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드, 백야의 눈부심 뒤에 머문 어둠…심연을 통과해 길어 올린 '극야'

기사등록 2026/10/21 11: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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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년 만에 첫 정규 음반 낸 밴드 터치드 인터뷰

"어둠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보다 온전히 껴안는 법 배웠죠"

무대 위 카타르시스 이면의 결핍과 소외 고백

서로의 상처를 묶어낸 네 사람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10.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10.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오랜 통념은, 인공의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본 자만이 체감하는 물리적 통증이다.

2021년 코로나19라는 긴 침묵의 터널 한가운데서 출발해 엠넷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우승, 올림픽홀 7000석 매진, 대형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그리고 보컬 윤민의 '복면가왕' 9연속 가왕이라는 눈부신 궤적을 그려온 밴드 '터치드(TOUCHED)'. 그러나 상승 곡선의 정점에서, 이들은 뜻밖에도 해가 뜨지 않는 자리를 향해 기꺼이 침잠했다. 데뷔 6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극야(極夜)'는, 환호와 카타르시스의 소음이 걷힌 뒤 비로소 마주한 내면의 고요이자 심연의 고백록이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엠피엠지 뮤직(MPMG MUSIC) 사옥에서 터치드 네 멤버 윤민(보컬·기타), 김승빈(리더·드럼), 존비킴(베이스), 채도현(키보드)의 표정은 역설적이게도 홀가분해 보였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남김없이 쥐어짜 내던 시절의 팽팽한 긴장감 대신, 스스로의 어둠을 온전히 인정해버린 자들에게서 배어 나오는 담담함이 감돌았다.

무대 위 터치드는 언제나 파괴적인 생명력의 총아였다. 하지만 그 폭발력의 이면에서 프런트 퍼슨 윤민은 서서히 마모되고 있었다. "남들이 외로움을 1 정도 느낄 때 나는 10 정도로 느끼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은 윤민은, 무대 위에서 뿜어내던 찬란한 에너지와 무대 아래 홀로 감내해야 했던 지독한 우울 사이의 낙차에 짓눌렸다.

"무대에서 '사랑해요', '멋있어요' 환호받다가 내려오면 막상 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닌데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많이 불행했어요. 전날 밤새 울다가 다음 날 무대에 올라 '여러분 행복하시죠! 부숴볼게요!' 외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한계가 왔죠. 이렇게는 더 이상 음악을 오래 하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당장은 어떻게든 버텨가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터치드가 안에서부터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음악적으로 어떻게든 이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죠."(윤민)

밴드는 타인의 슬픔을 대리하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묶어내는(band) 동지다. 무대 맨 앞에서 모든 시선을 감당하던 동료가 질식해가고 있을 때, 멤버들은 주저 없이 발걸음을 늦췄다. 더 강력한 히트곡을 바라는 시장의 관성과 회사의 기대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밴드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았다.

채도현은 "무대 맨 앞 프런트에서 가장 고생하는 멤버가 자기 안의 양면성 때문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며 "물을 오랫동안 안 마시거나 화장실을 못 가면 탈이 나듯, 이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감정이니 다 같이 꺼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돌아봤다.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10.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10.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네 멤버는 외부 시퀀서나 세션의 화려한 덧칠을 걷어내고, 오직 네 사람의 호흡과 악기만으로 내면의 질감을 벼렸다.

김승빈은 "외부의 화려한 사운드나 세션의 도움을 받기보다, 최대한 저희 네 멤버의 소리가 돋보이도록 맞췄다"면서 "12곡의 사운드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관통하는 가사의 결은 결국 우리 내면의 우울과 슬픔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 있다"고 짚었다.

돌아보면 터치드의 지난 6년은 결코 매끄러운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2020년 5월 결성돼 2021년 초 첫 싱글 '새벽별'을 냈을 때, 세상은 유례없는 감염병의 공포에 얼어붙어 있었다. 홍대 앞 클럽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기껏 오른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은 마스크 뒤로 함성 대신 박수만을 보내야 했던 시절이었다. 70명이 모인 소극장에서 출발한 이들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밴드 최초 대상을 시작으로,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의 왕좌를 거쳐, 대형 페스티벌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성공의 과실이 달콤할수록 대중의 기대라는 하중은 무거워졌다.

