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초 걸린 일에 16시간 청구 못해"…AI가 흔드는 로펌 '시간당 청구제'

기사등록 2026/10/13 10: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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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아일랜드 법률 종사자 89% AI 사용…계약서 검토·법률 조사 자동화

딜로이트 “시간당 청구 업무 비중 72%→44% 전망”…신입 변호사 교육 방식도 변화

[서울=뉴시스] 영국 대법원 전경. (사진 출처 : 마이런던닷컴) 2022.07.07.
[서울=뉴시스] 영국 대법원 전경. (사진 출처 : 마이런던닷컴) 2022.07.07.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인공지능(AI)이 영국과 아일랜드 법률업계의 업무 방식뿐 아니라 수익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계약서 검토와 법률 조사에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면서 변호사가 일한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시간당 청구제’도 압박받기 시작했다.

10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법률 소프트웨어업체 클리오가 발표한 ‘2026 영국·아일랜드 법률 인사이트 보고서’에서 법률 종사자의 89%가 AI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AI 이용 응답자 가운데 78%는 인력을 늘리지 않고도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했고, 71%는 AI가 서류 작성과 법률 조사, 행정업무 등을 맡으면서 사건당 비용이 줄었다고 답했다.

런던과 두바이에 기반을 둔 법률금융회사 렉솔런트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닉 롤스-데이비스는 CNBC에 "16초 걸리는 일에 16시간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AI로 업무시간이 짧아지면 실제 일한 시간에 따라 고객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로펌의 기존 수익구조도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당 청구제는 변호사가 특정 업무에 투입한 시간에 시간당 요금을 곱해 보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AI로 몇 시간 걸리던 작업을 수분 만에 끝낸다면 로펌은 같은 업무로 예전만큼의 시간을 청구하기 어려워진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기존 방식의 수입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영국 대형 로펌들은 이미 AI를 실무에 투입하고 있다. A&O 셔먼은 법률 AI 기업 하비와 함께 대출계약서 검토와 규제 관련 서류 분석 등을 맡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했다. 회사 측은 이전에 몇 시간 걸리던 일부 업무를 수분 만에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로펌 슬로터 앤드 메이도 올해 법률 조사와 문서 분석 등 모든 업무 분야에 하비를 도입했다.

업무시간 단축은 로펌의 실적 관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클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광범위하게 도입한 로펌 가운데 약 5곳 중 1곳은 기존의 청구 가능 업무시간 목표를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변화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딜로이트가 세계 법률업계 고위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시간 단위로 비용을 청구하는 업무의 비중이 현재 72%에서 향후 2~3년 안에 44%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시간당 청구제가 당장 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영국 티사이드대에서 미래 업무 연구를 이끄는 만수르 수므로는 CNBC에 시간당 청구제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AI가 업무시간을 줄이면서 기존 청구 방식을 정당화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가장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분야는 반복 업무다. 롤스-데이비스 CEO는 정형화된 문서에 필요한 내용을 입력하는 일은 자동화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반면 복잡한 법률 문제에서는 AI의 답변을 해석하고 의뢰인에게 적절한 대응 전략을 선택하는 등 사람의 판단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환각’도 변호사가 결과를 직접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롤스-데이비스 CEO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가 변호사가 제재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지적했다.

AI 확산은 로펌의 수익구조뿐 아니라 신입 변호사를 교육하는 방식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초년 변호사들은 수백 건의 문서를 검토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가려내는 법을 익혔다.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며 문서 작성 능력을 기르고, 여러 판례를 조사하면서 법률적 추론 능력도 쌓았다.

그러나 AI가 이런 반복 업무를 대신하면 신입 변호사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로펌은 AI가 처리하는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고도 법률적 판단과 분석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 방식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로펌이 중시하는 능력도 달라지고 있다. A&O 셔먼은 법률 지식 외에 '호기심과 기업가 정신'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베네츠 책임자는 AI 확산으로 법률 엔지니어링과 AI 활용 등 과거에는 거의 없었던 새로운 직무와 진로도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네츠 책임자는 "뛰어난 변호사를 길러야 할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이들이 미래의 파트너이자 전문가"라고 말했다. AI 도입으로 업무가 달라지더라도 전문 변호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AI가 변호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할 가능성도 있다. 클리오의 조슈아 레넌 상주 변호사는 AI가 확산하면서 일부 변호사들이 업무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변호사들은 자신의 하루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며 "사람들은 이런 도구가 일을 더 낫게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므로는 앞으로 법률업계에서 판단력의 가치가 훨씬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변호사가 AI의 결과를 검토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법률 분야의 지식을 결합해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미래는 한 좁은 분야를 가장 많이 아는 변호사보다 여러 분야를 연결해 복잡한 고객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변호사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사진은 인공지능(AI) 두뇌 컨셉.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2026.10.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사진은 인공지능(AI) 두뇌 컨셉.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2026.10.1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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