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 '키치' 프로듀서 구찌 칼리엔테 "K-팝, 다양한 취향 길러주는 놀이터"

기사등록 2026/09/23 05:00:00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노르웨이 출신 작곡가 겸 프로듀서 인터뷰

국내 아티스트들과 작업 위해 내한

키키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 등도 협업

"아티스트가 꺼내놓지 않은 새로운 면모 발견 중점"

[서울=뉴시스] 구찌 칼리엔테. (사진 = 엠라이트(MLITE) 제공) 2026.09.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찌 칼리엔테. (사진 = 엠라이트(MLITE) 제공) 2026.09.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창작의 세계에서 자아(Ego)를 증명하려는 욕망만큼 끈질긴 유혹은 없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보편의 언어가 만인의 심장에 닿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창작자가 자신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기꺼이 허물고 물러설 때 찾아온다.

명품 브랜드의 당돌함과 스페인어로 '뜨겁다'는 뜻을 결합한 활동명, 그리고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을 떠올리게 하는 에너지 뒤편에서, 노르웨이 출신 프로듀서 겸 작곡가 구찌 칼리엔테(Gucci Caliente·본명 에밀리 하르바크)는 바로 그 비움과 확장의 미학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오슬로의 혹독한 냉기와 기나긴 어둠, 바이킹 신화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북유럽 특유의 멜랑콜리는 그의 손을 거치며 서울의 숨 가쁜 팝 아키텍처와 경계 없이 충돌한다. 그룹 '아이브(IVE)'의 '키치(Kitsch)'와 '레벨 하트(REBEL HEART)', 가수 츄(CHUU)의 '하울(Howl)'에서 증명했듯, 그는 하이퍼팝과 일렉트로닉, 힙합의 파편들을 장르의 틀에 가두지 않고 콜라주처럼 이어 붙인다. 시각적 서사와 다인원 퍼포먼스라는 K-팝의 입체적 맥락 위로 북유럽의 아련한 선율을 포개어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이질적인 질감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생생한 긴장감을 동력으로 삼는다.

이 과감한 소리의 궤적을 관통하는 중심축은 거장 토르 에릭 헤르만센에게 물려받은 '방 안에서 가장 큰 아이디어를 택하라'는 명제다. 그것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Door)을 마주했을 때 그것의 색상과 재질을 단순히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한 시절을 매듭짓고 다음 방으로 건너가는 통과의례의 정동(情動)을 건져 올리는 태도. 창작의 궁극은 내 이름을 새겨 넣는 집착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을 즉각적으로 흔드는 가장 거대한 감정 앞에 나 자신의 에고를 겸허히 내려놓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성찰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무구한 확신과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실존적 불안 사이에서, 구찌 칼리엔테는 그 양극의 감정을 창작의 연료로 삼아 팽팽한 균형을 유지한다. 음악 산업 내 여성 창작자의 한계에 균열을 내며 연대의 물줄기를 트는 동시에, 작업실 안에서는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며 기타를 메고 무대를 꿈꾸던 '스쿨 오브 락'의 순수한 마법을 여전히 놓지 않는다. 소리가 완성되는 순간이란 완벽을 강박적으로 매만질 때가 아니라, 미련 없이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내 노래 스스로 삶을 살아가게 할 때라는 이 뜨거운 노르웨이 프로듀서의 궤적은, 결국 음악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7월 공식 설립된 음악 퍼블리싱 및 A&R 기업 엠라이트(MLITE)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은 그는 최근 내한해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다. 다음은 지난 21일 서울 충무로에서 마주한 구찌 칼리엔테와 나눈 일문일답. 그는 인터뷰 직전 한식 뷔페를 맛있게 먹고 왔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노르웨이 명문 음악학교 림피(LIMPI) 출신으로 스타게이트(Stargate)의 토르 에릭 헤르만센(Tor Erik Hermansen)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의 멘토링을 거치셨습니다. 당시에 배웠던 것 중 작업할 때 지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원칙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토르 에릭에게서 가장 깊게 와닿았던 점은 작업실 안에 있는 가장 큰 아이디어를 좇아야 하며, 그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가 저보다 더 크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때 정말 기쁩니다. 보통 곡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아이디어나 콘셉트, 혹은 기초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아주 강렬하게 느끼거나 매우 강력한 감정을 느낀다면, 단순히 멋있기만 한 것보다는 그것을 따르는 편이 낫습니다. 가장 큰 것을 따르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을 가져옵니다.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돌리 파튼 원곡으로 휘트니 휴스턴이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나 '토털 이클립스 오브 더 하트(Total Eclipse of the Heart)'(보니 타일러 곡)처럼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을 보면 크고 거대한 감정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런 감정을 따르는 것이 대개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ego)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아이디어이든, 당신의 아이디어이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최고의 곡을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건 꼭 내게서 나와야 해'라고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곡을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뿐입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방 안에서 가장 큰 아이디어'라고 느끼는 기준이나 조건이 있나요?