존비킴은 "경연과 방송을 거치며 음악적 색깔이 경연에 유리한 쪽으로 흘렀고 기대치도 커졌다"면서 "그 기대하는 방향으로만 가다 보니, 정작 속에 담아두고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많았어요. 첫 정규를 통해 비로소 그 말들을 풀어내면서 팀의 균형이 비로소 잘 맞아떨어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극야'라는 표제는 패배주의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윤리적 전회(轉回)다. 우리는 흔히 슬픔과 번아웃을 신속히 박멸하고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전하는 지구를 거스르려는 오만과 같다.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09.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예전에는 슬럼프나 어둠이 오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만 발버둥 쳤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출구가 보이지 않아 더 깊은 공포에 빠졌죠. 지구에 극야가 끝나면 백야가 오고, 백야가 지나면 다시 극야가 오듯, 인생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어둠에서 억지로 도망치기보다 언젠가는 지나갈 것임을, 그리고 다시 찾아오더라도 그것 또한 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 이번 앨범은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아니라,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습니다."(윤민)

빛과 어둠이 서로를 증명하며 공존하듯, 환희의 가치는 오직 슬픔의 농도를 정직하게 통과해 본 자에게만 선명해진다.

더블 타이틀곡 '폴른 엔젤(Fallen Angel)'과 '이 별'은 이러한 성찰의 두 축이다.

김승빈은 자신이 작사한 '폴른 엔젤'에 대해 "처음 태어났을 때는 숨만 쉬고 웃기만 해도 모두가 기뻐해 주던 축복받은 존재였잖아요. 그런데 자라면서 기대감이 생기고 세상의 때가 묻으며 어쩔 수 없는 실수와 잘못들을 하게 된다"며 "그 과정이 마치 천사에서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데서 오는 울분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윤민과 채도현이 호흡을 맞춘 '이 별'은 한국어 '안녕'이라는 단어의 비의(悲意)를 파고든다.

윤민은 "신기하게도 우리말은 만날 때도 '안녕'이고 헤어질 때도 '안녕'이다. 함께 나눈 시간과 추억은 당사자들만 아는데, 상대가 떠나고 난 뒤 그 기억을 나 혼자만 품고 추억해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했다"며 "저 하늘의 별에 우리의 추억을 묻고, 그 별의 이름을 '우리의 안녕'이라 지어주자는 마음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서울=뉴시스] 터치드. (사진 = 엠피엠지 뮤직 제공) 2026.10.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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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은 특히 프런트 퍼슨으로서 짊어졌던 무게와 자책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과거 과도한 일정 속에서 성대 결절을 겪고 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진정 프로의 세계에 발을 디뎠음을 깨달은 것은 기교의 숙련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감'과 마주했을 때였다고 했다.

"프로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해서 제가 대단한 프로가 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너무 프로답지 못한데 이 세계에 있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비로소 실감했죠. 복면가왕에서 이승철 선배님의 '아마추어'를 불렀던 것처럼, 저는 앞으로도 프로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윤민)

첫 정규 음반에 대한 멤버들의 자평 역시 단단했다.

채도현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결과물에 100%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피카소라고 과연 만족했을까 싶다"면서 "그럼에도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은 건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다'는 사실 자체예요. 대중의 시선에서 '너희 왜 이런 음악을 해?'라는 반응이 있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 넷 모두가 하고 싶었던 솔직한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의 모든 정직한 치유는 실상 가장 낮은 밑바닥의 고백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터치드의 음악은 생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누군가를 붙잡아 살려냈다. "터치드가 나를 살렸다"는 팬들의 고백은, 이들이 굳이 찬란한 정오의 태양을 등지고 춥고 어두운 '극야'의 심연으로 내려가야 했던 가장 명백한 이유일 것이다.

백야의 눈부심에 현혹되지 않고, 각자의 캄캄한 밤을 견디고 있는 이들을 향해 묵묵히 손을 뻗는 밴드. 터치드는 비로소 긴 밤의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가장 온전한 이름을 찾아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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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드, 백야의 눈부심 뒤에 머문 어둠…심연을 통과해 길어 올린 '극야'

기사등록 2026/10/21 11:06:39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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