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배경 된 서울 한옥 ④수연산방

기사등록 2026/05/11 06:03:00

‘수연산방’.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수연산방’.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차경'(借景)의 미학이 5월의 신록 속에서 더욱 빛난다.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길기연)이 일상의 소란을 걷어내고 쉼과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서울 시내 한옥 명소들을 소개한다.

서울의 역사적 정체성을 간직한 동시에 드라마·영화 등 K-콘텐츠의 배경이 된 고택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자연을 빌려 내 정원으로 삼는다’는 철학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웅장한 '고대광실'(高臺廣室) 기와집부터 소박한 초가집까지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하늘과 산, 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한옥의 유연함은 현대 건축이 놓치기 쉬운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차경은 '물욕'(物欲)을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연을 굳이 억지로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잠시 빌려 즐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담장 너머 풍경을 내 마당처럼 품어내는 이 비움의 미학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한옥이 현대인에게 특별한 치유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서울관광재단은 한옥의 자태를 만끽하며 가치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제안한다. '북촌한옥마을' 코스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도보로 관광지들을 탐방한다.

‘운현궁’에서 시작해 ‘석정보름우물터’, ‘중앙중·고등학교’, ‘가회동성당’을 지나 ‘정독도서관’과 ‘백인제 가옥’까지 둘러본다.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성북동에 남은 근대 문학의 숨결

서울 성북구 성북로26길, 가파른 성북동 언덕길을 오르다 만나는 낡은 돌담은 이곳이 일상의 소란에서 잠시 비껴난 공간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한국 단편 소설의 선구자 상허 이태준(1904~?)이 1933년 직접 설계해 지은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집’이라는 당호처럼 이곳은 1930년대 ‘구인회’ 멤버들이 모여 문학과 삶을 논하던 근대 문학의 산실이었다.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를 한 건물에 배치한 ‘개량 한옥’이다. 공간의 효율성 속에 문인의 격조를 숨겨뒀다.

‘수연산방’.의 ‘누마루’.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수연산방’.의 ‘누마루’.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집의 백미는 안방 전면에 안방 전면에 높게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진 섬세하고 화려한 ‘누마루’다. 가옥 전체에 격조를 더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앉아 바라보는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농담(濃淡)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마당의 오래된 석류나무와 단풍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색채로 공간을 물들인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이태준이 의도한 한옥 특유의 아늑함이 배어 있다.

집안 곳곳에 흐르는 차분하고 묵직한 기운은 1930년대 정지용(1902~?), 이상(1910~1937)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밤새 문학과 삶을 논하고, 이태준이 거주하면서 ‘달밤’(1933), ‘까마귀’(1936) 등을 집필했던 공간다운 분위기다.

공간이 지닌 고유한 미학은 문인을 넘어 영상인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 영화의 고전인 ‘하녀’(1960)를 시작으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2020),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MSG 워너비 프로젝트’(2021) 등 다양한 콘텐츠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공간의 서사를 확장해 왔다.

현재 이곳은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옛 문인의 서재’라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둔 채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시공간을 넘어 근대 문학의 산실에 들어선 듯한 정취를 마주한다. 창호지를 통과해 방 안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봄볕과 은은한 나무 향은 현대인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기에 충분다.

수연산방은 단순한 고택을 넘어 한옥 고유의 정취와 근대 문학의 사유, 그리고 영상 콘텐츠를 통해 축적된 대중의 기억을 복합적으로 향유하는 성북동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최순우 옛집’의 뒷뜰.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최순우 옛집’의 뒷뜰.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성북동의 문화 궤적을 잇는 또 다른 거점은 서울 성북구 성북로15길에 위치한 ‘최순우 옛집’이다.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이 집은 한국 건축의 절제된 미학을 실체화한 공간이다.

2002년 시민 성금으로 매입·보전한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사실이 그 역사적 가치를 일깨운다.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1994)를 통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본질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최순우의 안목은 집 안팎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1930년대 건립된 근대 ‘도시형 한옥’ 구조인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마주 보며 ‘ㅁ’자형 중정을 형성한다.

화려한 기교를 덜어내고 나무의 결을 살린 단정한 선의 흐름은 그가 평생 지향했던 ‘무기교의 기교’와 맥을 같이 한다.

마당에 식재된 소나무, 산사나무, 모란, 수국 등은 인위적 조경을 배제한 한국 정원의 원형을 보여준다.

뒤뜰 장독대와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스며드는 계절의 농담은 방문객에게 한국의 미학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대청마루에 앉아 정원을 조망하다 보면 성북동 언덕을 올라오면서가빠졌던 숨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한국 미의 정수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고요한 사유의 순간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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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배경 된 서울 한옥 ④수연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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