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107>
원불교에서는 출가해 교단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을 교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승려라고 하는데 원불교는 삶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한다.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불교인 것이다. 그런 일을 전담하는 성직자인 교무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교무가 되기 위해서는 ‘출가 서원서’를 낸 후 심리검사와 면접 등을 포함한 원불교만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과하면 원불교의 각종 기관에서 2년 동안 간사로 무료 봉사해야 한다. 이후 원광대 원불교학과나 영산선학대를 나와야 한다. 학비는 면제해 준다.
그것도 모자라 의사들처럼 원불교대학원대학교나 미국에 있는 미주 대학원 대학교로 가서 2년간 석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를 마쳐야 비로소 의사 임용고시와 비슷한 1차 2차나 되는 엄격한 교무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8년의 과정을 마쳐야 전국 교당이나 관련 기관에서 소임을 맡아 봉직하게 된다. 이후로도 몇 년간 교무로 적합한 인성과 자질에 대한 교육과 점검을 받는다. 육체의 병을 다루는 의사처럼 성직자가 사람의 마음의 병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원불교에 대한 공부도 공부지만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가르침도 학과 교과과정 속에서 배우기에 언제나 ‘종교 간 대화’에서 원불교는 불교이면서도 민족종교로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평화의 상징이자 실천자가 돼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회에서 커다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이용해 스스로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한다.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에서 건져야 할 종교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보시하는 재가자들을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드는 일부 종단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나쁜’ 종교나 종단에 우리의 민족 종교적 토대 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평화적인 원불교는 포함되지 않을 듯싶다.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후에 본 미래의 ‘세계 대세’에는 많은 외국인이 우리에게 불법을 배우러 온다고 예견했다. 여기서 부처님의 법은 팔만대장경과 수행법을 포함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해석한 우리의 불교이다. 그리고 이 불교의 중심에 평화적인 원불교도 포함됐을 것임은 전혀 의심치 않게 한다. 이 세상을 건질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종교가 어떤 종교이며 어떤 종파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남자 교무는 대부분 결혼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황도국 서울교구장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사는 남자로서 정남도 있다. 또 대부분 여자 교무는 결혼하지 않고 유관순 누나 복장과 비슷한 정복을 입는 정녀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외국인 시민선방 송상진 교무와 같이 유관순 누나 복장을 거부하고 평범한 현대 여성의 복장을 연출하는 여자 교무도 있다. 초기 교단에서는 결혼하는 여자 교무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원불교는 전무출신(專務出身)인 교무 가운데 특히 정남 정녀들의 헌신성을 바탕으로 분파하지 않고 잘 성장해 왔다. 결혼한 남자 교무들을 ‘반무출신(半務出身)’이라고 헐뜯는 이도 있다. 하지만 석가모니부처님도 결혼한 후 출가했고 소성거사 원효 스님은 출가 후 결혼했다. 수행 정진과 결혼은 재가 불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이웃종교와 종단에서는 ‘성 매수’ ‘도박’이 발각되어도 ‘서면경고’가 조치되는 같은 시대에 한 사이트에는 “원불교 교무가 교도들이나 어린이집 교사들 위에서 군림하며 언어폭력을 일삼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다른 종교나 종단 같으면 쉬쉬하거나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을 텐데, “원광 유치원이 병설된 교당인 것 같은데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 원불교 중앙총부 교정원이나 감찰원에 고발해서 시비를 가리고 (잘못이 있다면) 해당 교무를 처벌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너무나 명쾌하고도 시원한 답변이 바로 올라왔다. 그 뒤 아무런 댓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질문 자체가 원불교를 헐뜯기 위한 글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명쾌한 답변을 단 교무로 보이는 원불교 교도에게서 청정한 종단을 유지하려는 결연함을 넘어 왠지 범접하기 힘든 자존감마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 한 여성 성직자는 전 세계 53개국을 방문해 소외 계층의 어려운 삶의 현장을 직접 살피고 55개국을 대상으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쓰는 등 경이로운 ‘기적’을 일으켜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1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던 그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2009년 한국판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던 그녀는 2006년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설립했고 1994년부터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에 기숙학교와 병원을 세워 2012년 인도 엠베드카르 국제상(2012)을 받았다.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는 원불교 서타원 박청수 교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돈과 권력 그리고 명성이 있어도 자신의 인격과 인품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모두 헛된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 완성돼야 자아성취, 자아완성이 됩니다.”고 했다. 앞서 포털 사이트에서처럼 원불교 교무들은 ‘인격’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한 각오와 그에 따른 자부심이 있다.
