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포가 만든 교세포 장벽의 역설…과산화수소·콜라겐 억제로 신경세포 사멸 방어
신약 후보물질 'KDS12025' 영장류 효능 확인…임상 성공 시 뇌질환 치료 '게임체인저'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 및 을지대학교 공동연구진은 뇌졸중의 근본 원인 및 치료법을 28일 제시했다. 사진은 뇌 CT 촬영 관련 참고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현대 의학의 난제 중 하나로 꼽혔던 ‘허혈성 뇌졸중’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국내 연구진이 뇌졸중 발생 후 뇌세포가 사멸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치료의 골든타임을 기존 3시간에서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제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 및 을지대학교 공동연구진은 뇌졸중의 근본 원인 및 치료법을 28일 제시했다.
뇌혈관이 막혀 ‘과산화수소(H₂O₂)’가 과도하게 생성되면 별세포가 콜라겐을 생성해 신경세포를 사멸시킨다는 것이다. 즉 과산화수소와 콜라겐 생성만 억제해도 뇌경색에 의한 뇌 손상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억제하는 자체 개발 신약 후보 물질 'KDS12025'를 영장류 뇌졸중 모델에 투여한 실험에서 신경 손상 완화와 운동기능 회복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뇌경색 등 허혈성 뇌졸중을 포함한 뇌혈관 질환 치료에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대사 분야 세계 최고 권위지인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게재되며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허혈성 뇌졸중에서 별세포의 1형 콜라겐 생성 및 신경세포 사멸 모식도.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질병 확산 막는 방벽인줄 알았는데"…교세포 장벽이 신경세포 죽였다
연구진은 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별세포에 주목했다. 별세포는 본래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보호자 역할을 하지만, 뇌졸중과 같은 손상을 입으면 그 크기가 커지고 분열하는 ‘반응성 별세포’가 나타나게 된다.
그간 학계에서는 이 반응성 별세포가 만드는 ‘교세포 장벽’이 병이나 염증의 확산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가설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이 장벽을 제거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이 장벽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교세포 장벽이 살아있는 신경세포를 가두고 사멸시키는 ‘킬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실험 결과 교세포 장벽 형성을 억제했을 때 오히려 신경세포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현상이 관찰됐다.
특히 연구진은 반응성 별세포가 신경세포를 죽이는 구체적인 분자 기전을 규명했다. 뇌졸중 현상으로 뇌혈관이 막히면 뇌 안에서 산화 스트레스의 일종인 과산화수소가 급증하게 된다. 과산화수소가 급격히 증가하며 별세포를 자극하면 별세포가 1형 콜라겐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형성된 교세포 장벽이 신경세포를 둘러싸 사멸시킨다는 것이다.

허혈성 뇌졸중에서 별세포의 1형 콜라겐 생성 및 신경세포 사멸 모식도.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약 후보 물질 ‘KDS12025’ 개발…뇌졸중 골든타임 3시간에서 48시간으로
KDS12025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과산화수소를 물로 전환하는 능력을 100배 이상 높여주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 약물을 뇌졸중 증상이 있는 생쥐 모델에 투여한 결과 교세포 장벽과 신경세포 사멸이 거의 사라지고 저하됐던 운동능력도 일주일 만에 정상 수준으로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의 가장 놀라운 성과는 치료 가능 시간인 ‘골든타임’의 연장이다. 기존 뇌졸중 치료 약물로 유명한 tPA는 증상 발병 이후 3~4시간이 지나면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급격히 커진다.
하지만 연구진이 생쥐 모델을 통해 확인한 결과 증상 발생 48시간 후에 KDS12025를 투여했을 때도 신경세포 사멸이 억제되고 신경 기능이 회복되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기존의 3시간 골든타임을 16배나 연장한 셈이다.
또한 연구진은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영장류(원숭이) 실험까지 수행했다. 뇌졸중을 유도한 원숭이에게 KDS12025를 투여하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던 원숭이가 약 3일 후 뇌내 병변 크기가 확연히 줄었고, 약 1주 만에 다시 손을 사용해 먹이를 집어 먹을 정도로 회복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과일을 집어먹는 실험에서 뇌졸중 원숭이는 운동장애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KDS12025로 치료한 원숭이는 10번 시도 모두 성공했다. 인간과 생물학적 유사성이 매우 높은 영장류에서 효과를 검증한 만큼 실제 뇌졸중 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 가능성을 강력히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뇌졸중 원숭이에 IBS 연구진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 'KDS12025'를 투여한 결과 과일을 집어먹는 실험에서 운동기능이 완전히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장류 실험 이어 인체 임상도 넘어야…재생 치료로의 확장도 주목
또한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뇌세포가 완전히 사멸하고 장벽이 견고하게 구축된 만성기 환자에 대한 치료법 연구도 병행돼야 한다. KDS12025가 세포 사멸을 막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면, 이미 죽은 신경세포를 대체하거나 재생시키는 ‘공격적’ 치료 전략도 추가로 필요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기능성 별세포를 신경세포로 직접 교차 분화시키는 ‘트랜스-디퍼렌시에이션(Trans-differentiation)’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뇌졸중 초기에는 KDS12025로 세포 사멸을 막고, 후기에는 세포 재생 기술을 결합하는 단계별 맞춤형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단순히 뇌졸중뿐만 아니라 과산화수소와 교세포 장벽이 관여하는 혈관성 치매, 외상성 뇌 손상 등 다양한 뇌질환 치료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준 단장은 이번 연구에 대해 "뇌졸중 후 생기는 장벽이 보호막이라는 잘못된 도그마를 깨고 근본 원인을 찾아낸 데 의의가 있다"며 "48시간이라는 세라퓨틱 윈도우(치료 범위)를 확보한 만큼, 더 많은 환자가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는 산발적으로 수행됐던 기초연구-신약개발-전임상이라는 전 과정을 통합한 ‘원스톱 연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뇌졸중의 근본원인 규명 뿐 아니라 구체적인 치료법 제시까지 성공했다"며 "KDS12025 사례와 같이 앞으로도 인류와 사회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초과학 연구에 헌신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