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g이 안 되는 의자" 헬리녹스가 만든 '경량 캠핑' 역사[장수브랜드 탄생비화]

기사등록 2026/06/28 12:00:00

텐트 폴 기술에서 시작된 초경량 혁신

체어원으로 연 경량 캠핑 체어 시대

협업으로 저변 확대하며 브랜드 진화

[서울=뉴시스] 2013년 미국 네바다 첫 해외 로케이션 촬영.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013년 미국 네바다 첫 해외 로케이션 촬영.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동효정 기자 = 캠핑 의자는 한때 자동차가 있어야 들고 다닐 수 있는 장비였다. 불과 15여 년 전만 해도 캠핑 의자는 철제 프레임에 두꺼운 천을 씌운 접이식 의자가 대부분이라 '무겁고 큰 장비'였다.

이런 고정관념을 깬 배경에는 텐트를 지탱하는 알루미늄 폴 기술이 있었다. 세계적인 텐트 폴 제조사 동아알루미늄(DAC)이 축적한 초경량·고강도 합금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헬리녹스는 '가볍지만 강한 의자'를 구현했다.

텐트를 지탱하던 기술은 사람을 지탱하는 기술로 확장됐고 헬리녹스는 이를 바탕으로 초경량 캠핑 체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서울=뉴시스] 홈 라인 초기 제품의 유럽 현지 촬영.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홈 라인 초기 제품의 유럽 현지 촬영.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가 인정한 텐트 폴 기술…"이제는 우리 브랜드를 만들자"

헬리녹스의 시작은 의자가 아니라 텐트 폴이었다.

1988년 설립된 동아알루미늄(DAC)은 힐레베르그, 빅아그네스, 니모 등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에 텐트 폴을 공급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텐트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면서도 최대한 가벼워야 하는 텐트 폴 특성상 소재와 구조 설계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DAC는 독자적인 알루미늄 합금 기술과 정밀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20여 년간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을 뒷받침해 온 DAC는 2000년대 후반 새로운 선택을 한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자는 결심이었다.

당시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국내에 유통하던 라영환 대표가 사업 확장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DAC를 이끌던 부친 라제건 회장은 "이제는 우리 기술로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자체 브랜드 론칭을 제안했고 이 결정이 헬리녹스의 출발점이 됐다.

라 대표는 2009년 직접 로고를 디자인하고 상표를 출원했다. 브랜드 이름인 헬리녹스(Helinox)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와 밤의 여신 '녹스(Nox)'를 조합한 이름이다. 낮과 밤, 장소와 환경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후 DAC가 구축한 글로벌 공급망과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2013년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브랜드 경영 체계를 갖췄다.

[서울=뉴시스] 브랜드 초창기 전시회 참가 모습.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브랜드 초창기 전시회 참가 모습.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의자가 아닌 기술을 만들었다…체어원이 바꾼 캠핑의 공식

초기 헬리녹스가 선보인 제품은 의자가 아니었다. DAC의 알루미늄 기술을 적용한 트레킹 스틱과 우산 등을 먼저 출시하며 브랜드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이후 헬리녹스는 브랜드를 대표할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목표는 '가볍지만 강한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캠핑 의자는 무겁고 부피가 큰 장비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헬리녹스는 텐트 폴에 적용했던 초경량 기술을 의자에 접목하는 데 도전했다.

가장 큰 과제는 무게를 줄이면서도 사람의 몸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구조를 구현하는 일이었다. 프레임을 다방향으로 연결하는 허브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고 원단과 봉제 방식도 처음부터 다시 개발했다. 여기에 반복적인 하중 테스트와 실제 아웃도어 환경에서의 필드 테스트를 거치며 가벼우면서도 안정적인 의자를 완성했다.

그 결과물이 2012년 미국에서 처음 공개된 '체어원(Chair One)'이다.

