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연대가 중요…음악뿐 아니라 동료 찾는 게 목표"

기사등록 2021/11/07 05:00:00

5년 만에 발매한 정규 3집 호평

[서울=뉴시스] 이랑. 2021.11.07. (사진 = 유어썸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랑. 2021.11.07. (사진 = 유어썸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이랑(35)의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올해 기념비 같은 음반 중 하나다.

음반과 동명의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의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같은 노랫말은 그간 한국 대중음악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가사다. 하지만 가사와 반대되는 경쾌하고 따듯한 멜로디에 "마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후렴구는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음악의 고유한 자율성을 인지하게 만들면서도, 음악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수작이다. 또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라는 가사는 현실에 대한 명확한 발언이자, 노래가 변화를 촉발하는 호소와 연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랑은 일부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에서 받은 '최우수 포크 노래상' 트로피를 즉석으로 경매에 부친 걸로 기억된다. 트로피는 50만원에 판매됐다.

국내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이 음악 시상식을 냉대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직업인으로서 인정되지 않은 흐름에서 50만원을 벌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결국 '한대음'을 존중하는 동시에 수많은 음악인들이 직업적으로 연대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최근 서울 망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랑은 "제겐 연대가 중요해요. 음악뿐만 아니라 동료를 찾는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결국 이랑의 모험은 연대를 위한 일종의 실험이다. 다음은 이랑과 나눈 일문일답.

-명반으로 통하는 정규 2집 '신의 놀이'(2016) 이후 5년 만에 내놓으신 앨범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혁명가'를 만드는 펑크 로커라고 생각하시면서 작업을 했다고요.

"2집 발매 이후 여러 집회에서 제 음악을 사용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시거나,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데 2집 노래들이 가사가 많고, 따라부르기가 어려워요. 3집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집회에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곡이에요. 지금까지는 의도를 가지고 작곡을 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기타, 베이스, 현악기 등 사용된 악기는 담백하지만 극적이고 사운드 역시 진보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베이시스트 이대봉 씨가 프로듀싱을 맡은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밴드를 같이 해서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어요. 평소엔 말이 없는 편인데, 형·누나들을 조련하는 방법을 깨우친 거죠. 하하. 막내라 평소에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달고 리드를 하다보니, 자신감을 갖게 됐고 형·누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한 거죠. 이번 앨범의 또 다른 보람 중 하나가 이대봉 씨의 성장입니다. '소리박물관'이라는 밴드를 하다가 지금은 '큐.큐(Q.Q)'라는 밴드를 하고 있어요. 이번에 첼로 연주자 이혜지 씨 역할도 컸습니다. 제가 기타를 잘 연주하지 못하는데, 멤버들이 다른 소리를 잘 채워줘서 다행이에요."

[서울=뉴시스] 이랑. 2021.11.07. (사진 = 유어썸머 제공)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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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협업하고 연대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거 같아요.

"학교(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들어갈 때도, 같이 채워가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 목표였어요. 전공과 상관 없이 동료들을 만나 제 무기로 삼고자 했죠. 미리 찾지 않으면 나중에 어려워질 거 같아 1, 2학년 때부터 타 전공 수업을 교수님께 허락 받고 들었죠. 전통원에 가서 무용 수업도 듣고요. 실기 수업은 타 전공 학생에게 폐쇄적인데 '전공생처럼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허락을 받아냈어요. 그렇게 학교를 7년 반정도 다녔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기술을 몰라도 소통과 대화만 잘하면, 원하는 어떤 작업도 해낼 수 있어요. 저는 설명만 잘하고 다른 멤버들이 전문적으로 잘해주니까요. 밴드 역시 마찬가지죠."

-아카펠라로 구성한 '대화'도 좋았지만, '잘 듣고 있어요'는 판소리 '수궁가'를 모티브로 삼아 흥미로웠습니다.

