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지델른(스위스)=뉴시스】김정환 기자 =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다. 유대인인 목수 요셉과 그의 아내 마리아 사이에서 BC 6년께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로 유대인이어야 할 성모 마리아의 피부가 황색도, 백색도, 아닌 흑색이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검은 성모(블랙 마돈나)'상을 대성당에 모시고 있는 스위스 슈비츠주 아인지델른의 성 베네딕토 대수도원을 찾았다. 이름 그대로 6세기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베네딕토(480~547) 성인의 뜻을 받드는 베네딕토수도회 계열인 이곳은 매년 유럽 각지에서 15만~20만명이 찾는 스위스 최대 순례지다.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성당 안에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제대가 있다.
하나는 보통 성당처럼 맨 안쪽 제대가 있는 자리에 있다. 입구 쪽 경당, 즉 성당 안의 작은 기도실에 제대가 하나 더 있다. 검은 성모상을 모신 곳이다. 얼굴이 흑인처럼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이 수도원에서도 매일 차례에 따라 미사를 드린다. 여느 수도원의 미사와 달리 이곳의 신부와 수사들은 미사가 끝난 뒤 바로 식사를 하러 가거나 일터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두 줄을 이뤄 행진을 시작한다. 신도가 그 뒤를 따른다.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검은 성모의 제대다. 그들은 그곳에서 검은 성모에게 예를 올린다.
검은 성모는 왜 여기에 모셔져 있는 것일까. 흑인 포용 의도인가, 아니면 예수가 흑인이었다는 풍설이 사실인가.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 있다.
이 검은 성모상은 호헨촐레른 백작 집안 출신의 성 마인라트(?~861)가 에첼산 기슭에서 은수 생활을 할 때 취리히의 힐데가르트 수녀의 청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성 당시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검은색이 아니라 황색이었다.
마인라트가 죽은 지 80여년이 흐른 934년 슈트라스부르크의 수도원장을 지낸 에른하르트가 마인라트의 은거지였던 현 위치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모상을 모셨다. (현재 성모상이 있는 대성당은 18세기에 수십년에 걸쳐 건축됐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로 유대인이어야 할 성모 마리아의 피부가 황색도, 백색도, 아닌 흑색이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검은 성모(블랙 마돈나)'상을 대성당에 모시고 있는 스위스 슈비츠주 아인지델른의 성 베네딕토 대수도원을 찾았다. 이름 그대로 6세기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베네딕토(480~547) 성인의 뜻을 받드는 베네딕토수도회 계열인 이곳은 매년 유럽 각지에서 15만~20만명이 찾는 스위스 최대 순례지다.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성당 안에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제대가 있다.
하나는 보통 성당처럼 맨 안쪽 제대가 있는 자리에 있다. 입구 쪽 경당, 즉 성당 안의 작은 기도실에 제대가 하나 더 있다. 검은 성모상을 모신 곳이다. 얼굴이 흑인처럼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이 수도원에서도 매일 차례에 따라 미사를 드린다. 여느 수도원의 미사와 달리 이곳의 신부와 수사들은 미사가 끝난 뒤 바로 식사를 하러 가거나 일터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두 줄을 이뤄 행진을 시작한다. 신도가 그 뒤를 따른다.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검은 성모의 제대다. 그들은 그곳에서 검은 성모에게 예를 올린다.
검은 성모는 왜 여기에 모셔져 있는 것일까. 흑인 포용 의도인가, 아니면 예수가 흑인이었다는 풍설이 사실인가.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 있다.
이 검은 성모상은 호헨촐레른 백작 집안 출신의 성 마인라트(?~861)가 에첼산 기슭에서 은수 생활을 할 때 취리히의 힐데가르트 수녀의 청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성 당시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검은색이 아니라 황색이었다.
마인라트가 죽은 지 80여년이 흐른 934년 슈트라스부르크의 수도원장을 지낸 에른하르트가 마인라트의 은거지였던 현 위치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모상을 모셨다. (현재 성모상이 있는 대성당은 18세기에 수십년에 걸쳐 건축됐다)

순례자들이 신성시하던 이 성모상은 수세기 동안 상 아래 켜놓는 양초의 열기에 그을려 점점 검게 변색됐다. 이어 1798년 프랑스군이 침입해 왔을 때 수도원측은 성모상을 보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피신시켰다. 그곳에서 성모상은 복원 작업을 통해 그을음 제거, 다시 처음의 누런 성모가 됐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성모상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다음 생겼다. 검은 성모에 익숙했던 주민들이 누런 성모에 반발한 것이다. "우리 성모가 아니다", "우리 성모를 돌려다오"라고 외치는 신자들에게 수도원은 결국 굴복했다.
수도원 도서관장 주스티노 판야멘타 수사 신부는 "아인지델른의 주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모상의 얼굴을 검게 칠해야 했다. 그날 이후 검은 성모로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기할 것은 이 성모상의 옷이 굉장히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옷은 모두 신도나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선물한 것으로 선물자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꼴로 갈아입히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옷은 31벌에 달한다.
한편, 검은 성모상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몬세라트 수도원과 프랑스 리옹의 노틀담 대사원에도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성모상은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 보다 늦은 13세기에 조성됐고, 노틀담 대사원의 성모상은 19세기 이 대사원이 건립될 때 모셔졌다. 두 성모상 모두 비슷한 이유로 검은 얼굴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폴란드 체스토바의 야스나 고라 수도원에는 검은 얼굴을 한 마리아와 예수의 그림이 '검은 성모상'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성모상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다음 생겼다. 검은 성모에 익숙했던 주민들이 누런 성모에 반발한 것이다. "우리 성모가 아니다", "우리 성모를 돌려다오"라고 외치는 신자들에게 수도원은 결국 굴복했다.
수도원 도서관장 주스티노 판야멘타 수사 신부는 "아인지델른의 주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모상의 얼굴을 검게 칠해야 했다. 그날 이후 검은 성모로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기할 것은 이 성모상의 옷이 굉장히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옷은 모두 신도나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선물한 것으로 선물자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꼴로 갈아입히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옷은 31벌에 달한다.
한편, 검은 성모상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몬세라트 수도원과 프랑스 리옹의 노틀담 대사원에도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성모상은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 보다 늦은 13세기에 조성됐고, 노틀담 대사원의 성모상은 19세기 이 대사원이 건립될 때 모셔졌다. 두 성모상 모두 비슷한 이유로 검은 얼굴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폴란드 체스토바의 야스나 고라 수도원에는 검은 얼굴을 한 마리아와 예수의 그림이 '검은 성모상'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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