거나 칭얼거리더라도 끝까지 눕혀 놓으라고 조언했다. 안아주면 안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손을 탄 아이들은 더 이상 눕지 않으려고 하고, 안아주면 일어서라고, 일어서면 걸으라고 한다는 이유에서다. 덧붙여 '산모가 탈이 난다', '응석둥이가 된다', '상전으로 키우면 나중에 버릇 나빠진다'는 등에 우려 섞인 조언도 서슴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조언을 따르자니 마음이 쓰리고, 거부하자니 혹 조언대로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아내와 출산 전 이미 장고 끝에 더 많이 안아주기로 결정했다. 애착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 눈을 맞추고, 살을 비비고, 서로의 채취를 공유하는 게 가족 아닌가.
그래도 평소와 다르게 칭얼거리거나 버둥거릴 때는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닐까, 내가 뭘 잘못했나, 꼬리에 꼬리를 문 걱정과 근심이 이어졌다. 급한 마음에 육아 서적을 뒤지거나 육아 카페에 검색하는 일도 반복됐다. 원칙을 정했지만, 필자는 늘 불안했고, 그때마다 흔들렸다.
하루 종일 아기를 안은 탓인지 날이 갈수록 목덜미가 뻐근했다. 독박육아 3일째부터 어깨부터 발목까지 온 몸 마디마디가 찌릿찌릿했다.
육아는 넘치는 정보와 조언 따위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었다. 육아 초보 아빠의 전쟁 같은 독박육아 5일이 끝났다. 길고 길었다. 쓰러질 수도, 끝도 없는 전쟁이었다. 오죽했으면 회사 복귀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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