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은 원래 병영성"…호국·애민 정신 강조
태종·충녕대군 ‘강무’ 서사, 역사 축제로 재탄생
총 149개 콘텐츠…스마트폰 호패·역사 다이닝까지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 의 ‘드론 라이팅 쇼’ 중 ‘태종의 강무 행렬’. 예상 모습 (사진=서산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조인서 인턴 기자 = 소슬한 바람이 성벽을 훑고 지나가는 계절, 올해도 서산 해미읍성에서 가을이 깊어진다.
6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읍성은 더는 축제의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올가을 현재와 과거를 잇는 ‘포털’이 된다.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2026년 ‘한국인’에서 1421년 ‘조선 백성’으로 탈바꿈하고, 첨단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은 ‘호패’로 바뀐다.
낮에는 1416년으로 시간이 더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제3대 태종(1367~1422)과 그의 셋째 아들이자 훗날 제4대 세종이 되는 스무 살 충녕대군(1397~1450)이 군사들과 성 안팎을 누빈다.
당시 충녕대군은 왕세자가 아니었다. 맏형 양녕대군(1394~1462)을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는 것은 2년 뒤인 1418년 6월의 일이다.
어둠이 내리면 드론 1000대가 읍성 위 하늘에 600여 년 전 해미의 시간을 펼쳐놓는다.
충남 서산시가 주최하고 서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가 10월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해미읍성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로컬100’(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됐고, 2024~2025년 충남 ‘일품축제’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해 주제는 ‘해미 유니버스 1421, 시간의 문이 열리다’(HAEMI UNIVERSE 1421)다.
지난해 축제가 ‘지혜’를 키워드로 장인들의 전통 기술, 가족 콘텐츠, 미디어 아트를 한데 펼쳤다면 올해는 해미읍성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부터 파고든다.
태종의 강무(講武), 충녕대군과의 동행, 충청 여러 고을이 힘을 보탠 축성, 1421년 완공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고 관람객을 그 안그냐그으로 끌어들인다.

지난해 ‘제22회 서산해미읍성축제’에서 재현된 조선 제3대 태종의 강무 현장. (사진=서산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태종이 지킨 나라, 세종이 꿈꾼 나라
당시 태종은 왜구 방비와 군사 훈련을 위해 충청도로 강무를 떠났다. 사냥을 겸한 대규모 군사 훈련이었다.
충녕대군도 부왕을 따랐다.
태종은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한 뒤 해미 일대를 둘러보고, 왜구를 막기 위한 충청병영을 옮겨올 곳으로 이곳을 택했다.
이듬해인 1417년(태종 17년) 성을 쌓기 시작해 1421년(세종 3년) 완공했다. 제9대 성종(1457~1494) 재위기인 1491년(성종 22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쳤다.
해미읍성은 처음부터 일반 고을을 다스리기 위한 읍성이 아니었다.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옮겨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병영성이었다.
충청병영이 17세기 중반 청주로 옮겨갈 때까지 200년 넘게 충청도 군사를 지휘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 사이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1637)을 겪었다.
성벽에는 어느 고을이 어느 구간을 쌓았는지도 남아 있다.
당시 충청도 23개 고을이 구간을 나눠 축성에 참여했다. 공주, 청주, 충주, 부여, 논산, 보령, 천안, 평택, 안성 등 각 고을의 이름을 성돌에 새겼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이다.
그때는 성벽이 무너지거나 부실하게 지어졌을 때 책임질 고을을 가려내기 위한 ‘실명제’였지만, 28개 구간이 남아 있는 지금은 여러 고을이 힘을 모아 하나의 성을 쌓았다는 공동 축성의 증거가 된다.
올해 축제는 여기서 ‘충청 연대’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태종대왕 강무 행렬’도 달라진다. 올해는 충녕대군이 합류하면서 ‘부자 동행’으로 서사가 넓어진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장병 90명 등을 포함한 160명 규모의 대열이 마상무예 등 군사 퍼포먼스를 펼치며 성 안팎을 누빈다.