자력갱생을 중요시하는 교무들은 용금이라고 해서 용돈 38만원이 기본이다. 얼마 전 변호사 교무를 배출한 원불교에는 의사 교무, 한의사 교무, PD 교무, 기자 교무 등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게 활동하나 일반 사회인과는 달리 ‘박봉’에 시달린다. 남자 교무의 부인들은 모두 맞벌이를 한다. 교도들이 이런 딱하고 어려운 사정을 알고 따로 돈을 챙겨줘도 전혀 소용없는 일이 된다. 개인적인 헌공이나 희사(시주)를 안 받는 교무들은 받아도 모두 교화에 사용한다. 시주로 받은 모든 돈은 누가 언제 얼마를 냈는지 정확하게 중앙총부 교단에 보고된다. ‘원티스’라는 종합 행정 회계 시스템으로 전 교단이 연결돼 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청빈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에도 40여명이 자살하는 것이 오늘날의 아픈 실정이다. 특정 암보다도 사망률이 높은 이 자살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어떤 전쟁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버리는,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심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그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말 성공이란 무엇인가? 소태산 대종사가 본 ‘세계 대세’에는 우리가 세계정신의 지도국으로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며 ‘어변성룡’(물고기가 변해 용이 될 것이다)이라고 예언했다고 황도국 교구장은 전한다. 성공의 열쇠가 우리 인간의 인격과 인품에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원불교 교무들이 오늘날 우리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쳐 줄 것을 믿을 수 있기에 다행히 아닐 수 없다. 수많은 교무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세계에서의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하도겸 법사는 칼럼을 통해 사회와 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화합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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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서는 출가해 교단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을 교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승려라고 하는데 원불교는 삶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한다.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불교인 것이다. 그런 일을 전담하는 성직자인 교무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교무가 되기 위해서는 ‘출가 서원서’를 낸 후 심리검사와 면접 등을 포함한 원불교만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과하면 원불교의 각종 기관에서 2년 동안 간사로 무료 봉사해야 한다. 이후 원광대 원불교학과나 영산선학대를 나와야 한다. 학비는 면제해 준다.
그것도 모자라 의사들처럼 원불교대학원대학교나 미국에 있는 미주 대학원 대학교로 가서 2년간 석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를 마쳐야 비로소 의사 임용고시와 비슷한 1차 2차나 되는 엄격한 교무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8년의 과정을 마쳐야 전국 교당이나 관련 기관에서 소임을 맡아 봉직하게 된다. 이후로도 몇 년간 교무로 적합한 인성과 자질에 대한 교육과 점검을 받는다. 육체의 병을 다루는 의사처럼 성직자가 사람의 마음의 병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원불교에 대한 공부도 공부지만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가르침도 학과 교과과정 속에서 배우기에 언제나 ‘종교 간 대화’에서 원불교는 불교이면서도 민족종교로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평화의 상징이자 실천자가 돼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회에서 커다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이용해 스스로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한다.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에서 건져야 할 종교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보시하는 재가자들을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드는 일부 종단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나쁜’ 종교나 종단에 우리의 민족 종교적 토대 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평화적인 원불교는 포함되지 않을 듯싶다.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후에 본 미래의 ‘세계 대세’에는 많은 외국인이 우리에게 불법을 배우러 온다고 예견했다. 여기서 부처님의 법은 팔만대장경과 수행법을 포함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해석한 우리의 불교이다. 그리고 이 불교의 중심에 평화적인 원불교도 포함됐을 것임은 전혀 의심치 않게 한다. 이 세상을 건질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종교가 어떤 종교이며 어떤 종파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남자 교무는 대부분 결혼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황도국 서울교구장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사는 남자로서 정남도 있다. 