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무서웠던 소녀, 살해범이 되다"…피해자에서 가해자로[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⑭]

기사등록 2026/05/14 07:00:00

최종수정 2026/05/14 07:02:25

원룸서 출산 후 방치…아동학대살해 인정

어린시절 부친의 가정폭력에 장기간 노출

'강북모텔 연쇄살인' 김소영도 학대피해자

전문가 "아동학대, 공격성과 충동성 강화"


[서울=뉴시스]이태성 이지영 기자 = <3부:아동학대 트라우마 지옥>

지난 2023년 여성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원룸 화장실에서 홀로 1.6㎏의 미숙아를 출산했다. 임신 중절 수술을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전 남자친구에게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A씨는 갓 태어난 아이를 비닐봉지와 수건으로 감싸 베란다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약 11시간 동안 방치된 끝에 숨졌다.

법원은 A씨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아동학대살해죄를 인정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가정폭력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부친은 아내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A씨는 이를 막기 위해 집의 가위나 칼을 숨기며 불안 속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삶은 안정되지 않았다. 전학을 여섯 차례 반복했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기회는 없었다.

성인이 된 뒤 A씨는 전 연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했고, 자존감과 독립성을 모두 잃어갔다.

재판부는 A씨가 전 남자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것이 어린 시절 부친의 가정폭력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정신과 치료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자존감이 무너진 측면이 크다"는 판단이다.

범행 당시 A씨는 예상치 못한 임신과 갑작스러운 조산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아이를 방치하고 일터로 향했다. 치료되지 않은 상처는 A씨의 판단을 흐렸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르는 사례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서울 강북구 연쇄 약물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소영(20) 역시 어린 시절 가정폭력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향정신성 의약품을 이용해 2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했다. 수사 결과 어린 시절 술에 취한 부친의 폭행과 폭언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으며, 가정불화로 정서적 단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인들 역시 "어릴 때부터 도벽과 자해 등 문제 행동이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학교나 보호시설에서 적응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서울=뉴시스] 조수원 기자 =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소영. 2026.02.12. tide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원 기자 =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소영. 2026.02.12. [email protected]

과거 강력범죄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유년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설명되기 어렵다고 본다. 아동기 학대 경험은 정서 형성과 행동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이후 삶 전반에 걸쳐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장 과정에서 두려움과 공포만을 경험하다 보면 분노가 축적되고, 이후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표출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상담과 치유를 통해 폭력이 전수되는 것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 '학습'되기도 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어릴 때 폭력이 문제 해결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을 경험하면 성인이 된 뒤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학습된 행동이 나올 수 있다"며 "논리적 사고나 절제력과 관련된 뇌 기능의 장애, 호르몬 변화 등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승민 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뿐 아니라 과도한 스트레스, 트라우마는 인간을 생존 중심의 상태로 몰아넣어 공격성과 충동성을 강화시킨다"고 우려했다.

폭력은 한 세대에 끝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남고, 그 상처는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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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무서웠던 소녀, 살해범이 되다"…피해자에서 가해자로[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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