"즉각적으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촉발한다면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느끼게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아주 틈새적(niche)일 수도 있고, 틈새적인 소재에 대해서도 큰 아이디어를 쓸 수 있지만, 가장 큰 아이디어란 모두가 즉시 반응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곡 제목을 '더 도어(The Door)'라고 짓고 문이 갈색이라거나 바로 저기에 서 있다는 식의 가사를 쓴다면 그건 큰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목이 '더 도어'이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지나가는 것, 그 문을 닫았던 마지막 순간, 혹은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건너가는 것을 탐구한다면, 사물을 단순히 묘사하는 대신 그 사물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 문이 삶에서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는 점이죠. 그런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즉시 '예전 아파트 문을 마지막으로 닫았던 때가 생각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아파트를 떠났을 때가 헤어지기 전 여자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었어'라고 덧붙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공감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거대해지는 것입니다. 항상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기쁨을 주며, 마법을 일으키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잭 블랙(Jack Black)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인생에서 그 챕터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입니다!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았는데, 아이들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고 멋졌습니다. 스스로 '나도 저걸 하고 싶다. 저게 바로 내가 될 모습이야. 무대에 서서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라고 다짐했죠. 잭 블랙은 정말 멋졌고, 저는 그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역대 최고의 영화이자 절대적인 명작입니다. 비하인드 영상과 보너스 자료, 코멘터리까지 합치면 아마 100번도 넘게 봤을 겁니다."

-'스쿨 오브 락'의 어떤 점이 특히 그렇게 깊은 울림을 줬나요?

"그것은 궁극의 꿈이었습니다. 임시 교사가 오고, 밴드를 결성하고, 학교에서의 하루 전체가 음악을 연주하는 일로 채워지는 것 말이죠. 그게 바로 제 꿈이었습니다. 그저 밴드를 하는 것이요. 학교에서의 하루가 오롯이 밴드 연습과 작곡, 기타 연주,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동화 같았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밴드를 하는 상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잭 블랙을 선생님으로 둔다는 것은 정말 최고의 판타지였죠. 아주 웃기고, 멋지고, 재능이 넘치니까요."

-잭 블랙이 속한 밴드 '테네이셔스 디(Tenacious D)'의 내한 라이브를 봤을 때 코믹한 이미지 이면에 훌륭한 작곡과 멜로디를 갖춘 경이로운 뮤지션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특유의 전염성 강하고 진정성 있는 에너지가 구찌 씨의 음악에서도 똑같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받아본 것 중 최고의 칭찬입니다. 잭 블랙과 제가 한 문장에 함께 언급되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들은 훌륭한 멜로디를 지닌 진정한 명뮤지션들입니다. '스쿨 오브 락'이 얼마나 좋았는지 다시 떠올리니 지금 당장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서울=뉴시스] 아이브 '키치' 이미지. 2026.09.23. (사진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아이브 '키치' 이미지. 2026.09.23. (사진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학창 시절 습작에서 출발한 테이트 맥레이(Tate McRae)와 알리 게이티(Ali Gatie)의 '라이 투 미(Lie to Me_' 같은 곡들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당시 학창 시절의 작업물이 이렇게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하셨나요?