또 대부분 여자 교무는 결혼하지 않고 유관순 누나 복장과 비슷한 정복을 입는 정녀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외국인 시민선방 송상진 교무와 같이 유관순 누나 복장을 거부하고 평범한 현대 여성의 복장을 연출하는 여자 교무도 있다. 초기 교단에서는 결혼하는 여자 교무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원불교는 전무출신(專務出身)인 교무 가운데 특히 정남 정녀들의 헌신성을 바탕으로 분파하지 않고 잘 성장해 왔다. 결혼한 남자 교무들을 ‘반무출신(半務出身)’이라고 헐뜯는 이도 있다. 하지만 석가모니부처님도 결혼한 후 출가했고 소성거사 원효 스님은 출가 후 결혼했다. 수행 정진과 결혼은 재가 불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이웃종교와 종단에서는 ‘성 매수’ ‘도박’이 발각되어도 ‘서면경고’가 조치되는 같은 시대에 한 사이트에는 “원불교 교무가 교도들이나 어린이집 교사들 위에서 군림하며 언어폭력을 일삼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다른 종교나 종단 같으면 쉬쉬하거나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을 텐데, “원광 유치원이 병설된 교당인 것 같은데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 원불교 중앙총부 교정원이나 감찰원에 고발해서 시비를 가리고 (잘못이 있다면) 해당 교무를 처벌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너무나 명쾌하고도 시원한 답변이 바로 올라왔다. 그 뒤 아무런 댓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질문 자체가 원불교를 헐뜯기 위한 글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명쾌한 답변을 단 교무로 보이는 원불교 교도에게서 청정한 종단을 유지하려는 결연함을 넘어 왠지 범접하기 힘든 자존감마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 한 여성 성직자는 전 세계 53개국을 방문해 소외 계층의 어려운 삶의 현장을 직접 살피고 55개국을 대상으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쓰는 등 경이로운 ‘기적’을 일으켜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1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던 그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2009년 한국판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던 그녀는 2006년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설립했고 1994년부터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에 기숙학교와 병원을 세워 2012년 인도 엠베드카르 국제상(2012)을 받았다.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는 원불교 서타원 박청수 교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돈과 권력 그리고 명성이 있어도 자신의 인격과 인품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모두 헛된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 완성돼야 자아성취, 자아완성이 됩니다.”고 했다. 앞서 포털 사이트에서처럼 원불교 교무들은 ‘인격’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한 각오와 그에 따른 자부심이 있다.
자력갱생을 중요시하는 교무들은 용금이라고 해서 용돈 38만원이 기본이다. 얼마 전 변호사 교무를 배출한 원불교에는 의사 교무, 한의사 교무, PD 교무, 기자 교무 등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게 활동하나 일반 사회인과는 달리 ‘박봉’에 시달린다. 남자 교무의 부인들은 모두 맞벌이를 한다. 교도들이 이런 딱하고 어려운 사정을 알고 따로 돈을 챙겨줘도 전혀 소용없는 일이 된다. 개인적인 헌공이나 희사(시주)를 안 받는 교무들은 받아도 모두 교화에 사용한다. 시주로 받은 모든 돈은 누가 언제 얼마를 냈는지 정확하게 중앙총부 교단에 보고된다. ‘원티스’라는 종합 행정 회계 시스템으로 전 교단이 연결돼 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청빈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에도 40여명이 자살하는 것이 오늘날의 아픈 실정이다. 특정 암보다도 사망률이 높은 이 자살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어떤 전쟁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버리는,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심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그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말 성공이란 무엇인가? 소태산 대종사가 본 ‘세계 대세’에는 우리가 세계정신의 지도국으로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며 ‘어변성룡’(물고기가 변해 용이 될 것이다)이라고 예언했다고 황도국 교구장은 전한다. 성공의 열쇠가 우리 인간의 인격과 인품에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원불교 교무들이 오늘날 우리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쳐 줄 것을 믿을 수 있기에 다행히 아닐 수 없다. 수많은 교무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세계에서의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하도겸 법사는 칼럼을 통해 사회와 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화합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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