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그렸는데 아직도 재밌어요"…73세 김원숙의 '영원한 봄'

기사등록 2026/08/19 15:45:08

최종수정 2026/08/19 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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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랑서 한국 첫 개인전 50주년 전시

1980년대부터 2026년 신작까지 80여점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9일 예화랑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영원한 봄'을 여는 김원숙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08.19.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9일 예화랑에서 5년 만에 개인전 '영원한 봄'을 여는 김원숙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08.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50년 동안 그렸는데 아직도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화가 김원숙(73)에게 그림은 거창한 미술사적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살면서 보고 느낀 것.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 그리운 것들을 그린다.

"미술사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여태껏 살면서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을 그리고 있다는 것. 그게 성공이라면 성공 아닐까요."

1976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연 김원숙이 50년 만에 다시 자신의 그림 앞에 섰다.

김원숙 개인전 'Eternal Spring-영원한 봄'이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예화랑에서 열린다. 일리노이주립대 졸업 후 1976년 명동화랑에서 연 한국 첫 개인전으로부터 꼭 50년을 맞는 전시다. 2021년 이후 5년 만에 예화랑에서 여는 일곱 번째 개인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까지 80여 점을 펼친다. 50년 화업을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않았다. 숲과 겨울밤, 집, 가족과 기억 등 김원숙이 평생 반복해서 그려온 이미지와 정서를 따라 작품을 묶었다.

김원숙의 그림은 어쩌면 조금 촌스럽다. 세련된 동시대미술의 문법도, 난해한 개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길이 머문다. 집과 나무, 달과 새, 외로운 사람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을 숨김없이 그리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을 건드린다.

김원숙 개인전 전경. Flight of Hope,2018,acrylic on canvas, 240x147cm *재판매 및 DB 금지
김원숙 개인전 전경. Flight of Hope,2018,acrylic on canvas, 240x147cm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작가는 춤을 추거나 날아오르는 그림 속 여인처럼 유연했다.

새들과 함께 절벽에서 날아오르는 듯, 추락하는 듯한 여인의 상태를 묻자 작가는 말했다.

"새들도 나는데 나도 한번 날아보자는 거죠. 벼랑 끝에 와 있는 느낌이 있지만 거기서 떨어지는 것만이 옵션은 아니에요. 날아갈 수도 있는 거죠."

김원숙의 그림이 삶의 어두운 순간을 다루면서도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술계의 유행이나 거대한 담론보다 자신이 실제로 느낀 감정이다.

"좋고 나쁘고 우열을 따지는 것보다 저는 '이건 진짜다, 이건 가짜다'라는 게 확실하게 와요. 어떤 흐름을 너무 의식하는 그림은 지루하게 느껴져요. 자기에게 절실했던 것을 이미지와 기호, 상징으로 만드는 데서 그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삶과 작업 사이에 경계가 희미하다.

"나는 그걸 의식하고 뭘 한 적이 없어요. 그냥 살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나온다는 거죠."

이미지는 때로 책에서도 불쑥 찾아온다. 시와 소설, 성경을 읽다가 문장이 이미지가 되어 떨어진다.

"책을 이렇게 펼치면 그림이 뚝뚝뚝 떨어져요. 성경책도 그래요. 열면 계속 그림이 떨어져요. 그러면 나는 그냥 그리기만 하면 돼요."

텍스트를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삽화는 아니다. 읽은 문장이 자신의 삶과 기억을 통과해 이미지가 되고, 다시 그림으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김원숙의 화면에는 이야기가 있지만 결말은 없다. 보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포개면서 이야기를 완성한다.

Dance in the forest,2009,oil on canvas,142x180cm *재판매 및 DB 금지
Dance in the forest,2009,oil on canvas,142x180cm *재판매 및 DB 금지


99세 아버지가 건넨 말…'영원한 봄'

전시 제목 '영원한 봄(Eternal Spring)'도 삶에서 왔다.

99세 아버지가 딸의 그림을 보고 건넨 '장춘(長春)'이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김원숙은 "99세의 언덕 위에서 내 그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이해와 희망이 담긴 한마디였다"며 "그 말을 듣고 '이게 정답이다' 싶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라고 했다. 기자 출신인 아버지에 대해 "나보다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2026년 신작 '영원한 봄' 연작에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보름달이 뜨면 남매를 불러 모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던 아버지다. 피아노 치는 남자와 달빛은 그렇게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봄은 김원숙에게 마냥 밝고 화사한 계절만은 아니다.

전시장에는 검푸른 하늘과 얼어붙은 대지를 그린 1980~90년대 '겨울밤(Winter Night)' 연작도 걸렸다. 사람과 이야기를 거의 걷어낸 드문 풍경화다. 검은 나무와 흰 눈, 한 줄기 빛만 남았다.

겨울 한복판에서도 봄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을 뿐 안에 들어 있다. 이번 전시가 말하는 '영원한 봄'은 그래서 낙관이라기보다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작은 희망에 가깝다.

Eternal Spring VII (Moonlight Sonata), 2026, oil on mixed media, 102x76cm *재판매 및 DB 금지
Eternal Spring VII (Moonlight Sonata), 2026, oil on mixed media, 102x76c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예화랑 김원숙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예화랑 김원숙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집은 '자기만의 우주'

2층 벽을 채운 집들은 또 다른 김원숙의 자화상 같다.

1980년대부터 이어온 'House' 연작이다. 사각 캔버스 안에 집을 그리는 대신 아예 나무판을 집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 사람과 나무, 별과 기억을 집어넣었다.

"집은 자기만의 우주예요. 감정이라는 건 원래 담을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흐르는 것들을 담아놓는 거죠."

여러 채가 모이면 하나의 마을처럼 보인다. 집 하나가 한 사람의 우주라면 전시장 벽에는 수십 개의 삶이 나란히 놓인 셈이다.

회화만 있는 것도 아니다. '브론즈 드로잉'은 가벼운 선을 왁스로 만든 뒤 청동으로 주조한 작업이다. 종이 위에 머물던 선이 벽에서 튀어나오고, 조명이 만든 그림자가 또 하나의 드로잉을 만든다. 김원숙은 그 그림자를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했다.

50년 동안 재료도 형식도 달라졌다. 몸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자랐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저는 정말 매일 그려요. 아직까지도 이게 재미있다는 게 저도 신기해요.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1976년 첫 개인전 당시에도 그는 “일상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반세기가 지나도 그림이 시작되는 곳은 같다.

“난 그냥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나한테 제일 절실한 것들을 그린 것뿐이니까.”

전시는 9월23일까지. 관람은 무료.
창경궁 벽담이 보이는 예화랑 김원숙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창경궁 벽담이 보이는 예화랑 김원숙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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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그렸는데 아직도 재밌어요"…73세 김원숙의 '영원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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