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시성부 의학자문위, 기적 치유 인정
'신학적 심사'와 '최종 승인' 남아
![[서울=뉴시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 초상 (사진=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2021.06.0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1/06/03/NISI20210603_0000759278_web.jpg?rnd=20210603084810)
[서울=뉴시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 초상 (사진=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2021.06.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한국 천주교회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증거자'로 불리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의 시복(諡福) 중 기적 심사가 교황청에서 첫 단계를 통과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6일 오전 로마 교황청 시성부에서 열린 의학자문위원회(Consulta Medica)의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에서 전문가 7명이 제출된 치유 사례를 논의한 끝에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이뤄진 기적적 치유임을 인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심사는 시복 절차 가운데 첫 단계다.
남은 절차는 '신학적 심사'와 '최종 승인'이다. 신학위원회가 해당 치유가 신학적으로도 타당한지 검증하고, 이후 추기경과 주교들로 구성된 시성부 회의에서 최종 심의를 진행한다.
이 모든 과정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되면 교황이 최종 승인하고 최 신부는 '복자'로 선포된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 주교는 "그동안 많은 교우가 정성을 다해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기도해 주신 덕분"이라며 "다만 시성부의 기적 심사 절차 가운데 첫 단계를 통과한 것일 뿐이기에 앞으로 최양업 신부가 복자로 선포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로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양업 신부는 1821년 충청남도 청양 다락골 교우촌에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에 한국 최초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던 최 신부는 1849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뒤 최 신부는 11년 6개월간 전국을 누비며 신자 3,800여 명 방문, 한글 교리서 보급 등 사목 활동을 펼쳤다. 1861년 과로와 장티푸스로 40세에 선종할 당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예수, 마리아"였다. 당시 베르뇌 주교는 "영혼 구원을 위한 불과 같은 열심을 지닌 사제"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최 신부는 순교는 아니지만 평생 헌신과 고난 속에서 사목을 이어간 삶으로 '땀의 순교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70년대부터 최 신부 현양 운동을 시작했으며, 1997년 공식 시복 추진을 결정했다. 이후 성덕 심사를 거쳐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다.
남은 심사 과정이 모두 통과되면 최 신부는 한국 교회에서 또 한 명의 복자로 탄생하게 된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는 '복자'를 넘어 '성인' 반열에 올라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5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로,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됐다. 시성은 1984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성인으로 선포됐다.
최 신부는 현재 시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