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연출, 10년 만의 신작…신구 연기 보고 집필
은행 금고 털기 위해 모인 인물 통해 욕망 드러내

배우 신구가 연극 '불란서 금고'에 출연 중인 모습.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북벽 장춘이라고 했다."
막이 오르면 은행 지하 금고 앞에 모인 다섯 인물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 맹인이 우화를 들려준다.
"깎아내린 듯 가파른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북벽은 곧 인간이 끝내 오르고 싶어하는 욕망의 꼭대기다. 어느 은행 지하 비밀 금고를 털기위해 한밤중에 모여든 인물들의 출발점이다.
지난 7일 개막한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는 어느 은행 지하 비밀 금고를 털기 위해 모인 다섯 인물이 벌이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의 정체도 모르는 이들의 계획은 단 하나. 밤 12시 정전이 되면 금고를 여는 것. 전기만 나가면 욕망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금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게 금고는 각자의 욕망을 비춘다.
이번 작품은 작가 겸 연출가인 장진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블랙코미디다. 작품 곳곳에서 장 연출 특유의 리듬과 유머가 돋보인다. 그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비틀어 보여주는 지점도 인상적이다.
장 연출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배우 신구를 보고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만큼 이번 무대에서 신구는 남다른 존재감을 펼쳐낸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맹인을 연기한다.
앞을 보진 못하지만 세상의 소리를 읽어내는 그가 '불란서'에서 만든 금고에 청진기를 댄 채 "난 지금 파리에 와 있어. 에펠탑을 바라보며 세느강 위 다리를 건너고 있어"를 읊조릴 때는, 관객도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흔의 국내 현역 최고령 배우는 그 존재만으로도 시작부터 끝까지 서사에 묵직함을 더하는데, 그런 그가 예상치 못한 순간 던지는 위트 넘치는 대사는 더 큰 웃음을 선사한다.

연극 '불란서 금고' 공연 장면.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맹인과 함께 금고 앞에 모인 다른 인물들도 각기 다른 캐릭터로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시종 거들먹거리면서도 계속해서 허점을 드러내는 건달부터 철저한 준비성을 갖춘 '우수사원' 은행원,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는 교수, 전설 속의 '해궁신유도'를 꿈꾸는 밀수 등 각자의 사연이 드러나며 극은 긴장과 웃음을 함께 쌓아간다.
이번 공연에서 맹인 역은 신구와 함께 성지루가 더블캐스팅됐고, 교수 역은 장현성과 김한결, 밀수 역은 정영주와 장영남, 건달 역은 최영준과 주종혁, 은행원 역은 금새록이 맡았다.
교수 역의 장현성과 밀수 역의 정영주가 보여주는 과거의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불란서 금고'로 첫 연극 무대에 선 주종혁과 금새록도 안정적인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공연은 5월 31일까지 NO 서경스퀘어.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