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정교 야경. (사진=경북 경주시) *재판매 및 DB 금지
해가 저물어도 한여름 태양 아래 달궈진 도시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밤공기마저 뜨겁다.
그렇다고 여름밤을 OTT(Over-the-Top)를 보며 에어컨 바람만 쐬며 보내기에는 아쉽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궁궐 전각의 처마 아래로 은은한 조명이 번진다. 천년 고도의 목조 다리는 강물 위에 또 하나의 모습을 만든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위로 다리와 항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천루의 불빛이 수면 위로 길게 번진다. 오래된 성곽길은 어둠 속에서 고즈넉한 산책길로 모습을 바꾼다.
바다나 강을 바라보고, 나무 사이나 돌담 곁을 천천히 걷다 보면 한낮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몸과 마음의 온도도 조금씩 내려간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이주창 인턴 기자 = 경주의 여름밤은 천년의 역사와 이야기가 깃든 다리 위에서 더욱 깊어진다.
경북 경주시 교동 남천 위에 놓인 월정교다.
낮에도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목조 구조가 눈길을 끌지만 진가는 해가 진 뒤 드러난다.
월정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문루 전시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야간 경관조명은 일몰 뒤부터 오후 10시까지 불을 밝힌다. 한여름에는 해가 기울 무렵 찾아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을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월정교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김부식(1075~1151)이 편찬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35대 경덕왕(?~765) 재위기인 760년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문천 지금의 남천이다.
당시 월정교는 신라 왕궁 월성과 서라벌 남쪽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고려 말부터 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기 전까지 경주에 부임한 지방관의 명단과 재임 기록을 담은 ‘경주선생안’에는 고려 제25대 충렬왕(1236~1308) 재위기인 1280년 월정교를 중수했다는 내용도 전한다. 처음 놓인 뒤 적어도 520년 동안 다리 기능을 유지한 셈이다.

월정교 문루. (사진=경북 경주시) *재판매 및 DB 금지
물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다리가 당시 건축물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다.
발굴 조사에서 다리 양쪽의 교대와 날개벽, 4개의 주형 교각 등이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원래 다리 길이는 약 60m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교각 사이에서는 불에 탄 목재와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다리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누각 형태의 ‘누교’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복원 공사는 2008년 시작됐다. 2013년 교량을 먼저 완성한 뒤 2016년 다리 양쪽 문루 복원에 들어갔고, 2018년 4월 전체 공사를 마쳤다.
이처럼 월정교는 1200여 년 전 통일신라의 다리를 발굴 조사와 고증을 통해 오늘에 되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둠에 잠기면 기와지붕과 문루, 길게 이어진 목조 교량에 조명이 들어오며 월정교 전체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낮에는 화려한 단청과 건축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밤에는 다리의 윤곽과 지붕선이 한층 선명해진다.
월정교 야경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 안으로 곧장 들어가기보다 남천 쪽으로 먼저 내려가는 편이 좋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는 경주시가 공식적으 로 추천하는 대표적인 야경 감상 지점이다.
물 위에서 다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고, 수면이 잔잔한 날에는 불 밝힌 월정교가 남천에 그대로 비친다. 다리와 수면에 비친 모습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점이 월정교 야경의 백미다.
최부자 고택을 중심으로 향교와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있으
징검다리에서 풍경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번에는 다리를 건너볼 차례다.
밖에서는 하나의 긴 야경으로 보이던 월정교도 안으로 들어가면 굵은 목재 기둥과 지붕 아래 긴 통로가 이어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뀐다. 기둥 사이로는 어둠이 내려앉은 남천과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문루 2층에는 월정교 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출토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야경을 감상한 뒤 1200여 년 전 다리가 어떻게 오늘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는지 살펴볼 수 있다.

월정교 내부. (사진=경북 경주시) *재판매 및 DB 금지
다리를 건넌 뒤에는 경주 교촌마을로 걸음을 이어가도 좋다.
최부자 고택 등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 있는 교촌마을을 둘러보고 신라 왕궁터인 월성,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 김알지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 제27대 선덕여왕(?~647) 재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대 첨성대까지 걸음을 이어간다.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을 잇는 여름밤 역사 산책 코스로 충분하다.
한낮의 경주에서는 유적 하나를 둘러보는 일도 땀과의 싸움이 되기 쉽다.
그러나 해가 지고 남천 위 목조 다리에 불이 들어오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징검다리 위에 잠시 멈춰 실제 월정교와 물 위에 비친 또 하나의 월정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낮의 더위도 어느새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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