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 지낸 종손으로 부(富) 나눔 실천
![[경주=뉴시스] 경주 최씨 주손 최염 전 중앙종친회장(왼쪽)과 경주 최부잣집 전경. (사진=경주시 제공) 2026.09.12.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12/NISI20260912_0002237480_web.jpg?rnd=20260912231629)
[경주=뉴시스] 경주 최씨 주손 최염 전 중앙종친회장(왼쪽)과 경주 최부잣집 전경. (사진=경주시 제공) 2026.09.12. [email protected]
[경주=뉴시스]송종욱 기자 =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을 지낸 최염(崔炎) 종손이 12일 오전 8시30분께 서울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3세.
유족은 부인 강희숙씨와 2남1녀(최성길 변호사·최계진·최홍길), 며느리 류진주·박혜정씨, 사위 권태석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4일 오전 7시, 장지 경주 선영.
고인은 1933년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심계원(審計院·현 감사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후 대구대 사무국장·이사 등을 지냈다. 선경산업 대표, 성남병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1986∼2015년 사이에 3회에 걸쳐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을 지낸 후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살아 생전 경주 최부잣집을 널리 알렸다. 최부잣집은 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의 후손으로,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최진립(1568∼1636) 장군의 셋째 아들 최동량(1598∼1664) 때부터 부를 축적했다.
최부잣집은 현재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8.8㎞ 떨어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있었으나, 8대 최기영 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조리의 가옥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1993년에 '충의당'이란 이름으로 경북도 민속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교동 일대에 정무공파의 집성촌이 형성됐으며, 이 집의 바로 동편에 경주향교가 있다.
최부잣집은 부를 사회와 나누는 노블레스오블리주 정신으로 유명하며, 육훈(六訓)으로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 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를 실천했다.
고인의 조부인 최준(1884∼1970) 선생은 전 재산을 독립 운동과 교육 사업에 매진해 대구대의 전신인 계림학숙을 만들었다.
이병철(1910∼1987)삼성 그룹 회장이 조부로부터 넘겨 받은 대구대 운영권을 정부에 넘기자, 고인은 1970년대 이에 항의하다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2006년 경주 최씨 고택이 복원되고, 2007·12년에 '경주 교촌 최씨'를 조명하는 학술 대회를 여는 등 경주 최부잣집을 널리 알렸다. 2014년에 경주 교동에 '최부자 아카데미'가 개장했고, 2018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 ‘국어 4-1 가'(미래앤)에 실렸다.
2024년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이사장 자격으로 국사편찬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맺고, 최부자집 관련 자료 2만점을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시스템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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