"림피는 우리가 아주 큰 꿈을 꾸도록 길러줬습니다. 저는 정말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지금 다시 그 마음가짐을 되찾아가는 중입니다. 림피에서의 기조는 '충분히 좋은 곡을 쓴다면 두아 리파(Dua Lipa)나 다른 톱 아티스트에게 곡을 전달할 수 있고, 단 한 곡의 훌륭한 노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르 에릭을 비롯해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와 송라이터들에게 멘토링을 받다 보니,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됐습니다. 지금 아는 것들을 바탕으로 되돌아보면, 그 곡이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될 거라 생각했던 건 무척 순진했고 어찌 보면 망상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 커리어에 기념비적인 곡이 됐죠. 친구 소필라우드(Sofiloud)와 제가 이 곡이 테이트 맥레이와 알리 게이티에게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희는 돈이 없어서 아파트 방 하나에서 침대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방방 뛰며 울었고 함께 축하했습니다. 곡을 만든 첫날부터 워낙 확신이 있었기에, 그녀의 고향 로포텐(Lofoten)에서 데모를 들으며 스냅챗에 올렸던 영상도 아직 있습니다. '소필라우드 - 라이 투 미, 명성을 얻기 전, 그래미를 받기 전,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캡션과 함께요. 순진했지만 그 믿음이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런 두려움 없는 자신감과 태도가 K-팝 신에 발을 들이는 데에도 디딤돌이 됐나요?

"맞습니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그 '망상'은 또 다른 감정, 즉 충분히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뒤얽혀 있습니다. 두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죠. '난 최고가 될 거야'라는 생각과 '난 최악이야'라는 생각을 동시에 안고 가는 것입니다. 충분히 훌륭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만들고 실제로 최고가 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 역학 관계는 K-팝뿐만 아니라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커리어 전체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습니다. 분명 지금의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요인입니다."

-펠리시아(Felicia)의 '마이 시스템(My System)' 같은 곡은 뚜렷한 스칸디나비아적 정체성과 함께 멜로디 그랑프리(Melodi Grand Prix)를 통한 유럽 전역의 대중성을 균형 있게 아우릅니다. 그런 트랙을 프로듀싱할 때 균형을 잡기 위해 어떤 사운드적 요소에 가장 신경을 쓰시나요?

"작가들은 저마다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작업실에 모이는데, 거기에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국가적·문화적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전역은 역사와 문화적 공통점을 깊이 공유하고 있어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함께 방에 들어서면 모두가 각자의 강점과 정체성을 꺼내놓게 됩니다. '마이 시스템'의 경우 곡의 핵심 정체성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마이 시스템'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구축하면서 전자적이고 컴퓨터 같은 느낌을 주되, 사람들이 춤추거나 울거나 분노할 수 있는 직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했습니다. 프로덕션과 가사 모두에서 거대한 감정을 겨냥하며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이것이 곡에 기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걷어내자.' 공동 프로듀싱을 맡은 오둔 아그나르 굴브란센(Audun Agnar Guldbrandsen)에게도 큰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프로덕션 면에서 그의 레퍼런스가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무엇으로 열광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탁월합니다. 예를 들어 오둔은 새를 무척 좋아해서 드롭(drop) 구간에 독수리 울음소리를 넣었는데, 바로 그 소리가 짜릿한 흥분을 만들어냈습니다."

-북유럽 음악에 대해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리자면,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헤비메탈과 하드록이 이토록 두드러지고 문화적인 강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정말 그렇습니다. 노르웨이에는 스캄방크트(Skambankt) 같은 대형 밴드들이 있습니다. 그 상당 부분은 특유의 스칸디나비아적 멜랑콜리에서 기인합니다. 노르웨이는 매우 어둡고 춥고 거칠 수 있으며, 음악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환경을 반영합니다. 바이킹의 역사, 북유럽 신화, 오딘, 토르, 로키 같은 신들, 그리고 고대 노르드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죠. 툰드라와 혹독한 기후, 기나긴 어둠이라는 북유럽의 실제 삶의 경험이 전통적인 자장가 멜로디와 대비되면서 하나의 사운드로 응축돼 표현되는 것입니다."

-노르딕 송스(Nordic Songs)를 통해 여성 프로듀서와 작가들을 위한 송캠프를 직접 조직하셨습니다. 전문 프로듀서 중 여성 비율이 적은 현실에서, 어떤 문제의식과 절박함에서 출발하셨나요?