강무 행렬은 10, 11일 오후 3시 각각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왕의 행렬 자체를 보여줬다면 올해는 태종과 충녕대군의 관계, 해미읍성 축성의 역사까지 한 줄로 이어 보여주는 셈이다.
이정민 총감독은 “해미읍성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쌓은 성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다”며 “강병이 있어야 부국이 있다. 관람객이 직접 1421년 성벽 안으로 들어가 당시의 삶을 온몸으로 체감하도록 축제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 포스터. (사진=서산시) *재판매 및 DB 금지
성문 들어서면 타임슬립
진남문에서 QR코드를 인식하면 스마트폰에 조선 시대 ‘호패’가 발급된다.
그 순간 관람객은 1421년 해미읍성의 백성이라는 설정으로 성 안에 들어선다.
성 전체는 거대한 오픈 월드 게임장이 된다.
135가지 미션을 따라 움직이며 활쏘기, 격구, 편추 등 무과시취에 도전한다.
'골든벨' 형식의 문과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다.
무과 급제자는 ‘홍패’를 받고, 문과 장원 급제자 가운데 한 명은 가마를 타는 ‘일일 해미현감’으로 추대된다.
‘RPG 해미귀환’을 비롯해 무과시험, 국궁, 승마, 전통복식, 서예 등 참여형 프로그램도 성 안 곳곳에서 이어진다.
지난해 ‘어린이를 맡아드립니다’를 전면에 내세워 어린이와 가족에게 무게를 뒀다면 올해는 성 전체를 하나의 역사 체험장으로 바꾸는 데 힘을 싣는 셈이다.

충난 서산시 해미읍성. (사진=서산시) *재판매 및 DB 금지
600년 전 함께한 23개 고을, 다시…
서산시는 옛 23개 고을을 현재 행정구역 기준 18개 시·군으로 연결해 단순한 초청 손님이 아닌 축제의 주체로 불러들인다.
9일 오후 7시 개막식에서는 ‘스물세 고을, 빛으로 성을 쌓다’가 펼쳐진다.
각 지역 대표가 자기 고장의 흙과 돌을 가져와 상징 성벽을 함께 쌓고, 옛 23개 고을을 상징하는 대형 등롱 23개에 차례로 불을 밝힌다.
600여 년 전 힘을 합쳐 성을 쌓았던 역사를 오늘의 충청권 연대로 옮겨놓는 의식이다.
강무 행렬 뒤에는 각 고을의 군현기를 든 주민들이 조선 백성과 역군(役軍) 복색으로 합류하는 ‘대동 축성 행렬’이 이어진다.
성 안에는 ‘공주 알밤’ ‘서천 모시송편’ ‘보령 김’ ‘금산 인삼’ ‘논산 젓갈’ 등 충청 각지 특산물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고을 저잣거리’가 선다.
메인 무대에서는 각 고을의 대표 문화공연을 모은 ‘충청 고을 열전’이 사흘간 펼쳐진다.
성벽 자체도 하나의 체험 공간이 된다.
문화유산인 성돌에 종이를 대고 탁본하는 대신 전용 앱을 활용해 각자성석을 찾아 촬영하고 인증하는 ‘축성 도감 완성 챌린지’를 운영한다.
전문 도슨트와 함께 각자성석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투어도 마련한다.
지난해 장인 개인의 손끝에서 전통을 보여줬다면 올해는 시선을 성을 함께 쌓은 고을과 사람들의 관계로 넓힌다.

‘서산해미읍성축제’ 모습. (사진=한국관광공사) *재판매 및 DB 금지
불꽃 대신 빛
올해 밤은 성벽과 하늘 전체로 더 넓어진다.
동헌, 서문, 동문, 남문 등 4곳에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진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불꽃놀이를 하지 않는다. 대신 드론 1000대가 축제 기간 중 총 5회 밤하늘로 날아올라 ‘드론 라이팅 쇼’를 펼친다.