체어원은 약 893g의 무게로 최대 145㎏의 하중을 견디는 구조를 구현했다. 당시만 해도 캠핑 의자는 무겁고 큰 장비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체어원은 배낭 하나에도 들어가는 크기와 뛰어난 휴대성으로 시장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업계에서는 체어원의 등장을 계기로 '휴대 가능한 경량 퍼니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형성됐다고 평가한다. 체어원은 출시 이후 10년간 전 세계에서 120만 개 이상 판매되며 헬리녹스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헬리녹스는 이후에도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기존 체어원을 재설계한 '체어원(re)'을 선보였고, 약 494g에 불과한 '체어제로 LT(Chair Zero LT)'를 출시하며 초경량 기술의 한계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서울=뉴시스] 헬리녹스 체어제로 LT.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헬리녹스 체어제로 LT.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능을 넘어 디자인으로…캠핑 의자가 문화가 되다

헬리녹스는 기능 중심이던 캠핑 장비에 디자인과 문화를 더하며 브랜드의 영역을 넓혀왔다. 초경량 구조와 미니멀한 디자인을 결합해 아웃도어 제품을 일상 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재해석했다.

이 같은 디자인 경쟁력은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인정받았다. 헬리녹스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iF 디자인 어워드 등을 수상하며 기술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랜드 철학인 'AT HOME, ANYWHERE'에는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집처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뉴시스] 헬리녹스 슈프림 협업(위부터 아래로), BTS, 루브르박물관.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헬리녹스 슈프림 협업(위부터 아래로), BTS, 루브르박물관.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슈프림이 먼저 손 내밀었다…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

헬리녹스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2016년이었다.

당시 글로벌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 먼저 협업을 제안하면서 국내 브랜드 최초의 협업 제품이 탄생했다. 당시 아웃도어 브랜드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만남은 이례적인 시도로 평가받았고 협업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를 계기로 헬리녹스는 캠핑 장비 브랜드를 넘어 패션과 문화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후 나이키, 루이비통, 포르쉐, BTS, 루브르 박물관, 라이카, 카페 키츠네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브랜드 및 기관과 협업을 이어갔다. 캠핑 의자를 단순한 기능성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이자 문화 콘텐츠로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GS25, 원소주, 제네시스, 삼성전자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헬리녹스를 '글로벌 브랜드들이 먼저 찾는 협업 파트너'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제품 완성도를 기반으로 쌓아온 브랜드 신뢰가 산업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시스] 지친 자들을 위한 휴식(Rest for the Restless): Camp 캠페인 . (사진=헬리녹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친 자들을 위한 휴식(Rest for the Restless): Camp 캠페인 . (사진=헬리녹스) *재판매 및 DB 금지


캠핑을 넘어 일상으로…체험 공간도 확대

헬리녹스의 성장에는 캠핑 시장 확대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캠핑과 백패킹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브랜드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9년 약 3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2023년 78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싱가포르에 글로벌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냈다.

최근 캠핑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헬리녹스는 '프리미엄의 대중화'를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술력과 완성도는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과 유통 채널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센터(HCC)'다. 서울 한남동을 시작으로 부산, 제주, 여주 등에 운영 중인 HCC에서는 의자와 테이블, 텐트 등 주요 제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단순한 매장을 넘어 전시와 협업 프로젝트, 브랜드 이벤트를 운영하며 헬리녹스만의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통 채널도 넓어지고 있다. 아웃도어 전문 매장을 넘어 코스트코와 신세계사이먼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등에 입점하며 일반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헬리녹스가 캠핑 장비 브랜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는 "헬리녹스는 경량성과 내구성을 기반으로 초경량 캠핑 체어 시장을 개척해온 브랜드"라며 "기술력과 완성도라는 핵심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리미엄의 대중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 확대와 체험형 공간, 유통 채널 확장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경쟁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네이버후드 X 헬리녹스 라이트 롤 탑 백팩.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네이버후드 X 헬리녹스 라이트 롤 탑 백팩. (사진=헬리녹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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