"무엇보다 크리스티네 마리(Kristine Marie)와 베가르드 후룸(Vegard Hurum)의 공이 가장 큽니다. 세상에서 보고 싶었던 변화를 스스로 실천해 낸 두 사람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들이 캠프를 이끄는 핵심 원동력으로서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고, 저는 다행히 거기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여성들을 위한 업계 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가 부여하는 한계와 기대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됩니다. 저는 항상 그것에 화가 났고, 평생 동안 그 편견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음악 프로덕션 분야에서 눈에 띄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다른 여성들이 전업 프로듀서로 발돋움하도록 돕는 일이 제게는 늘 중요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에게 이는 자신감의 문제입니다. 작업실에서 가장 실력 있는 프로듀서이면서도 스스로를 프로듀서라 부르기를 주저하곤 하니까요. 저는 제 자신에게 한계를 두고 싶지 않으며, 다른 여성들도 한계에 부딪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수치를 조금이나마 끌어올리는 데 일조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한 캠프와 같은 시도들 이후, 여성 프로듀서 비율 면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분명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르딕 송스 캠프는 해외 작가와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찰리 매클레인(Charlie McClean)의 꾸준한 활동처럼 전 세계 여성들을 결속시키는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다의 모든 물방울이 제 역할을 하듯, 집단적인 인식이 변화의 바늘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물줄기들이 점차 모여 거대한 강물이 돼 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흐름은 실재합니다."

-K-팝 걸그룹들이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활발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무대 뒤 여성 프로듀서의 비율은 여전히 높지 않습니다. 서구 팝과 K-팝을 모두 경험해 본 입장에서 이 신에 대해 느끼신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 세계적인 여성 프로듀서 수치가 워낙 낮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 왔을 때 뛰어난 실력과 음악 테크놀로지 배경을 갖춘 수많은 한국 여성 프로듀서들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업계 내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보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서구권의 경우 많은 여성 프로듀서들이 주로 자신의 아티스트 프로젝트 위주로 프로듀싱을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형 아이돌 그룹의 곡을 쓰고 세션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여성들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작업한 첫날부터 저는 어떤 의문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만을 보아줬죠. 아이러니하게도 스칸디나비아에서 제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더 많이 받았던 반면, 한국에서는 성별 때문에 의심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온전한 지지와 신뢰만을 경험했습니다."
[서울=뉴시스] 구찌 칼리엔테. (사진 = 엠라이트(MLITE) 제공) 2026.09.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찌 칼리엔테. (사진 = 엠라이트(MLITE) 제공) 2026.09.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하이퍼팝, 일렉트로닉, 힙합 등 장르적 경계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넘나드는 작업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소리를 조립해 나가는 본인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결국 레퍼런스, 즉 무엇을 듣고 무엇에 영감을 얻는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방대한 스펙트럼의 장르를 흡수했습니다. K-팝 작업은 제 시야를 완전히 넓혀줬는데, 말 그대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일한 질문은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가'뿐입니다. K-팝은 다양한 취향을 길러주는 한계 없는 놀이터와 같습니다. 협업 세션에서는 작업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다양한 레퍼런스를 서로 흡수하기도 합니다. 작가진과 그룹, 팬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작 시스템을 아우르는 K-팝 산업 전체는 새롭고 신선한 것을 원하는 집단적인 열망 위에서 작동합니다. 시작부터 캔버스가 아주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 수 있습니다."

-한국 송캠프의 집단 창작 시스템은 서구의 작업 방식과 어떻게 다르며, K-팝의 협업 시스템이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요?

