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재택 임종 지킨 日의사 "당신이 마지막 머물 곳은?"[인터뷰]

기사등록 2026/06/17 06:30:00

최종수정 2026/06/17 06:38:24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인터뷰

4000명 넘게 마지막 배웅…"생명의 평등함 배워"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찾아가는 일"

"韓, 재택의료·복지지원팀 탄탄하게 구축해야"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6.16. akang@newsis.com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6.1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병원 치료가 더 이상 효과가 없는 단계에 이르면,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그 사람의 삶에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하기는 어려워요. 조용히 상황을 돌아본다면, 자신이 가장 머물고 싶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당신이라면 어떨까요?"

일본에서 30년 넘게 재택 호스피스 정착에 앞장서 온 나이토 이즈미 원장은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답했다. "저라면 익숙한 온기가 남아 있는,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온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택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찾아가는 일"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행복과 멀어지고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고 말했다.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직접 만났다.

"입원 중인 병원이나 시설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증 상태에서 과연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도 크죠.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병원처럼 의료진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이때 타인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해요. 환자와 가족이 병의 단계와 상황을 판단할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죠."

1990년대부터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로 활동해 오며 그간 만나온 환자만 4000명이 훌쩍 넘는다. 그가 마지막 길을 배웅한 환자 중 21명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책은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의대를 졸업하고 도쿄 등에서 병원 근무를 한 후 1986년 영국으로 건너가 호스피스 연수를 받았다. 1995년 일본에 돌아와 중부 지역인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후지 내과병원을 열고 호스피스 환자를 위해 밤낮없이 왕진을 다녔다.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임종을 지킨 수많은 얼굴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30년 전 만났던 한 환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악성 흑색종이 뼈로 전이돼 극심한 암성 통증에 시달리던 60대 남성 환자였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급히 찾아와 "남편을 살려 달라"면서 왕진을 부탁했다.

"환자는 잠도 못 자고 지쳐 있었어요. '아픈 다리를 잘라줘! 너무 아파!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라고 울부짖고 있었죠.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는 속으로 기도하며 약을 조합해 투여했고, 다행히 약효가 나타나며 얼굴이 점점 평온해졌어요. 그 후 통증이 거의 사라질 정도까지 안정됐죠. 그는 더 이상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3개월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큰 통증 없이 평온하게 지냈죠."

90세가 된 그의 아내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남편이 마지막에 보여준 환한 미소를 추억할 수 있어서 저는 정말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이토 원장은 "저는 그때 도움이 될 수 있어 안도했다"며 "신체적 통증이 완화되고 존엄을 회복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장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택 호스피스 의사는 환자의 '동반자'라고 했다. 사망진단서는 한 사람의 삶이 끝났음을 알리는 인생의 '졸업장'과도 같다.

"재택 호스피스 의사는 그 사람의 삶을 마지막까지 함께 걸으며 지지하는 동반자예요. 적극적 치료 단계를 지나온 환자 곁에서 함께 머무는 역할이죠. 사망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사망진단서를 건넬 때 저는 늘 깊은 마음을 담아 '정말 잘 버티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꼽히는 일본은 2000년 개호(돌봄)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우리나라 노인 요양 보험과 비슷한 개념으로, 의료보험과 함께 일본 복지의 큰 축이다. 2005년엔 의료·돌봄·생활 지원 등이 통합적으로 제공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의료·간호', '돌봄·재활', '예방·보건', '생활지원·복지서비스', '주거와 생활방식'의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인적 자원'을 꼽았다. 2024년 기준 일본 전국에 7200개소의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주요한 고령자 상담 창구 기능을 하며, 보건사·케어매니저 등이 상주하고 있다. 그는 "전국적으로 케어매니저를 양성해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케어 계획을 종합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이 풍부했다"고 설명했다.

"노인 한 사람당 한 명의 케어매니저가 배정된다는 건 매우 축복받은 시스템이에요. 주거·의료·돌봄·예방·생활지원을 통합적인 시야로 바라보며 조정해주는 케어매니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다만 책임과 업무 강도에 비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점차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문제가 있어요."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의 한 장면.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의 한 장면.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도 지난 3월말부터 통합돌봄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일상생활이 어려워 돌봄이 필요한 노인 등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에서 의료·돌봄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는 제도다. 지난달 22일 기준 약 2만8000명이 신청했다.

나이토 원장은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라며 "재택 의료·복지 지원팀이 탄탄하게 구축돼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팀에서 누가 책임을 지는지도 명확해야 한다. 의료팀에서는 방문 간호사에 대한 지시와 책임을 모두 의사가 진다. 의사 없이 간호사가 처치할 때도 서로 믿고 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돌봄의 종착지도 결국 재택 호스피스로 연결된다.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임종까지 이어지는 고리다. 현재 한국의 가정형 호스피스는 40개소 의료기관이 운영하고 있으나,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일본은 최근 왕진에 대한 진료 수가를 높이면서 젊은 의사들이 재택 호스피스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별마당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일본 재택 호스피스 전문의 나이토 이즈미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별마당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6.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의사 교육 시스템에 재택케어 실습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어요. 의대 졸업 후 2년 동안 재택케어 현장에서 배우고, 이후 병원 등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재택케어의 가치에 눈뜨고 그대로 재택의가 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죠. 재택 현장에서 생명을 돌보는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게 매우 중요해요."

수많은 환자의 끝을 지켜온 그도 올해 70세가 됐다. 재택 호스피스를 하던 초기엔 팀이 갖춰져 있지 않아 밤중 호출도 모두 감당하며 여러 번 쓰러지기도 했다. 지금은 방문 간호사들의 협력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두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24시간 늘 긴장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는 게 낯설 수 있지만, 환자와 의사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 안의 가치관을 변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제가 재택 호스피스를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건 '생명의 마지막 불꽃이 반짝이는 순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존귀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들을 통해 생명이 평등하다는 걸 배우는 여정이죠. 저의 여행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가능하다면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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