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사건 증거 분석 몰리는데…경찰, 8년 된 포렌식 장비 '발목'

기사등록 2026/02/08 06:00:00

최종수정 2026/02/08 07:28:24

포렌식 장비 465대 중 90대 2018년식…교체 예산 불발

분석 중 다운 반복·AI 기능 구동 어려움

수사권 조정 앞두고 디지털 포렌식 역량 '아킬레스건'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청사가 보이고 있다. 2025.09.19. nowone@newsis.com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청사가 보이고 있다. 2025.09.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경찰의 수사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지만, 정작 수사의 '기초 체력'인 디지털 포렌식 인프라는 뒤처지고 있다. 사이버 범죄 증가와 디지털 환경 변화로 디지털 증거 분석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현장 수사관들이 사용하는 핵심 장비는 8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8일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운용 중인 디지털포렌식용 워크스테이션(고사양 분석 PC) 465대 가운데 약 19%인 90대는 2018년 도입된 노후 기종이다. IT 장비 내용연수를 훌쩍 넘긴 상태다. 경찰은 해당 장비의 일괄 교체를 위해 2026년도 예산 약 14억원을 요청했지만, 예산 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올해 예산안에서도 누락됐다.

그 사이 디지털 증거의 '덩치'는 수년 새 급격히 커졌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단일 사건에서 수십만 줄에 달하는 대화 기록이나 수백 기가바이트(GB) 분량의 영상이 확보되는 것도 드물지 않다. 과거 휴대전화 저장 용량이 32GB 수준이던 시절과 달리, 현재는 1테라바이트(TB) 모델이 보편화되며 30배 이상 늘었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원본 데이터를 통째로 복제(이미징)하는 데만 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디지털 증거 분석 건수는 2020년 6만3935건에서 2025년 8만3432건으로 5년 새 30%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분석관 1인당 처리 건수도 300.2건에서 388.1건으로 29% 늘었다. 특히 모바일 기기 분석은 5년 새 30.8% 급증했다.

문제는 이를 처리하는 워크스테이션의 노후화다. 워크스테이션은 분석관에게 군인의 소총과 같은 필수 무기다. 아이폰 잠금 해제의 '마스터 키'로 불리는 이스라엘 정보기술 업체 '셀레브라이트' 등 추출 장비로 확보한 데이터도 결국 고사양 분석 프로그램을 거쳐야 증거가 된다.

경찰이 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후 워크스테이션은 저장 공간이 500GB에 불과해 최신 휴대전화 1~2대 분량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반면 신형 장비 저장 공간은 4TB로, 8배 늘어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증거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노후 장비로 카카오톡 대화 등을 분석하면 메모리 사용률도 99~100%까지 치솟으며 작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방대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 PC 파일, 이메일 등 방대한 디지털 증거를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후 장비로 인한 분석 지연이 수사 전체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구속 기간이 통상 10일로 제한된 상황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하는 노후 장비는 작업 중 다운되는 현상이 잦아 증거 분석 지연은 물론 수사 신뢰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최신 포렌식 프로그램도 노후 장비에서는 구동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한 디지털 증거 분석관은 "최신 포렌식 프로그램의 AI 자동 분류 기능을 돌리려고 해도 2018년식 장비는 중간에 멈추거나 분석 시간이 무한정 늘어나는 사례가 잦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올해 10월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를 앞두고 김병기·강선우 무소속 의원 공천헌금 수수 의혹, 쿠팡 정보 유출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경찰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대 사건 수사 역량의 한 축인 디지털 포렌식 장비 노후화는 경찰 수사력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찰청 디지털포렌식팀장 출신인 박정재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수사·기소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 비중이 늘어나게 되면 인력과 장비에 대한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과거 대형·특수 수사에서 활용해온 대용량 분석 프로그램을 경찰 반부패수사대나 금융범죄수사대에도 도입해 경험치를 늘려가야 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기초 장비마저 노후화된 실정이라면 수사 지연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디지털 포렌식 교관 출신인 장준원 법무법인 화우 디지털포렌식 전문위원은 "최근 분석관들이 사건 우선순위를 가려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 상황"이라며 "분석 대상이 대용량화된 상황에서 장비 성능이 뒤처지면 분석 속도가 늦어지고, 이는 곧 영장 집행이나 수사 절차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내부 의결 기구에서도 공식 제기됐다. 최근 국가경찰위원회 회의에서는 "첨단 수사 역량 강화를 강조하면서 정작 포렌식 워크스테이션 교체 예산이 제외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 이사인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범죄자는 최첨단 디지털 환경에서 날아가는데 수사기관 장비는 기어가는 꼴"이라며 "예산 미반영은 단순 장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수사 역량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올해도 2018~2019년식 장비 126대 교체를 위한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른 우선순위 사업들을 고려하다 보니 예산 반영이 지연됐다"며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을 계속 설명하며 예산 확보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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