"K-팝에서는 작곡이 시각적인 연출 및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룹의 비주얼 콘셉트를 함께 고려하며 곡을 씁니다. 그룹 멤버가 다섯 명이나 일곱 명이라면, 각자의 보컬적 강점과 음역대, 음색을 살려주기 위해 트랙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댄스 브레이크나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표현할 공간을 어디에 마련할 것인가? 단순히 오디오 파일 하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퍼포먼스, 비주얼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완전하고 입체적인 콘셉트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북유럽 작곡가와 K-팝의 협업은 S.E.S.가 핀란드 작곡진과 함께한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나 노르웨이의 디자인뮤직(Dsign Music) 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유럽의 송라이팅 감성과 K-팝이 이토록 뛰어난 음악적 케미스트리를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K-팝은 본질적으로 북유럽 멜로디 감성이 들어설 구조적 여백을 마련해 줍니다. 한국 창작자들은 해외 음악 문화의 장점을 흡수해 매끄럽게 결합하는 데 대단히 능숙합니다. 그 이상으로, 그 힘은 예술적 병치에 있습니다. 미니멀한 트랙 위에 크고 극적인 테마를 얹거나, 공격적인 베이스라인에 부드럽고 말하듯 읊조리는 보컬을 결합하는 등의 창의적인 긴장감은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북유럽의 송라이팅은 자장가 같은 멜랑콜리한 선율과 아련한 향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특유의 북유럽 정서가 K-팝의 에너지 넘치고 역동적인 프로덕션 위에 얹어질 때, 강렬한 대비와 강력한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K-팝의 제작 규모가 거대 자본과 시스템 중심으로 점차 대형화되는 반면, 본인만의 독립적인 컬렉티브를 결성해 활동해 오셨습니다. 거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오렌지 빌라 컬렉티브(Orange Villa Collective)로 출발했던 경험은 근간이 됐습니다. 우리만의 방식대로 음악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경험, 용기를 줬고, 거대한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핵심 정체성을 심어줬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거대한 제작 시스템을 경험하는 것도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지만, 독립적으로 시작한 덕분에 우리 힘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렌지 빌라 활동이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고 각자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진정성,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 근본적이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엠라이트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으며, 이번 한국 방문의 인상은 어떠신가요?

"첫 인연은 아이브의 '키치(Kitsch)'라는 곡에서 시작됐습니다. 지인을 통해 피칭된 후, 엠라이트의 케빈(Kevin)과 직접 연락이 되었고, 그 이후부터 꼭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데모를 보냈습니다. 케빈은 제가 전업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결심한 바로 그날 작업했던 제 인생 첫 프로듀싱 곡까지 연결해 줬는데 그 곡이 바로 츄의 '하울(Howl)'이었습니다. 당시 그 곡은 제가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였지만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곡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을 보며 이들이 얼마나 뛰어난 팀인지 알 수 있었죠. 이후 그들의 송캠프에 참여하면서 아이브의 '핫 커피(Hot coffee)', '파이어워크스(Fireworks)', '레벨 하트(Rebel Heart)', 키키의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나 어떡해)' 같은 곡들을 작업하게 됐습니다. 수년간 신뢰와 소통을 쌓아온 끝에 이번에 공식적으로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된 엠라이트와 함께하게 돼 무척 설렙니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국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계십니다. 미발매 작업물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새롭게 탐색 중인 사운드 텍스처나 방향성에 대해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목표는 늘 진정으로 신선한 것을 가져오는 것이며, 특히 아티스트나 그룹이 한 번도 탐색해보지 않은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저는 경직되고 정형화된 계획을 미리 짜서 세션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운드는 작업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듣고, 아티스트가 아직 꺼내놓지 않은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도록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곡이 '완벽'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구찌 칼리엔테(Gucci Caliente)'라는 활동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곡이 언제 완전히 끝났다거나 완벽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그냥 놓아줘야 합니다. 편곡을 끝없이 수정할 수도 있고 결정을 되짚으며 망설일 수도 있으니까요. 곡이 세상에 나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놓아주는 데 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만 창작 세션 안에서 완벽이란 완전히 몰입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아이디어를 하나 연주하면 모두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찌릿한 전율이 찾아오는 순간이죠. 그 느낌은 순수한 희열이며,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구찌 칼리엔테라는 이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생각나는 가장 멋진 단어들을 전부 적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록에 '구찌(Gucci)'(명품 브랜드)가 있었고 '칼리엔테(Caliente)'(스페인어로 '뜨거운'이라는 뜻)도 있었죠. 두 단어를 나란히 봤을 때 '내가 바로 구찌 칼리엔테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었지만, 모두가 저를 구찌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저 역시 그 이름에 동화되면서 완전히 굳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제 본명인 에밀리(Emilie)를 부르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내와 어릴 적 친구 몇 명을 빼고는 모두가 저를 구찌라고 부릅니다. 지금 누군가가 저를 에밀리라고 부르면 바로 '왜 그래? 우리 친구인 줄 알았는데!'라는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하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아이브 '키치' 프로듀서 구찌 칼리엔테 "K-팝, 다양한 취향 길러주는 놀이터"

기사등록 2026/09/23 05:00:00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