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강원 형제 일본서 조선 유물 경매 낙찰·구매
'백자청화이진검묘지''순종예제예필현판' 기증 결단
"문화유산, 상품 아닌 우리 정체성…반드시 돌아와야"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오른쪽)·김강원 형제가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은 1892년(고종 29)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進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현판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李眞儉墓誌)'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묘지(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이다. 2026.05.08.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07/NISI20260507_0021275570_web.jpg?rnd=2026050810000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오른쪽)·김강원 형제가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은 1892년(고종 29)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進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현판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李眞儉墓誌)'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묘지(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이다. 2026.05.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상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왕실 현판은 원래 경복궁에 있어야 하는 유물입니다."
일본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사비로 구입해 고국에 기증한 김창원(60)·강원(59) 형제는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문화유산 환수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경매장과 고미술 시장을 떠돌던 조선 왕실 현판과 조선 후기 묘지가 형제의 결심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형제가 기증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畫李眞儉墓誌)'와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합동 기증식을 열고 유물을 처음 공개한다.
형제는 모든 문화유산을 무조건 환수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만 왕실 유물처럼 국민 정체성과 직결된 문화유산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고미술업에 종사 중인 동생 김강원 씨는 "우리의 불행했던 시절 누군가가 밖으로 가져나간 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었을 수 있지만, 이런 유물은 거래 대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순종예제예필현판'은 1892년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進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현판이다. 목판에 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뒤 바탕은 먹색, 글씨는 녹색으로 칠한 왕실 현판으로, 녹색 글씨를 사용한 사례는 드물어 상징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강원씨는 현판을 재작년 말 일본의 한 폐쇄형 멤버십 경매에서 발견됐다. 사진 촬영조차 금지된 경매에서 김강원 씨는 일본인 참가자들과 경쟁 끝에 현판을 낙찰받았다.
현판은 테두리가 있고 용두와 봉두 를 조각한 사변형 현판으로 위계가 높은 왕실 현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목판에 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후 바탕을 먹색, 글씨는 녹색으로 칠했으며 테두리를 연꽃과 접시꽃 문양 등으로 꾸몄다.
구입 후 조사 결과, 현판은 순종 황제가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기원하는 시 내용을 담고 있다. 순종의 글씨는 해서체로 엄정하고 단아하며 세자로서의 서격(書格)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강원 씨는 "왕실 현판은 원래부터 경복궁에 있어야 하고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되는 유물"이라며 "나중에라도 경복궁에서 제자리를 찾은 모습을 본다면 큰 영광일 것 같다"고 했다.
일본에서 고미술업에 종사 중인 동생 강원 씨는 "모든 문화유산을 무조건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국민 정체성과 직결된 유물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형 김창원 씨는 지난해 일본 도쿄 교바시의 고미술 상점가에서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발견했다. 서예를 취미로 공부하던 그는 묘지의 글씨에서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의 서풍을 알아봤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묘지(墓誌)로, 1745년에 제작됐다. 묘지는 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陶板)이다. 묘지의 글은 아들 이광사의 요청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수(李德壽)가 짓고, 글씨는 조선 후기 대표적 명필인 아들 이광사가 썼다.
김창원 씨는 "발견 당시 마지막 부분에서 '이광사'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좋은 유물이라고 생각해 기증 방법을 알아보다가 재단과 연결되면서 가치를 더 자세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광사의 글씨는 대체로 행초서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묘지의 앞면은 이광사의 글씨 가운데에서도 드물게 예서로 쓰여 서예사적 가치가 크다.
형제는 기증한 왕실 현판과 묘지에 대해 "우리 과거 불행한 시절에 누군가가 그걸 가지고 나갔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소유자가 몇 번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유물은 거래 대상이 아니기에,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대로 한국으로 반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오른쪽)·김강원 형제가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은 1892년(고종 29)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進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현판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李眞儉墓誌)'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묘지(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이다. 2026.05.08.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07/NISI20260507_0021275572_web.jpg?rnd=20260508100000)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순종예제예필현판'과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한 김창원(오른쪽)·김강원 형제가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은 1892년(고종 29)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進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현판이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李眞儉墓誌)'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묘지(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이다. 2026.05.08. [email protected]
형제의 기증은 집안의 영향도 컸다. 아버지 김대하 선생은 1990년대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을 지냈고, 경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창원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기증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며 "동생의 활동에도 영향을 받아 이번 기증에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형제는 해외 시장과 박물관에서 한국 문화유산이 잘못 소개되거나 방치되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김창원 씨는 "국적이나 명칭 같은 기본 정보가 잘못 표기된 경우를 볼 때 가장 안타깝다"며 "묘지 같은 자료도 굉장히 중요한 문화유산인데 해외에서는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강원 씨도 "인기가 덜한 유물들은 해외에 있으면 훼손되거나 방치되기 쉽다"며 "유물은 잘 보존만 돼도 언젠가는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기증자의 뜻을 반영해 두 유물에 대한 연구·보존·활용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