‘황금 매의 비상’을 시작으로 ‘1421’ ‘해미읍성 완공’ ‘충청병마절도사영’ ‘태종의 강무 행렬’ ‘방패’ 등 10개 장면으로 해미읍성의 역사를 그려낸다.
진남문에서 동헌까지는 ‘아홉 갈래 빛의 길’이 이어진다.
성벽을 스크린으로 삼고, 머리 위 밤하늘까지 무대로 끌어들여 낮에 직접 경험한 역사를 밤에는 빛으로 다시 만나는 구조다.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의 ‘드론 라이팅 쇼’ 중 ‘황금 매의 비상’ 시안. (사진=서산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성 밖에는 천궁·신궁…대한민국의 호국
동문 주차장 일대에는 ‘해미 디펜스 로드’가 조성된다.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 ‘신궁’의 3분의 1 크기 모형을 비롯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전술차량, 드론 시뮬레이터 등이 들어선다.
600여 년 전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서해안 방어의 중심이었다면, 그 ‘지키는 힘’을 오늘의 국방 기술까지 이어 보여주는 공간이다.
10일 오후 1시에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해미읍성 상공을 가른다.
블랙이글스는 지난해 축제에서도 에어쇼를 펼쳤다. 올해는 태종의 강무, 병마절도사영, 현대 국방으로 이어지는 축제의 전체 서사 속에서 다시 비상한다.
600년의 시간, 미식으로
10일 동헌과 내아에서는 60명만 참여할 수 있는 유료 역사 다이닝 ‘해미성찬 팔폭’(海美城饌 八幅)이 열린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해 인지도를 높인 김성운 ‘테이블포포’ 오너 셰프와 궁중과 반가 음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김지영 한식 다이닝 ‘규반’ 오너 셰프가 한 상을 맡는다.
서산 간척지 햅쌀, 서산 6쪽 마늘, 서산 한우 등 지역 식재료를 활용해 여덟 접시를 차린다.
단순히 특산물을 맛보는 자리가 아니다. 태종의 강무에서 출발해 해미읍성이 지나온 600여 년의 시간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고, 각각을 음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서산해미읍성 딸기 스파클링, 들국화주, 파연주 ‘그려 25’ 등 지역 술도 곁들인다.

왼쪽부터 임진번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정민 축제총감독, 허권 서산문화재단 이사. (사진=서산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장윤정·딘딘부터 실경 뮤지컬까지
개막일인 9일에는 각자성석을 모티브로 한 개막 퍼포먼스에 이어 가수 장윤정이 무대에 오른다.
10일에는 블랙이글스 에어쇼, 현대차그룹 필하모닉오케스트라(HPO) 협연, 무예 공연, 래퍼 딘딘의 무대 등이 이어진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해미읍성의 실제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실경 뮤지컬 ‘달이 되어라’가 축제의 역사 서사를 마무리한다.
가수 장한별, 보이그룹 ‘데일리디렉션’(DAILY:DIRECTION) 등도 폐막일 무대에 선다.
지난해 축제가 전통 장인, 어린이, 가족에게 무게를 뒀다면 올해는 이야기의 중심축이 한층 선명하다.
태종의 강무에서 충녕대군과의 동행, 해미읍성 축성, 충청 23개 고을의 연대, 오늘의 국방까지 시간이 차례로 흐른다.
흩어져 있던 프로그램을 하나의 역사 서사 안에 묶은 것이 올해 축제의 가장 큰 변화다.
임진번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지난해에는 장인들의 전통 기술 시연을 조명했다. 올해는 충청권 연대와 자주국방의 역사의식으로 지평을 넓힌다”며 “태종과 세종의 위대한 부자 동행과 잊지 못할 시간여행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청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태종이 쌓은 성벽 위에서 세종은 백성의 나라를 꿈꿨다”며 “이번 축제를 통해 전통과 현재, 미래가 융합하는 글로벌 대표 K-축제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산문화재단은 올해 약 25만 명이 축제장을 찾고, 150억~170억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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