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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각’ 내 한옥과 마당.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차경'(借景)의 미학이 5월의 신록 속에서 더욱 빛난다.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길기연)이 일상의 소란을 걷어내고 쉼과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서울 시내 한옥 명소들을 소개한다.
서울의 역사적 정체성을 간직한 동시에 드라마·영화 등 K-콘텐츠의 배경이 된 고택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자연을 빌려 내 정원으로 삼는다’는 철학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웅장한 '고대광실'(高臺廣室) 기와집부터 소박한 초가집까지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하늘과 산, 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한옥의 유연함은 현대 건축이 놓치기 쉬운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차경은 '물욕'(物欲)을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연을 굳이 억지로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잠시 빌려 즐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담장 너머 풍경을 내 마당처럼 품어내는 이 비움의 미학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한옥이 현대인에게 특별한 치유의 공간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서울관광재단은 한옥의 자태를 만끽하며 가치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제안한다. '북촌한옥마을' 코스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도보로 관광지들을 탐방한다.
‘운현궁’에서 시작해 ‘석정보름우물터’, ‘중앙중·고등학교’, ‘가회동성당’을 지나 ‘정독도서관’과 ‘백인제 가옥’까지 둘러본다.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북한산 자락, 자연·역사가 머무는 곳
그 깊은 품속에 ‘선운각’이 있다.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선운각은 1967년 건립된 뒤,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에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대원각’(현 대한불교조계종 길상사)과 함께 아무나 범접할 수 없었던 ‘요정 정치’의 주무대였다.
현재는 한옥 카페 겸 야외 결혼식장으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 됐다.
서울 최대 규모 민간 한옥이 내뿜는 압도적인 부피감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관통해 온 공간의 권위를 웅변하는 듯하다. 단아하면서 기품을 간직한 한옥의 실루엣은 자연과 사람이 빚어낸 조화다.
주차장을 지나 부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 것은 웅장한 돌담길이다.
정교하게 깔린 박석(薄石)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왠지 낯이 익다. 바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근무하던 미국 공사관이 등장할 때 나왔기 때문이다.
구한말 서사를 재현해 낼 만큼 전통 건축 양식을 정밀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듣는 이 길은 방송 이후 많은 방문객이 발길을 멈추는 대표 ‘포토존’으로 자리 잡았다.

‘선운각’의 돌담길.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돌담길 끝에서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외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대비되는 현대적 감각의 카페 본관이 나타난다.
이곳 2층 테라스는 과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 세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있다고 해서 ‘삼각산’(三角山)이라 불렸던 북한산의 능선을 가림막 없이 시야에 담아내는 조망 포인트다.
본관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면 다시 공간의 질감이 변한다. 한옥 별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별관 내부에는 화려한 자개 테이블과 함께 좌식 좌석이 비치돼 짙은 복고 분위기를 풍긴다.
선운각의 미학적 정점은 단연 푸른 잔디 마당과 북한산의 산세가 어우러진 조망이다.
도시의 빠른 호흡을 산의 느릿한 숨으로 바꾸는 공간이 바로 선운각이다.

‘봉황각’. (사진=서울관광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선운각에서 우이동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강북구 삼양로173길 ‘봉황각’에 닿는다. 3.1 운동의 발상지이자 천도교의 성지다.
독립운동가이자 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1861~1922)이 1912년 천도교 지도자 양성을 위해 건립했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수립된 독립운동의 산실이기도 하다.
봉황각의 건축적 핵심은 평면 구조다. 본채가 하늘·땅·인간의 순환을 상징하는 ‘을’(乙)자 형태로 배치돼 있다. 이는 천도교의 핵심 사상인 ‘궁을’(弓乙)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사례다.
기둥과 보를 전혀 채색하지 않은 ‘무단청 백골집’ 구조는 나무 본연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며 선비의 절제된 기개를 시각화한다.
기와 지붕이 삼각산 세 봉우리를 두르고 있는 듯한 형상은 자연과 건물의 조화를 우선한 당시 건축 철학을 반영한다.
내부에는 손병희 선생의 초상화와 유품이 전시돼 있다. 후문을 나서 언덕을 약 50m 오르면 선생의 묘역에 갈 수 있다.
봉황각의 소박한 풍경은 5월의 화려한 자연과 대비되며 역사의 무게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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