"판소리를 좋아했고, 몇년 전부터 배우고 있어요. 같은 구절을 반복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 노래를 이어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바탕이 '수궁가'예요. 근데 판소리엔 어쩔 수 없이 여성 혐오가 묻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여성을 꽃에 비유한다거나 남성을 기다리는 입장으로만 표현하죠. 열녀 캐릭터로 만들거나 성적 대상화도 하죠. 근데 제 선생님이 그런 문제 의식에 공감을 해주시는, 시원시원한 분이세요. 판소리나 민요는 작자미상의 구전으로써 전달이 되잖아요. 일종의 짜깁기도 있고요. '잘 듣고 있어요'도 잘 구전이 되면 한국의 고전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하하. 저도 그렇고 본인이 토끼처럼 살고 있다는 친구들도 많아서 공감으로 오래 오래 구전되면 그리하지 않을까, 큰 그림도 그리고 있죠."

-'그 아무런 길' 마지막엔 러시아어로 '1 2 3 4(Один Два Три Четыре)'를 불러서 독특했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 동성 커플이 있어요. 미디어에 잘 노출이 안 돼 있지만 주변에 동성 커플이 많아요. 그들의 만남을 위해 축가를 불러준 적이 있는데요. 한명이 한국인, 다른 한명은 러시아인이었어요. 한국에선 법적 커플로 인정이 되지는 않지만 둘을 응원해주고 우리끼리 인정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축가를 만들었고 러시아인 친구를 위해 러시아어를 넣었죠. 한국 인디 음악에 러시아어가 들어간 것에 자기가 기여했다며 좋아하더라고요."

-'환란의 세대'라는 곡에서 '환란'은 '근심과 재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정작 가사에는 안 나오는데 이런 제목을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환란'은 성경에서 자주 본 말이에요. 주로 마지막 때를 짐작하는 증표에 대해서 줄줄 읊을 때 많이 나오죠. 지금도 폭력과 기근, 믿을 수 없는 전쟁과 자연 재해가 줄줄이 나오잖아요. 정말 환란의 때에 살고 있는 거죠. '왜 이런 힘든 일들에 시험당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들었죠."

-일본에서도 주목 받고 계신데, '늑대가 나타났다' 일본반 케이스는 현지 실물 지폐를 갈아서 만들었다고요?

[서울=뉴시스] 이랑. 2021.11.07. (사진 = 유어썸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랑. 2021.11.07. (사진 = 유어썸머 제공) [email protected]
"예술인의 노동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큼, 앨범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다고 현지에서 판단하셨어요. 일본에는 실제로 돈을 갈아 만든 종이가 있다고 해서 그걸 수배한 다음 찍었죠. 돈을 내고 망가뜨린 돈과 음반을 사시게 되는 거죠."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는 단편 소설 같은 서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곡 중간에 낭독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이 곡은 시를 먼저 쓰고 만든 곡이에요. 제가 가사를 먼저 쓰는 경우는 전무후무한데요. 일본 문예지로부터 시를 청탁받아서, '시를 어떻게 쓰는 거지'라는 고민을 했죠. 보통 멜로디와 가사를 처음부터 같이 부르면서 정리를 하는 편이거든요. '멜로디 없이 읊으면 시가 되려나'라는 생각을 하고 시를 썼죠. 그런데 '어떤 이름을 가졌던…'은 반대로 시에 멜로디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며 만든 곡이에요. 그러면서 멜로디 없이 읊는 것, 즉 내레이션에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낭독에 흥미가 생긴 거죠. 일본 유명 뮤지션 오리사카 유타가 최근 새 앨범을 내놓았는데, '윤슬'이라는 트랙에도 낭독으로 참여했어요. 곡 제목도 한글로 지었어요. (이랑은 '잘 들립니까. 저는 자주 슬픈 사람이지만 슬프지 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등 한국어로 꽤 긴 낭독을 한다.) 이 작업도 낭독의 맛을 알게 해줬죠."

-인디음악계에서 정규 음반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싱글이나 EP를 내는 흐름에서 정규를 내는 것이 '어떤 메리트가 있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정규 앨범을 꼭 내고 싶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더라도 피지컬 앨범과 정규 앨범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들어주셔서 감사하죠."

-사는 게 힘들어 사라져야겠다는 생각도 하셨다고요. 그 가운에 음반을 듣고 연대를 확인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좀 더 긍정적으로 사시게 되셨나요?

"그럼에도 긍정적으로는 못 사는 거 같아요. 하하. 그래도 (많은 분들과) 같이 있을 때는 참 즐겁죠. '하하 호호' 즐겁고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라이브를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이랑은 12월 3일~5일 홍대 벨로주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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